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돌아왔다

김지은 기자 2026. 4. 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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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힙 트렌드의 중심에서 ‘시’의 인기가 정점에 섰다. 숏폼 콘텐츠의 피로를 가장 짧은 문학인 시를 통해 해소한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우먼센스] 온라인 서점 예스24(YES24)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국 시 분야 전체 판매량은 전년 대비 46.4% 증가했으며, 2025년에도 33.7% 상승했다. 흥미로운 점은 시 전체 구매자 중 약 20%가 1020 세대라는 점. 과거 시집의 주 소비층은 50대였으나 지난 2025년 기준 1020 세대의 구매 비중이 약 20%까지 확대됐다. 특히 10대의 구매량은 전년 대비 97.2% 성장했다.

MZ세대는 왜 시의 매력에 빠졌을까. 이유는 크게 4가지로 정리된다. 지난 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그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의 판매량이 전년 대비 67배 상승하며, 시집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

또 지난해 3월 김혜순 작가가 <날개 환상통>으로 한국 작품 최초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시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시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졌다. 해당 작품은 2024년 전년 대비 판매량이 12배 증가했다고. 한국 문학의 존재감이 높아지면서 MZ세대는 시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텍스트 힙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독서는 남과 다른 나만의 독특한 취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 가운데 표지 디자인이 감각적이고 판형이 작은 시집은 최적의 SNS용 아이템이라고 인식한 것. 또 어려운 철학서보다 감성적인 시 한 구절을 공유하는 게 취향을 드러내는 데 더 효율적이다.

또 시는 문학계의 숏폼으로 통한다. 짧은 문장 속 압축된 의미가 주는 타격감은 숏폼만큼 크기 때문. 긴 호흡의 소설을 읽을 여력이 없는 이들에게 단 몇 줄로 공감을 유도하는 시는 가장 문학적인 숏폼으로, 가성비 높은 감정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

동시에 시는 지난해 독서 트렌드였던 필사에도 제격이다. MZ세대에게 영상 콘텐츠의 범람으로 디지털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마음 챙김 수단 중 하나로 직접 글을 쓰며 펜촉을 느끼는 게 자리 잡은 것. 시는 필사하기에 가장 적당한 분량이며, 한 자씩 적어 내려갈 때 느껴지는 손맛이 MZ세대의 디지로그(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감성을 결합한 서비스) 감성을 자극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시집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MZ 시인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시가 은유적이었다면 최근 인기를 얻은 MZ 시인들의 시는 일상적인 소재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컵라면, 샤워젤, 소다수를 소재로 내 방 침대 위에서 느끼는 감정을 대변하는 식이다. 때문에 독자들은 시를 문학이 아닌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SNS로 공유하는 등 시의 '바이럴'을 가능하게 했다.

지금의 시 열풍은 얼마나 지속될까? 분명한 건 MZ세대가 시에 빠져드는 이유는 너무 빠른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문장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라는 점이다.

에디터 픽 시집 10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어느 날 운명은 나를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서시-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과 침묵을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낸 시집. 노벨상 수상 이후 다시금 조명받으며 '문학적 깊이'의 정점을 보여준다는 평이다. 한강, 문학과지성사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고 인용된 시들을 엮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꾸밈없는 진심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위로를 건넨다. 나태주, 지혜

 <토마토 컵라면>

우리의 여름은 노을 진 추억이었고

푸르게 피어난 토마토가 붉게 익어

물러질 때까지

나는 그때의 향기를 비집기로 했어

-토마토 컵라면-

숏폼 세대의 감각에 가장 최적화된 시집이다. 톡톡 튀는 비유와 위트 속에 청춘의 쓸쓸함과 냉소를 담아내어 MZ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차정은, 부크크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築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 보았다

-환절기-

일상의 사소한 장면에서 슬픔의 미학을 발견한다. 가슴 먹먹한 서정성이 돋보이며, 문장이 유려해 감성 에세이 같은 편안함을 준다는 평이다. 박준, 문학동네

 <샤워젤과 소다수>

묘목이 자라면

사랑이 주렁주렁 맺힐 거예요

우주를 마시고 단단해질 겁니다

-별사탕과 연금술사-

현대적인 어휘와 감각적인 이미지로 무장했다. 시각적인 묘사가 뛰어나 인스타그램 피드에 한 줄 올리기 가장 좋은 트렌디한 시들로 가득하다. 고선경, 문학동네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팬케이크를 반죽해요.

부지런히 저어요.

팬 위에 올리고는

한쪽 면을 익혀요.

재빨리 뒤집어요.

할 수만 있다면!

세상도 뒤집어보고 싶어요.

-팬케이크를 반죽해요-

시인 김용택이 엄선한 국내외 명시선집. 단순히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쓰며 마음을 다스리는 필사 열풍의 시발점이 된 책이다. 김용택, 위즈덤하우스

<마음챙김의 시> 

자신의 날개를

떼어 버리는 새는 없다

날개를 땅에 끌고 다니는 새도

인간은 그렇게 한다

-날개를 주웠다, 내 날개였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 세계의 지혜가 담긴 시들을 큐레이션 했다. 삶의 고비마다 꺼내 읽기 좋은 시집이다. 류시화, 수오서재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서시-

시대를 초월한 고전. 최근 빈티지한 감성을 찾는 포엣코어 트렌드와 맞물려 가장 순수한 성찰의 언어로 다시 읽히고 있다. 윤동주, 더스토리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사랑이 없어서 멸종하는 거야 멸종이 없어서 사랑하는 거야

멸종하기에 번식하고 진화하고 사랑하기에 언어를 얻고 잃어버리고

별 하나의 폭발이 밤하늘에 박제된다

멸종해, 너를 멸종해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멸종과 사랑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신예 시인 특유의 신선하고 파격적인 문체로 풀어냈다. 뻔하지 않은 문장을 찾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유선혜, 문학과지성사

<함께 추락하러 왔어요> 

실패가 두렵지 않은 세계를 써볼게

사는 것에 증명 따위 필요 없는 그런

시로 지은 세계를 너에게 써줄게

-시로 지은 세계-

사랑과 상실, 추락과 버팀이 교차하는 삶의 계절을 그린다. 무너지는 순간에도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미는 마음을 묘사했다.  서덕준, 위즈덤하우스
 

김지은 기자 a05190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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