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어젠다]드론 묶은 낡은 조달법, '뉴 패러다임' 시급

이무영 제도혁신연구소 부소장 2026. 4. 6.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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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쟁의 시대, K방산의 현재와 미래③-4]

비리 반복이 낳은 '감사 공포' 학습효과
요구 성능 한 번 굳으면 10년 발목
각 군 따로 놀아 전장 공유 '깜깜이'
민간 혁신 수혈 위한 진입장벽 철폐 시급
[편집자주] 힘의 논리로 국제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신기술 개발로 전쟁의 양태도 급변 중이다. 전장에선 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드론을 비롯한 무인 무기, 위성 통신 시스템과 전자전 장비가 승패를 가른다. '동행미디어 시대'는 3부작 기획을 통해 달라진 안보 패러다임을 조명한다. 1부에서는 현대 기술전의 핵심인 '팔란티어'를 해부하고, 2부에서는 현대전 양상과 각국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3부에서는 혁신 기술을 안보에 활용하는 시스템이 미비한 한국의 현실을 진단한다. 그리고 4월 16일 '새로운 전쟁의 시대: K방산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서울 상공회의소에서 포럼(국방부 후원)을 개최한다. 안보 전문가 등이 '기술 전력화'를 위한 제도적 해법을 논의한다.

'방산 비리'는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2018년 개봉한 영화 '1급기밀'의 한 장면. 영관 장교인 주인공(좌, 김상경)은 방산 비리 내부고발자로 등장한다. 이 과정을 기자(가운데 왼쪽, 김옥빈)가 취재한다. 오른쪽 두 인물은 비리를 기획하고(우, 최무성) 실무를 맡은(가운데 오른쪽, 최귀화) 빌런이다. /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업체로부터 받은 돈은 뇌물이 아니라 격려금 차원이었다." 군 관계자는 '돈봉투 관행'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 '성역'이었던 군 전력 증강 사업의 치부가 처음으로 드러난 '율곡 비리' 당시의 일이다. "실무 검토 보고서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는 말도 나왔다. 감사원은 성역없는 조사를 천명했다. 검찰은 전직 국방장관 2명과 전직 참모총장 2명을 구속기소했고 이들 전원이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여론은 수사가 충분치 못했다는 쪽이었다. 이후에도 잊을만하면 방산 비리가 터졌고, 패턴은 반복됐다.


트라우마가 낳은 '절차주의' 덫


한국군의 '하드웨어(실물 무기)' 중심 DNA는 1970년대 중공업 육성 시기부터 시작됐다. 여기에 과거 굵직한 방산 비리들이 남긴 트라우마가 결합하면서 지금의 '꽉 막힌 조달 패러다임'이 완성됐다. 율곡사업부터 2014년 통영함 비리까지 대형 사건이 반복되면서 '투명성'을 지상 과제로 삼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2006년 국방부, 합참, 각 군, 조달본부 등 8개 기관에 분산 운영되던 획득관련 조직 및 기능을 모두 통폐합해 방위사업청을 설립했다.

문제는 투명성에 대한 강박이 과도한 '절차주의'로 이어진 점이다. 이는 실무자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다 감사에 걸리느니 차라리 검증된 옛 방식을 택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뼈아픈 학습효과를 남겼다."(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상경 안보경영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역시 "(한국군은) 절차는 완벽한데, 전력화는 늦다. 현재 제도는 투명성 확보를 위해 완벽함을 추구한 나머지 경제성과 효율성을 침해하는 기형적 구조"라고 말했다.

소요 결정 단계에서 요구 성능(ROC)이 한 번 확정되면 이후 10년 이상 고치기 힘들다. 수개월 단위로 기술이 도약하는 소프트웨어나 AI를 수십 년 전의 경직된 규격서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보니, 배치될 때는 이미 기술이 시대에 뒤처지는 '진부화' 현상도 당연해졌다.
방산 비리에 대한 해법으로 방사청이 설립됐다. 방사청의 3대 목표(투명성, 효율성, 전문성) 중 투명성이 가장 앞에 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속도전이 핵심인 새로운 전쟁의 시대에는 투명성에 대한 강박으로 '신속한 도입'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은 이용철 방위사업청장. /사진=뉴스1


