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회계사]④ 과로·덤핑·미지정 ‘삼중고’…CPA 지원 5년 새 최저

이호준 기자 2026. 4. 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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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26년 4월 3일 오후 3시 55분 조선비즈RM리포트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자본주의 파수꾼’이자 ‘전문직의 꽃’으로 불리던 회계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감사 시즌마다 반복되는 과로 구조가 고착화된 결과다. 이른바 ‘타임이팅(Time-eating)’으로 불리는 근무 시간 축소 관행도 만연해 있다. 전·현직 회계업계 종사자 200여 명의 증언과 설문을 통해 현장의 실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감사 시즌마다 주당 100시간 가까이 일하는데, 이걸 감당하느니 다른 길을 찾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업준비생 박모(25)씨는 최근 공인회계사(CPA) 시험 준비를 포기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감사 시즌’처럼 특정 시기에 업무량이 늘어나는 것은 감수할 수 있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일까지 떠안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른바 ‘미지정 회계사’ 문제와 불확실한 업계 전망도 영향을 미쳤다. 박씨는 “수년을 투자해도 CPA 시험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데, 합격 후에도 안정적으로 경력을 이어갈 수 없다면 다른 길을 찾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회계사에 도전하는 이들이 최근 눈에 띄게 줄었다. 합격 이후에도 수습 교육을 받지 못하는 미지정 회계사 논란이 불거진 영향도 있지만, 격무 대비 나아지지 않는 처우와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한 우려 등도 배경으로 꼽힌다.

일러스트=챗GPT

◇CPA 시험 경쟁률도 5년 내 최저

6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6년 CPA 시험 지원자 수는 1만4614명으로 최근 5년 중 최저치로 집계됐다. 1차 시험 기준 경쟁률도 5.22대1로 낮아져 같은 기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지원자는 2019년 9622명에서 2024년 1만6941명으로 약 75% 증가하며 정점을 찍은 뒤, 2년 연속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래픽=정서희

수험생들이 꼽는 가장 큰 부담은 근무 환경이다. 기업 회계 감사가 집중되는 1~3월에는 주 100시간에 육박하는 업무가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회계사를 준비하는 이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취업해도 과로에 시달린다”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아 진입이 망설여진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저연차 회계사들은 이러한 우려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토로했다. 회계사 A씨는 “수년간 노력해 취득한 자격증을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주변에서 건강 문제로 퇴사를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중소형 회계법인의 처우는 더욱 열악하다. 감사 보수를 낮춰 수임하는 이른바 ‘덤핑’이 확산되면서 업무량 대비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저연차 회계사 초임이 1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말도 나온다.

회계사 B씨는 “감사 보수 덤핑 등의 영향으로 연봉이 수년째 사실상 동결된 상태”라며 “대기업과 연봉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이직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합격해도 갈 곳 없다”… 미지정 회계사 급증

최근에는 미지정 회계사 문제가 업계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CPA 시험 합격자는 2년간 실무 수습을 거쳐야 정식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데, 수습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합격해도 회계사가 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수습 교육은 4대 회계법인을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금융 당국의 선발 인원 확대와 회계법인의 채용 축소가 맞물리면서 미지정 인원이 급증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CPA 합격자 1200명 중 같은 해 10월 기준 862명이 미지정 상태였다. 이달 1일 기준 약 500명이 참여한 미지정 회계사 단체 대화방도 운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지정 회계사 C씨는 “어디서 수습을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며 “사기업에 지원하면 다시 회계법인으로 갈 것 아니냐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고, 회계법인에서는 채용되지 않아 사실상 갈 곳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미지정 회계사 80여명이 10월 29일 금융위원회가 있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릴레이 트럭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공인회계사 합격자 미지정 문제 해결 촉구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AI 확산도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현장에서는 아직 도입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단순 회계·감사 업무의 자동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저연차 인력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회계사를 AI 대체 위험 노출 상위 직종으로 분류했다. 세계경제포럼(WEF) 역시 회계사를 향후 감소 가능성이 높은 직업 7위로 지목했다.

회계사 D씨는 “2021년까지만 해도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강해 업계에 들어왔지만, 이후 몇 년간 연봉 동결과 업무 부담 증가, 미지정 회계사 문제 등이 겹치면서 직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낮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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