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비의 위험한 국가 길들이기]유시민을 ‘위한’ 비판
최근에 유시민 작가가 한 정치 유튜브 채널에서 이야기한 소위 ABC론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검찰개혁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 내 갈등을 설명하며 민주당 내에 서로 다른 3개의 그룹이 벌이는 갈등을 그 배경으로 들었다. 그에 의하면 민주당 안에는 고정지지 그룹 A, 자신의 필요와 이익에 의해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는 그룹 B, 마지막으로 그 교집합에 해당되는 그룹 C가 존재한다. 아마도 유 작가는 검찰개혁이나 다른 이슈를 둘러싸고 소위 뉴이재명 그룹으로 지칭되는 새로운 흐름이 기존 강성 지지층이라고 불려온 정치인들 그리고 주변의 지지 그룹들과 충돌하는 현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유 작가의 주장은 정치적 지지가 대체로 신념과 이해라는 두 축 위에서 형성된다는 이론을 변주한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는 결코 흔한 정치체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전후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면서 민주주의가 급속히 확산됐고 20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국가가 스스로를 민주주의 국가라 부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한때 민주주의에 시큰둥했던 국가들조차 그 이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유시민에게 있어 정치는 ‘신념’
‘ABC’론은 도덕적 서열 매겨
현실정치의 다양성·복합성을
단순화하고 ‘낙인’화할 뿐이다
이렇게 민주주의로 전향한 나라들의 정치인과 국민들 모두를 민주주의의 가치 자체에 대한 충실한 지지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안에는 미국 천하에서 민주주의를 내세움으로써 얻게 될 현실적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당연히 이 집단은 상황이 변할 경우 언제든 다른 선택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취약한 지지층이다.
그 자체로 별 논란거리가 될 것 없는 ABC 구분론이 왜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유 작가가 이 구분법을 매개 없이 현재의 정치적 갈등에 그대로 적용해 강한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입장을 신념적 태도로, 그와 대립하는 입장을 기회주의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선택으로 읽은 것에 있다. 이는 다양한 동기와 판단을 반영하지 못한 채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유시민이라는 인물이 이런 사고의 함정에 빠진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국처럼 권위주의가 혹독하고 길게 지배한 사회에서 그 반대편에 선다는 것은 어지간한 고집과 강단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1970년대 유신체제와 1980년대 군부통치 아래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한다는 것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개인의 삶 전체를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유시민 같은 인물이 민주주의 투쟁의 최전선에 서는 데에는 엄청난 의지와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세상의 고통에 눈을 감고 도서관에서 고시서에 머리를 파묻거나 전두환 아래에서도 전문인으로서, 잘나가던 기업의 회사원으로서 행복을 추구할 기회가 그들에게 열려 있었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심지어 유시민은 엘리트 대학에 다녔을 뿐 아니라 대구 출신이다. 마음만 먹으면 당시 주류라 불리던 TK 그룹에 가까이 가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에게, 그리고 그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그와 비슷한 길을 걸어간 사람들에게 민주주의가 신념의 언어로 이해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만큼 그들에게 신념이 아닌 이해에 따라 무엇인가를 손쉽게 지지하고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감은 더 강할 수밖에 없다.
유시민의 ABC론은 이러한 맥락을 깔고 있다. 특히 그는 과거 이재명과 민주당과 다른 정치지향을 보였던 정치인들, 새로운 지지 그룹이 과거부터 일관되게 이재명과 민주당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어온 사람들과 경쟁하려 하는 것에 강한 경계심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경계심을 이해하더라도 검찰개혁을 둘러싼 논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현실을 왜곡한다. 그의 거친 ABC론은 분석이 아니라 낙인이 된다. 특히 그와 대척점에 선 사람들의 생각은 재단되고 도덕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놓인다.
민주당 지지층을 비롯해 심지어 그 밖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도 그의 주장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 때문이다. 유 작가는 서로 다른 입장을 함부로 재단하고 서열화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정치평론의 기본룰을 충분히 지키지 못했다.
유시민이라는 이름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에 한번쯤 내려서 구호라도 외쳐본 사람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무게를 갖는다. 그를 둘러싼 강한 지지와 비판 역시 이러한 영향력의 반영이다. 그런 유시민에게 책임 있는 사유와 말의 깊이를 보이길 바라는 것은 반드시 민주당 지지자만은 아닐 것이다.

윤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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