[여명] 자충수로 돌아올 삼성바이오의 파업
임금인상 놓고 노사이견에 파업 위기
위탁개발생산멈추면 의약품 공급 차질
빅파마 신뢰잃은 공장은 미래도 없어
노사 상생으로 글로벌 도약 호기 잡아야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가 최근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투표에 응한 노조원의 95.52%가 파업에 찬성했다. 노조가 14%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삼성바이오가 6.2%의 인상률을 제시하면서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측은 생산 차질을 막기 위해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상황에서 협상이 최종 결렬하게 되면 5월 1일 파업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의 파업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바이오 의약품 배양은 온도나 영양 공급에 취약해 문제가 발생하면 배양기(Reactor)에서 한 번에 생산되는 의약품을 모두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운영 중인 배치(1회 생산분)는 최대 1만 5000ℓ에 달해 폐기해야 하는 물량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파업은 화이자와 모더나 등 글로벌 빅파마의 공급망 균열을 초래해 바이오 의약품 공급 차질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치료용 바이오 의약품 공급 불안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어 도덕적, 윤리적 책임이 뒤따른다. 외신들이 삼성바이오의 파업 결의를 글로벌 바이오 공급망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며 예의 주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CDMO 기업의 파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3~2004년에 일라이릴리의 프랑스 파리 페게르샤임 공장의 파업이 대표적이다. 이 공장은 릴리의 전 세계 인슐린 생산량 중 상당 부분을 생산하고 있었는데도 노조가 파업을 결의하면서 전 세계 당뇨 환자들에게 큰 혼란을 초래했다. 당뇨 환자에게 인슐린은 필수적인 의약품으로 파업 단행과 함께 유럽에서 인슐린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 릴리 노조원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결국 빅파마들의 유럽 공장 외면으로 이어졌다. 파업 리스크가 큰 유럽보다 노사 관계가 안정적인 지역과 기업으로 쏠린 것이다.
하지만 릴리의 파업 사태와 삼성바이오 노조의 파업 결의는 큰 차이를 보인다. 릴리가 당시 경영 효율화를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과 근로시장 조정을 추진하자 노조가 반발하면서 파업이 발생했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과도한 임금 인상안 관철을 위해 파업을 선택한 것이다.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은 글로벌 빅파마의 신뢰를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다. 만일 파업에 돌입한다면 고객사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외면하거나 파업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해외 생산 거점 활용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백업 체계 구축을 통한 안정적인 생산 물량 확보가 담보되지 않으면 또 다른 파업 리스크가 바이오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 시스템을 밑동부터 뒤흔들 수 있는 탓이다. 결국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국내 대신 해외 공장 건설에 나설 수밖에 없고 한국 공장의 신뢰와 일감은 줄어들 것이 뻔하다.
미국은 생물보안법 제정을 통해 중국의 우시바이오로직스 등 5곳을 우려 대상으로 지정하고 이들 기업과의 거래와 협력, 정부 계약 등을 제한하면서 한국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시장에서 나왔던 게 사실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로 열린 기회를 잡아야 할 시점에 터진 이번 일이 더 안타깝게 다가오는 이유다.
지금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에게 필요한 것은 두 자릿수 임금 인상이 아니라 안정적인 노사 관계를 통해 글로벌 1위 CDMO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사측과의 협력 모색이다. 한때 낮은 임금 인상률에 불만을 품고 부산 공장에 불을 질렀던 동국제강 노조는 1994년 2월에 국내 산업계 최초로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한 후 32년 동안 무분규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또 64일간의 전면 파업과 유혈 충돌을 벌였던 ㈜코오롱(현 코오롱인더스트리) 노조는 2009년 3월에 국내 산업계 두 번째로 항구적 무분규를 선포했다. 노조위원장은 이후 일본 고객사를 직접 방문해 품질과 납기 준수까지 약속했을 정도로 안정적인 노사 관계를 이끌었다. 이들 노조가 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을 스스로 포기한 것은 경영 악화 상황에서 회사 경쟁력 제고와 이를 통한 노조원들의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를 위해서다. “회사가 없으면 노동자도 없다”는 노조원들의 깨달음이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노사 관계로 이어진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가 진정 고민해야 할 부분은 상호 협력의 노사 관계 구축과 이에 따른 글로벌 계약 물량 확대,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상용 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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