'올드 패러다임', 곳곳서 파열음


이러한 관성은 속도가 생명인 현대전 준비에 큰 걸림돌이다. 현대전의 핵심으로 떠오른 드론은 개발 단계부터 막혀 있다. 근거법은 없고, 개발 과정도 규제 투성이다. 유용원 의원에 따르면 "한국은 적의 전파 교란(재밍) 방어 시험 시 주파수를 변경하는 단순한 작업조차 전파법에 따라 매번 행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김일동 방사청 차장도 "정부 주도 방식만으로는 전장의 판도를 바꿀 혁신적 전력을 적시에 확보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육·해·공군이 각각 무기를 도입하다 보니 두뇌 격인 지휘통제 체계의 원활한 작동이 어렵다. 데이터가 고립되어 서로 호환되지 않는 '사일로(Silo)' 현상 때문이다. 실제로 육군의 전술지휘정보체계(ATCIS)와 해·공군과 제대로 연동되지 않아, 합동 작전 시 표적 정보를 수동으로 재입력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군사 전문가는 "각 군이 각자의 규격과 예산으로 시스템을 발주하다 보니, 정작 실전에서는 서로의 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없는 '깜깜이' 상황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데이터 비표준화와 경직된 보안 규정 역시 AI 전력화에 치명적이다. 우리 군은 데이터 규격이 제각각이고, 기밀 유지를 이유로 모든 데이터가 외부와 단절된 로컬망에 있다. 한 AI 벤처기업 대표는 "전장 데이터를 통합해 AI를 고도화하는 미군과 달리, 우리는 외부의 뛰어난 AI를 들여와도 데이터 표준화라는 첫 단추를 꿰지 못해 '깡통'에 불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SW 중심 전쟁'… 법조차 없는 한국


우리가 낡은 패러다임에 묶여 있는 사이 전 세계 군사 패러다임은 AI와 소프트웨어(SW) 중심으로 바뀌었다. 크리스천 브로스 전 미 상원 군사위 정책국장을 비롯한 글로벌 혁신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안보의 근간인 무기체계"라고 강조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민간 기술기업이 이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월 24일 팔란티어의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SS)이 미 국방부의 공식 사업으로 격상됐음을 보도했고, 로이터는 1850억 달러 규모의 우주 기반 미사일 방어망 '골든 돔(Golden Dome)' 프로젝트의 핵심 소프트웨어를 팔란티어와 안두릴이 공동 기획한다고 전했다.

한국의 현행법은 SW를 '하드웨어의 부속품' 정도로 취급한다. 현행 방위사업법에는 SW만을 단독으로 신속하게 획득하기 위한 별도 조항이 없다. 하드웨어 획득 절차를 무리하게 준용하다 보니, 스마트폰 앱 업데이트하듯 간단히 끝낼 수 있는 작업도 정식 조달 절차를 밟으며 수년을 허비한다.


뉴 패러다임 키워드는 '민간'과 '속도'


방위사업청의 '글로벌 4대 강국 도약' 비전을 위해서는 민간 참여와 속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첨단·혁신·지속·상생·글로벌화라는 핵심목표를 달성 하는 것에도 부합한다. /사진=방위사업청 홈페이지
전문가들은 무기 획득 생태계 전반을 뒤엎는 총체적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축적의 시간' 저자인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관료주의적 '절차적 결벽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진국을 모방하던 시절의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도전적 질문을 통한 시행착오'를 용인하고 민간의 혁신 아이디어를 국방 기술로 '스케일업(Scale-up)'하는 유연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속 획득 프로세스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조관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위원은 "기존의 무거운 조달 방식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을 담아낼 수 없다"며 "완벽한 성능을 10년 뒤에 배치하는 것보다, 70% 수준의 초기 시제품을 1년 이내에 신속히 배포하고 피드백을 반영해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진화적 획득' 체계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신속 획득 제도의 안착을 위해서는 민간의 '진입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 한 방산 스타트업 대표는 "한국 국방 조달 시스템에서는 미국의 팔란티어나 스페이스X 같은 혁신 기업이 탄생하기는커녕 입찰조차 불가능하다. 절차적 완결성이라는 명분을 넘어 민간의 압도적인 속도와 기술력을 온전히 수혈할 수 있는 제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제도혁신연구소 이상언 소장·이무영 부소장, 정치경제부 김인한·김성아 기자, 산업1부 최유빈 기자, 증권부 이동영 기자

이무영 제도혁신연구소 부소장 vanguard@sid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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