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남겨야 할 것은 형식 아닌 원리

경기일보 2026. 4. 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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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을 말할 때 우리는 늘 두 개의 언어 사이에 선다.

새로움은 남지만 그것을 무형유산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희미해진다.

결국 무형유산은 그대로 두는 것으로 보존되지 않는다.

이 두 가치가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탱할 때 무형유산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의 언어로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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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연출가

무형유산을 말할 때 우리는 늘 두 개의 언어 사이에 선다. 하나는 계승과 보전이고 다른 하나는 동시대적 해석이다. 전자는 지켜야 한다고 하고 후자는 바꿔야 한다고 한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끊임없이 충돌하며 동시에 작동한다.

보전에만 머문 무형유산은 결국 박제가 된다. 형식은 남지만 그것이 작동하던 감각은 사라진다. 반대로 해석에만 치우친 작업은 정체성을 잃는다. 새로움은 남지만 그것을 무형유산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희미해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를 마주한다. 계승과 해석은 양자택일이 아닌 함께 작동해야 하는 하나의 구조다.

그렇다면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무형유산의 본질은 형식에 있지 않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무대는 바뀌고, 매체는 확장된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가 사라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전승이 아니다.

흔히 무형유산의 전승을 두고 기술의 반복에 머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 축적된 실기는 단순한 답습이 아니다. 그것은 몸을 통해 축적된 감각이며 시간 속에서 다듬어진 사유의 방식이다. 말로 정리된 이론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하나의 깊은 철학을 형성한다.

무대 위에서 원형과 새로운 형식이 함께 놓일 때 관객의 이해는 오히려 더욱 또렷해진다. 경험상 새로운 형식은 관객에게 접근의 문을 열고 원형은 그 안에서 깊이를 드러낸다. 낯선 것은 해석을 통해 가까워지고 익숙한 것은 원형을 통해 다시 낯설어지며 의미를 획득한다. 이 두 층위가 겹쳐질 때 무형유산은 설명되지 않아도 스스로 전달된다.

결국 무형유산은 그대로 두는 것으로 보존되지 않는다. 오히려 적절한 변형을 통해서만 그 안에 담긴 본질이 현재의 시간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계승은 고정이 아니라 지속이며 해석은 파괴가 아니라 확장이다. 이 두 가치가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탱할 때 무형유산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의 언어로 존재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다시 작동하게 할 것인가다. 남겨야 할 것은 형식이 아니라 원리다. 그 원리가 살아 움직일 때 무형유산은 비로소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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