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도 휘청인 상속세, 대한민국 기업엔 ‘데드라인’

심화영 2026. 4. 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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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대한경제

12조 상속세 납부 위해 매각ㆍ대출 끌어모은 삼성가, 6년 사투 이달 마무리
‘상속 → 세금 → 매각’으로 이어지는 잔혹사… 중견·중소기업은 ‘대(代)’ 끊길 판

[대한경제=심화영 기자]대한민국 1위 기업 삼성조차 ‘영혼까지 끌어모아’ 6년을 버틴 역대 최대 규모의 상속세 납부기가 이달 사실상 마무리된다. 총 12조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기 위해 오너 일가가 지분 매각과 대출 등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이 과정은, 재계 전반에 상속세가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데드라인’이라는 위기감을 재확인시켰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일가는 2021년부터 시작된 총 12조원 상속세 가운데 6회 분할 납부(연부연납)의 마지막 회차를 이달 중 최종 납부한다. 재원 마련 과정은 그야말로 ‘총동원전’이었다. 홍라희 명예관장과 이부진·이서현 사장은 삼성전자 등 핵심 계열사 지분을 단계적으로 매각하고, 주식 처분 신탁과 대규모 담보 대출을 활용했다. 이재용 회장 역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분 매각 대신 배당금과 개인 신용대출을 쏟아부으며 자금을 조달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인 삼성조차 상속세 재원 마련에 6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며 “현금 동원력이 떨어지는 일반 기업들이 직면한 상속세 리스크는 이제 사후 정산의 문제가 아니라 지배구조와 존립을 뒤흔드는 ‘현재진행형 재난’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미 주요 그룹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LG그룹 구광모 회장은 이미 70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대출과 배당을 쏟아부어 지난해 5년 만에 완납했다. HD현대 정기선 부회장은 2018년 지분 증여 시 약 1500억원 증여세를 이미 연부연납으로 납부 완료한 상태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은 지난해 3월 지주사 주한화 지분 11.32%(22.65% 중 절반)를 세 아들(김동관·김동원·김동선)에게 분산 증여하며 증여세 부담을 분산·최소화했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견·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상속세 부담을 이기지 못해 아예 대가 끊기거나 주인이 바뀌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국내 1위 종자 기업이었던 농우바이오는 2014년 1200억원대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농협으로 넘어갔고, 밀폐용기 강자 락앤락은 상속세 부담을 이기지 못해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손톱깎기의 대명사 쓰리쎄븐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지분을 매각한 뒤 주인이 바뀌었다.

최근에는 얼음정수기 시장의 개척자 청호나이스가 글로벌 사모펀드 칼라일의 인수 검토 대상으로 떠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지난해 창업주 고 정휘동 회장 별세 이후, 유족들이 직면한 약 3000억원 규모의 상속세 재원 마련이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넥슨(NXC)의 경우 유족들이 6조원의 상속세를 지분으로 대납하며, 정부(기획재정부)가 졸지에 2대 주주가 되는 기이한 지배구조가 형성되기도 했다.

산업계는 이를 ‘상속 → 세금 → 매각’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경로로 정의한다. 수십 년간 쌓아온 기업의 경쟁력이 기술이나 영업력이 아닌, 단 한 번의 상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때문에 공중분해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2000년 이후 26년째 변하지 않은 상속세 체계가 한국 경제의 규모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지만, 대주주 보유 주식에 적용되는 20% 할증 평가를 더하면 실효세율은 최대 60%까지 치솟는다. 이는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기업 자산의 대부분은 당장 현금화하기 어려운 주식과 생산 설비다. 세금을 내기 위해 지분을 매각하면 경영권이 위협받고, 차입에 의존하면 기업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된다. 전문가들은 “좋은 기업이 세금 때문에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것은 산업 생태계 차원의 막대한 손실”이라며 낡은 상속세율과 과세 체계의 재검토를 주문하고 있다.

심화영 기자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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