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빵바지’도 권했던 美국무부, 이젠 “외교관들 정장 입어라”

미국 독립 직후인 1789년 설립돼 연방 정부 부처 중 가장 오래된 기관인 국무부가 237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교관, 직원들에게 ‘드레스 코드’에 관한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했다고 폭스뉴스 등 미 언론이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상대국과의 회의 또는 기타 행사에 참석하는 외교관은 별도로 명시하지 않는 한 비즈니스 정장을 입고, 외모는 단정하고 전문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관들은 정장 뿐 아니라 ‘카고 팬츠’(건빵 바지)도 입어야한다”(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며 ‘탈(脫)격식 공공외교’를 강조했던 민주당 행정부와 정반대다. 트럼프 행정부는 외교관들에게 ‘미국 우선주의’ 가치·이념을 전파하는 사절로서 ‘위엄’을 갖추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강한 미국’을 과시할 건국 250주년을 앞두고 있어 특히 더 그런 분위기다.
딜런 존슨 국무부 대외 협력 담당 차관보는 이날 ‘드레스 코드’와 관련 X(옛 트위터)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새로운 정책은 우리 외교관들이 신뢰와 존중,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나라의 위엄을 보여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고 했다. 한 국무부 관계자는 폭스뉴스에 “최근 몇 년간 일부 외교관이 상당히 캐주얼한(격식 없는) 복장을 하고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조치”라고 했다.
이런 ‘군기 잡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및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직업 외교관(FSO)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1기 때 직업 외교관들의 ‘방해’ 때문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 했다는 문제의식도 상당한 편이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 2기 들어 국무부는 주요 정부 부처 중 가장 혹독한 인력 감축, 예산 구조조정 등을 겪어야 했다. 특히 바이든 정부 국무부가 추진했던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관련 프로그램이 대거 폐지됐고 산하 싱크탱크엔 ‘트럼프’란 이름이 붙었다. 국무부가 이례적으로 드레스 코드 관련 지침까지 작성한 것은 그 연장선상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외교관 선발·교육 방식을 개편해 시험에서 DEI 관련 문항을 제거하고, 미국 우선주의 관련 저술도 교육 내용에 포함시켰다.
기강·규율 다잡기는 국방부도 마찬가지다. 피트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해 10월 전 세계 미군 장성급 지휘관 800여 명을 소집해 강한 전투력을 위해 ‘뚱뚱하지 않은 몸매’와 ‘단정한 두발’을 갖추라 지시했다. 주(州)방위군 소령 출신인 헤그세스가 훈시하듯이 “턱수염, 긴 머리, 피상적인 개인 표현은 이제 허용되지 않는다” “이발과 면도를 해야 한다”고 장성들을 다그쳤다. 이런 지침들에 대해서는 미국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외교관·군인의 ‘기본’을 강조한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전사자 추모식에 야구모자를 쓰고 나온 트럼프부터 격식을 갖춰라”는 비아냥이 동시에 나온다.
최근 트럼프의 사돈인 찰스 쿠슈너 프랑스 대사 등 트럼프가 내보낸 외교관들이 거친 언사로 주재국과 마찰을 빚는 일이 이례적으로 많은데, 이 역시 주재국 국민을 상대로 현장에 스며드는 공공 외교를 강조했던 바이든·오바마 정부와 비교했을 때 외교를 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철학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0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21세기 외교관은 해당국 외교부 담당자를 상대할 뿐 아니라 시골의 부족 어르신도 만나야 하며, 줄무늬 정장뿐 아니라 카고 팬츠도 입어야 한다” “타운홀 미팅, 지역 행사 등에 참석해 타부처와 민간 영역 사람들을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라”고 독려했다. 그는 외교관들이 공공과 민간 영역의 벽을 허물고 협력하라는 취지의 ‘4개년 외교·개발 정책 검토 보고서(QDDR)’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시기 한국 주재 대사들이 김장을 하고, 사이클을 타거나 야구장을 찾아 한국 대중과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시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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