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고정하세요!" 홈쇼핑 뒤편, 롯데 vs 태광 20년 진흙탕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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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TV 리모컨을 돌리다 보면 화려한 조명 아래 쇼호스트들이 "매진 임박, 채널 고정"을 외치는 홈쇼핑 채널을 마주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롯데홈쇼핑이다. 많은 시청자에게는 "유통업을 하는 롯데의 계열사 중 하나"로 인식돼 있겠지만, 사실 롯데홈쇼핑 뒤에는 롯데 말고 하나의 대기업이 더 버티고 있다. 바로 '태광그룹'이다.

2005년 우리홈쇼핑 시절부터 시작된 악연
원래 롯데와 태광은 '혼맥'으로 얽혀 있는 관계다. 태광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회장 딸과 결혼해 신격호 명예회장의 '조카 사위'였다.
한때 손도 잡았다. 두 회사는 2001년 컨소시엄을 꾸려 홈쇼핑 사업자 선정에 도전했다. 하지만 아쉽게 탈락했다. 그럼에도 두 그룹 모두 홈쇼핑 진출을 꿈꿨다. 당시만 해도 홈쇼핑은 백화점을 대체하는 '가장 획기적인 쇼핑 플랫폼'이었다. 유통업 전반에 진출한 롯데그룹이나, 케이블TV 채널 티브로드와의 시너지를 노린 태광그룹 모두 '홈쇼핑 채널'을 원했다.

하지만 두 대기업의 이해관계는 2006년 우리홈쇼핑 인수전 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우리홈쇼핑은 당시 경방과 아이즈비전 등 대주주 간 경영권 분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태광은 2005년부터 우리홈쇼핑 지분을 공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했고, 결국 2006년 7월까지 지분 45%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최다액출자자 변경도 신청하며 '홈쇼핑 채널 확보'에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롯데가 뛰어들면서 구조가 바뀌었다. 롯데쇼핑이 경방이 보유하던 우리홈쇼핑 지분 49.78%를 4700억 원에 인수하며 단숨에 최대주주로 올라선 것. 결국 방송통신위원회는 2006년 말, 롯데의 우리홈쇼핑 경영권 인수를 조건부 승인하면서 우리홈쇼핑은 '롯데홈쇼핑'으로 바뀌었다.
태광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방통위 결정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2011년 대법원까지 롯데 측 손을 들어주면서 4년 6개월간의 법정 싸움에서도 태광은 패배했다. 하지만 법정 판결 후에도 45%의 지분을 처분하지 않고 '2대 주주'로 남았다.
계속된 갈등, 그리고 터진 태광
갈등은 계속됐다. 채널명은 롯데홈쇼핑이지만, 20년 넘도록 여전히 법인명은 '우리홈쇼핑'인 것도 2대 주주인 태광이 동의하지 않은 탓이다. 롯데홈쇼핑 이사회(9명 구성)에 항상 롯데(5~6명)와 태광(3~4명)이 지분 구조와 비슷하게 멤버를 가져가며 '신경전'을 벌였다.

태광이 '롯데(우리)홈쇼핑' 주요 의사 결정마다 반발하거나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발생하면서 잠시 갈등은 주춤하는 듯했다. 그러다 2023년 물밑에서 오가던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롯데홈쇼핑 이사회가 롯데웰푸드(구 롯데제과)의 사옥을 2039억 원에 사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롯데홈쇼핑 이사회에 포진한 태광그룹 측 인사들은 '찬성' 의사를 내비쳤는데,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이호진 전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은 '왜 적정가보다 더 비싼 돈을 주고 롯데 계열사 자산을 매입해 롯데그룹의 이익을 늘려주느냐'며 격노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태광그룹 2인자였던 김기유 전 태광그룹 경영협의회 의장은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았다'며 이호진 전 회장에게 쫓겨나듯 회사를 나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한 법조인은 "김 전 의장을 신뢰했던 이 전 회장이 부지 매입 결정에 왜 태광 측 인사들이 이사회에서 반표를 던지지 않았는지 강하게 질타하면서 벌어진 갈등"이라며 "이호진 전 회장이 롯데홈쇼핑 관련 사안에 얼마나 예민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귀띔했다.
태광과 롯데가 충돌한 건 롯데홈쇼핑의 양평 사옥 매입 건만 있는 게 아니다. 태광은 2022년 롯데홈쇼핑의 롯데건설 자금 지원이나, 2025년 롯데 브랜드 사용 계약 해지 요구 등 '2대 주주'로 우리(롯데)홈쇼핑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있는 의사 결정이라면 모두 반발하고 나섰다.
또 불거진 갈등
그리고 지난 26일, 다시 태광이 롯데를 향한 문제 제기에 나섰다. 태광산업은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롯데홈쇼핑(우리홈쇼핑) 경영진이 이사회 사전 승인 없이 롯데쇼핑, 롯데하이마트 등 롯데그룹 계열사들과 올해 1~2월 수십억 원 규모의 내부거래를 진행한 사실을 인정했다"며 "이미 이사회에서 관련 거래가 부결된 이후에도 거래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상법상 사전 승인 규정을 위반한 명백한 불법 행위라는 게 태광 측의 주장이다.

갈등이 2026년에도 사안을 바꿔 다시 재연된 것이다. 태광 측은 이사회에서 롯데홈쇼핑 경영진이 해당 기간 내부거래 실적을 제시한 점을 근거로 들며 "경영진이 사실상 위법 행위를 자인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태광산업은 김재겸 대표이사 해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한 상태다.
반면 롯데홈쇼핑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롯데홈쇼핑은 "경영진이 불법 내부거래를 인정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언론에 밝혔다. 태광그룹의 문제 제기를 "2대 주주의 비상식적 행태"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양측의 핵심 쟁점은 내부거래의 사전 승인 여부, 그리고 이 과정의 위법 여부다. 롯데 측은 위법성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인데, 태광그룹의 '경영진 교체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50% 이상의 지분을 쥔 롯데의 벽을 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 다만 롯데그룹 계열사 부지를 2000억 원에 매입한 이후 다시 갈등이 재점화된 양상을 띠면서, 롯데홈쇼핑 이사회 주도권과 경영권 영향력을 둘러싼 갈등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통 플랫폼 관계자는 "이미 홈쇼핑이 '사양산업'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태광과 롯데그룹의 홈쇼핑을 둘러싼 갈등은 이제 재벌 오너들 간 감정 싸움의 성격이 짙어진 것 같다"면서도 "태광그룹이 45%의 지분을 처분하지 않고 계속 들고 가면서 호시탐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언젠가 우리홈쇼핑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의지가 반영된 것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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