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범 65만명인데, 중독 치료 병상은 341개뿐

김희래 기자 2026. 4. 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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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둑 무너진 한국]
<7> 붕괴된 마약 치료 인프라

국내 마약사범은 드러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해 65만여명(2025년 기준) 정도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지난해 수사 당국에 적발된 마약사범은 2만3403명이지만, 마약 범죄의 암수율(드러나지 않는 범죄 비율)이 약 28배인 점을 고려한 추산이다.

그런데 마약사범을 치료할 정부 지정 병원 31곳의 병상은 341개뿐인 것으로 5일 집계됐다. 마약 중독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의사도 전국에 4~5명뿐이라고 의료계에선 말한다. 이 바람에 정부 지정 마약 중독 치료 병원 31곳 중 14곳은 전문 의료진이 없어 작년에 치료한 마약 중독자가 한명도 없었다.

법무부는 재범률이 34.5%인 마약사범의 재범을 막지 못하면 1인당 10억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본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마약 유통사범은 엄벌하되, 투약사범은 ‘환자’로 보고 제대로 치료해야 한다”고 말한다. 투약사범들이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야 마약 밀반입, 유통, 구매로 이어지는 범죄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 국내 치료 인프라는 사실상 붕괴 상태다. 마약 중독자의 재활을 돕는 민간 단체도 재정난으로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오홍석 건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마약 중독 전문 의료진과 시설을 확충하는 정부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마약 전문의 전국에 4~5명뿐… 치료기관 31곳 중 14곳은 환자 0명

지난해 상반기 기준 보건복지부가 마약 중독자들의 치료를 돕기 위해 지정한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기관’은 31곳이고, 여기서 치료한 마약 중독자는 총 623명이었다. 그런데 31곳 중 4곳에 중독자 437명(70.1%)이 몰렸다. 인천참사랑병원 218명(35.0%), 대구 대동병원 84명(13.5%), 국립부곡병원 70명(11.2%), 서울 은평병원 65명(10.4%) 등에 환자가 편중된 것이다. 이 병원들에 전문성 있는 의료진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독 환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 지정 병원 31곳 중 14곳은 지난해 상반기 치료한 마약 중독자가 한명도 없었다. 14곳 중 13곳은 2024년부터 2년 연속으로 마약 환자 치료 실적이 없었다. 정부 지정 병원 전체 기준 정신과 전문의는 2021년 132명에서 2024년 168명으로 늘었지만, 중독 환자들이 소수 병원에 편중되면서 정부 지정 병원의 절반 가까이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홍석 건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마약 중독자를 치료할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의사는 4~5명 정도”라며 “전문성 있는 의사가 없으니, 마약류 중독 치료 병원으로 지정돼도 중독자를 치료하지 못하는 곳이 속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 지정 마약류 중독 치료 병원 31곳의 전담 병상 수도 전체 중독자 수를 감안할 때 턱없이 모자란다. 지난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병원 31곳에 지정된 마약 중독자 전담 병상은 총 341개였다. 이는 지난해 적발된 마약사범 2만3403명의 1.5%에 불과한 숫자다. 전문가들이 드러나지 않은 암수 범죄자를 포함해 작년 마약사범을 65만여명으로 추산하는 점을 고려하면 병상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의료계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마약 중독 치료에 전문성이 있는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마약 중독자 치료는 일반적인 정신과 치료와 비교할 때 리스크가 크다고 의료인들은 말한다. 중독자의 공격성과 의료 사고 가능성 때문이다. 반면 의료 수가 등 보상이 열악해 마약 중독 치료 분야는 의사들의 기피 대상이 된 지 오래됐다는 게 의료계 이야기다.

실제로 정부 지정 A병원에서는 2024년 5월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A병원 관계자들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지난해 11월 재판에 넘겨졌고, A병원은 지난 1일 폐업했다. 법무부 산하 국립법무병원 관계자는 “중독자 특성에 따라 맞춤형 치료를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확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의료진에 대한 보상 체계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지정 마약 중독자 전담 병원에 접근하기 어려운 점도 치료에 장애가 된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경기도마약중독치료센터’는 인근 기흥역에서 7.8㎞나 떨어져 있다. 환자들이 병원을 찾으려면 기흥역에서 1시간 20분을 걷거나 20여 분 간격으로 다니는 광역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이 센터를 맡고 있는 윤영환 경기도립정신병원장은 “센터가 산골짜기에 있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중독자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에 치료기관이 더 많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마약 중독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민간 재활 공동체도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다. 한국에선 2012년 일본의 입소형 마약 중독자 재활 공동체인 ‘다르크(DARC)’를 본뜬 재활 공동체가 여럿 생겼다. 하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지원 없이 후원금에 의존해 운영되다가 상당수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 지금은 시설명을 바꾼 리본하우스(옛 김해 다르크) 등 전국에 네 곳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재활 공동체가 3500곳이 넘고 일본은 100곳 정도가 운영 중이다.

박영덕 인천참사랑병원 실장은 “마약 중독자가 재활공동체를 통해 평범한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해야 진정한 회복”이라며 “지역별로 재활 공동체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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