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을 전시하지 않는 위로, ‘힌드의 목소리’[MK무비]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kiki2022@mk.co.kr) 2026. 4. 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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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통의 구조 요청, 그날의 침묵을 끝까지 붙잡다.'

영화는 구조를 갈구하는 아이의 음성 기록에서 출발해, 끝내 닿지 못한 구조의 시간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감정적 과잉을 배제한 담백한 카메라는 비극을 전시하지 않겠다는 작품의 단단한 태도를 투영한다.

감정을 터뜨리기보다 안으로 눌러 담는 절제된 연기를 통해, 구조를 기다리는 시간 속에 밴 공포와 고립감을 세밀하게 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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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차가운 1분 1초, 스크린 밖으로 번지는 울림
사진 I 영화사 찬란
‘단 한 통의 구조 요청, 그날의 침묵을 끝까지 붙잡다.’

절제가 빚어낸 거대한 울림이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힌드의 목소리’(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는 2024년 1월 29일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피난 차량이 공격받은 뒤 홀로 생존한 여섯 살 소녀 힌드의 간절한 전화 한 통. 영화는 구조를 갈구하는 아이의 음성 기록에서 출발해, 끝내 닿지 못한 구조의 시간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짧은 교신에 담긴 공포는 서사의 중심축이 되어 관객을 참혹한 현장의 한복판으로 강렬하게 끌어들인다.

이 작품은 자극적인 재현보다 ‘청각적 환기’를 택한다. 스크린은 보여주는 대신 들려줌으로써 비극을 증명한다. 절제된 미장센 위로 교차하는 교신 기록과 절박한 호소, 그리고 서서히 길어지는 침묵은 숨 막히는 긴장을 구축한다.

관객은 시각적 정보를 차단당한 채 오직 음성에 의지해 사건을 감각하며, ‘목격하면서도 조력할 수 없는’ 무력한 위치에 놓인다. 긴장은 자극적인 장면이 아닌, 1분 1초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시간의 밀도에서 발생한다.

사진 I 영화사 찬란
구조의 과정 또한 서사의 핵심이다. 불과 몇 분 거리의 구조대는 교전 지역 진입 승인과 안전 확보라는 현실적 장벽 앞에서 멈춰 선다. 관료적 절차와 통신의 한계로 인해 지연되는 시간은 그 자체로 거대한 비극이 된다.

영화는 이를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빠르게 소비되는 뉴스가 아니라, 끝까지 견뎌내야만 했던 고통의 시간을 그대로 보존하며 관객이 그 흐름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형식 면에서도 독창적이다. 극영화의 연출과 다큐멘터리의 실증성을 절묘하게 배합해 증언의 입체감을 살렸다. 실제 기록과 재연이 맞물리는 구성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사건의 실체를 더욱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특히 비극을 대하는 창작자의 윤리적 고민이 돋보인다. 감정적 과잉을 배제한 담백한 카메라는 비극을 전시하지 않겠다는 작품의 단단한 태도를 투영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적 완성도를 높인다. 감정을 터뜨리기보다 안으로 눌러 담는 절제된 연기를 통해, 구조를 기다리는 시간 속에 밴 공포와 고립감을 세밀하게 투사한다. 인물의 감정 상태에 집중한 표현 방식은 강한 몰입을 유도하며, 영화적 체험을 넘어선 서늘한 기억을 남긴다. 스크린은 그렇게 잊힐 뻔한 목소리를 현재의 시간으로 소환해낸다.

‘힌드의 목소리’는 전쟁의 대의를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얼마나 많은 구조 신호를 무심히 지나쳤는지를 고요히 자각하게 한다. 하나의 목소리와 그 주변을 맴돌던 시간에 집중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날의 비명을 제대로 들었는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있는가. 영화는 해답을 내놓는 대신,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며 기억되어야 할 시간을 붙든다.

한편, 영화는 상영관 밖에서도 기억의 연대를 이어간다. 사건이 발생한 1월 29일을 기리는 ‘129원 기부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아카데미 기획전부터 시작된 이 이벤트는 관객 1명당 129원을 국제구호단체 적신월사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개봉 이후에도 기부를 지속하며 비극의 날짜를 잊지 않겠다는 연대의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오는 4월 15일 개봉. 15세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8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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