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이 탄광 잠수는 계속돼야" 22년 만에 이룬 과거사 성과에 힘 얻은 일본 양심들 [클로즈업 재팬]

류호 2026. 4. 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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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사 사망으로 조세이 탄광 활동 중단에
잠수사 유족 "사고와 역사적 과제 분리를"
"이제 우베 넘어 한일 정부가 해결할 문제"
한일 과거사 문제의 새 페이지 열 희망으로
"한일 시민 연대, 젊은 세대에도 이어질 것"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 2월 3일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 탄광에서 유해 발굴 잠수 조사를 하려 설치한 쉼터에 한국어로 '고향으로 돌아가자'라고 새긴 현수막을 걸어 놨다. 우베=류호 특파원
가능하다면 조세이 탄광 유해 발굴 활동을 꼭 이어가 주세요.
대만인 잠수사 고(故) 웨이 수 유가족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조선인이 수몰된 조세이 탄광 사고 84주기에 맞춰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에 참여했다가 유명을 달리한 대만인 잠수사 고(故) 웨이 수(Wei Hsu· 별칭 빅터)의 유족들은 2월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모임)에 이 같은 뜻을 전했다.

빅터는 2월 7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 탄광에서 유해 발굴 잠수 작업에 참여했다가 산소 공급 장치 문제로 사망했다. 전날만 해도 지난해 8월 유골 첫 발굴에 성공한 지 6개월 만에 두개골 1구를 추가로 확보하며 기대감이 한껏 부푼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날아온 비극에 고무된 분위기는 가라앉고 말았다. 2024년 조세이 탄광에서 첫 잠수가 시작된 지 약 1년 6개월 만에 대만, 핀란드, 태국 등 6명의 해외 잠수사가 함께하며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려 했지만, 이번 사고로 새기는모임의 유해 발굴 작업은 잠정 중단됐다. 조세이 탄광 수몰 사건은 1942년 2월 3일 우베시 해안에서 약 1㎞ 떨어진 해저 지하 갱도에 바닷물이 들어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183명이 숨진 참사다.


"여기서 멈추면 日전역 유해 발굴 작업 막막해져"

일제강점기 조세이 탄광 강제동원 희생자 추모비가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 탄광 인근에 세워져 있다. 우베=류호 특파원

하지만 빅터의 유족들은 새기는모임에 "잠수를 이어가달라"며 용기를 북돋아줬다. 잠수사가 사망한 이튿날 빅터의 부인과 지인, 아들이 일본에 입국했고, 2월 11일 유족들 요청에 따라 일본에서 화장했다. 유족들은 슬픔이 복받치는 상황에도 "이번 사고와 조세이 탄광의 역사적 과제는 분리해 생각해 달라"며 "빅터가 우베에 온 건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뜻을 전했다.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데 보탬이 되고자 참여했던 만큼, 고인의 뜻이 빛을 볼 수 있게 활동을 이어가달라는 당부였다.

새기는모임은 인명 사고로 유해 발굴 작업을 이어갈지 깊게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선뜻 조사 재개를 결정하기 어려워서다. 그러나 자원봉사자, 지역 주민, 나아가 한일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많은 이가 "작업이 중단돼선 안 된다"고 염원하고 있다.

2013년 2월 이곳에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추모비를 건립한 이후 12년 만에 유해 발굴 성과를 낸 만큼, '한국으로의 유해 봉환'까지 이뤄내야 한다는 간절함의 목소리다. 새기는모임 관계자는 "한 분이 돌아가셨기에 '작업을 이어가는 게 맞나'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여기서 활동을 중단하면 일본 각지의 유해 발굴 작업도 막막해질 것"이라며 "빅터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위기를 잘 극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일 정상 22년 만 합의, 과거사 해결에 큰 힘"

잠수사 이사지 요시타카(가운데),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이노우에 요코(왼쪽) 대표와 우에다 게이시 사무국장이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 탄광 앞 해변에서 유해 발굴 잠수 작업을 앞두고 설명하고 있다. 우베=류호 특파원

많은 이가 응원을 보내는 건 이제 조세이 탄광은 우베를 넘어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의 새 페이지를 열 희망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1월 14일 일본 나라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조세이 탄광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 정보(DNA) 감정을 추진한다"고 합의했다.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합의한 이후 양국 정상이 과거사 관련 유해 문제에 협력하기로 한 건 22년 만이다.

한일 시민단체들은 유해 봉환에 성공한다면, 양국 간 과거사 문제 협력 범위를 더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한일 정상 간 합의는 조선인 유해 문제에선 22년 만에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며 "조세이 탄광은 이제 한일 양국 정부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잠수 조사 작업을 이끄는 잠수사 이사지 요시타카는 2월 2일 우베시에서 만나 "조세이 탄광은 80여 년간 방치됐고, 유족들은 이제 고령을 맞았다"며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쏠린 장소가 된 만큼, 좋은 성과를 내 지원이 늘어나는 미래로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의 분노 지켜야" 日시민 정성 모여 이어진 활동

호쿠리쿠연락회의 나카가와 미유키(맨 오른쪽) 사무국장을 비롯한 일본 시민단체들이 2월 25일 도야마현 도야마시에 위치한 일본 기계·부품 제조업체 후지코시 사옥 정문 앞에서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희생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도야마=류호 특파원

새기는모임의 노력 끝에 얻어낸 한일 정상 간 합의는 일본 전국에서 활동하는 양심 세력들의 큰 자양분이 됐다. 일본 전범기업인 기계·부품 제조업체 후지코시를 대상으로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호쿠리쿠연락회의 나카가와 미유키 사무국장은 2월 25일 도야마현 도야마시에서 만나 "오랜 기간 이어온 시민운동의 성과이기에 매우 큰 힘이 됐다"며 "일본의 전후 우익 체제를 바꿀 기회로, 이 힘을 살려 더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한) 큰 연대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기뻐했다.

나카가와 사무국장이 강조한 뜻있는 시민들의 '연대'는 1992년 1차 소송을 시작해 30여 년간의 활동을 지탱해 온 동력이 됐다.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에 지원하면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일본인 교사의 거짓말과 회유에 많은 한국인 소녀가 후지코시 도야마 군수공장으로 가게 됐고, 삼엄한 감시와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한국 대법원이 2024년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1인당 최대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후지코시는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호쿠리쿠연락회는 후지코시가 지금이라도 역사 앞에 고개 숙일 수 있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일 시민단체들이 일본 기계·부품 제조업체 후지코시 주주총회를 하루 앞둔 2월 24일 일본 도야마현 도야마시 호쿠리쿠연락회 사무실에 모여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희생자에 대한 사죄 및 배상 촉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 기부자의 기부로 마련한 사무실로, 위에는 근로정신대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도야마=류호 특파원

매년 2월 후지코시 주주총회가 확정되면 도쿄와 교토, 나고야 등 전국의 활동가들은 도야마시로 몰려든다. 전날 다같이 숙식하며 올해는 어떻게 후지코시의 책임을 추궁할지 머리를 맞댄다. 강제동원 문제의 변화를 바라는 이들의 기부로 마련한 사무실과 시민들의 성원이 있기에 호쿠리쿠연락회는 지금도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 주주총회가 열린 2월 25일 우익 세력이 몰려와 "너희가 일본의 수치다", "한국에 가서 살아라" 등 모욕적이고 위협적인 언행으로 방해했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카가와 사무국장은 "(피해자) 할머니들의 분노를 지켜주고 싶기에 우리도 함께 분노한다"고 말했다.

다만 활동가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얼마나 더 활동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나카가와 사무국장은 "활동을 이어갈 젊은 세대가 있는 걸 확인했다"며 오히려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우익 세력들의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혐오 발언)에 맞선 거리 시위 때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나왔고, 그동안 없었던 감각적인 플래카드도 봤다"며 "이들과 함께 힘을 합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일 과거사 고리로 연대 넓혀가는 日단체들

다무라 미쓰야키 윤봉길의사와함께하는모임 회장이 2월 26일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윤봉길 의사 암장지적비 앞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가나자와=류호 특파원

나카가와 사무국장 말처럼 일본 시민단체들은 연대를 통해 서로의 활력이 되고 있다. 도야마현이 있는 호쿠리쿠 지역 시민단체들은 한일 과거사로 뭉치고 있는데, 이들을 이어주는 키워드 중 하나가 '윤봉길 의사'다. 도야마현 옆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 윤 의사 암장지적비가 있는데, 이 지역 시민단체들을 이어주는 상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윤 의사 암장지적비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에 참전한 일본 육군 전사자들의 묘지가 있는 '이시카와현전몰자묘원' 사이 가장자리에 초라하게 자리 잡고 있다. 윤 의사는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폭탄 의거를 마치고 8개월 뒤인 그해 12월 19일 가나자와시 미쓰코지산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일본군에 의해 총살돼, 쓰레기 처리장 부근인 이곳에 아무도 모르게 암장됐다.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육상자위대 미쓰코지야마훈련장 후문에 2월 26일 '출입금지'와 훈련장 안내 사항이 걸려 있다. 훈련장 정문에서 약 1㎞ 떨어진 곳으로, 일본 시민단체 윤봉길의사와함께하는모임이 윤봉길 의사 처형 장소로 추정한 곳이다. 가나자와=류호 특파원

그러나 재일동포와 뜻있는 일본인들이 1946년 암장지를 찾아냈고, 1992년에는 암장지적비를 세웠다. 우익 세력들이 호시탐탐 암장지적비를 없애려고 하지만, 한일 시민들은 굳건히 윤 의사의 뜻을 지켜가고 있다. 도야마현과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는 일본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2월 가나자와에 함께 모여 우익 규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윤 의사를 알려온 시민단체 윤봉길의사와함께하는모임은 조사 끝에 윤 의사 총살 장소도 추정했다. 다무라 미쓰야키 회장은 암장지 인근에 있는 육상자위대 미쓰코지산훈련장 입구에서 약 1㎞ 떨어진 곳이 윤 의사의 총살 장소로 본다. 자위대에 현지 조사를 요청했지만, 자위대의 거부로 불발됐다. 하지만 다무라 회장은 총살지 확인 등 윤 의사에 대한 진실 규명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2월 26일 윤 의사 암장지적비에서 만난 그는 "윤 의사는 세계 독립운동과 저항 정신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며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사죄의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베·도야마·가나자와= 류호 특파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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