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우울을 건너… 다시 마주한 시간을 기록하다

최명진 기자 2026. 4. 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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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식 시인 6번째 시집 ‘괜찮은 꿈’ 출간
삶의 고통, 시간의 흐름 담아낸 4부 구성
고독 속에도 이어지는 존재의 시간 그려

상실과 우울, 설움의 정서를 중심으로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길어올린 감각과 사유를 담아낸 시집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박노식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괜찮은 꿈’(문학들刊)이다.

박 시인은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화순 한천면에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2024년 시집과 시화집을 연달아 펴낸 데 이어 올해 신작까지 선보이며 창작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됐다. 1부 ‘상실이 큰 사람은 침묵을 일찍 배운다’, 2부 ‘나는 우울의 집에서 태어나 오래 걸었다’, 3부 ‘한 곳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은 거기에 설움이 있기 때문’, 4부 ‘한때의 상큼한 노래는 깨어진 조각처럼 뒹군다’ 등 각 부제에서 드러나듯 시집 전반에는 상실과 우울, 설움이 반복적으로 호명된다.

시인은 자연의 이미지와 기억을 겹쳐 놓으며 시간의 흐름을 풀어낸다.

‘무늬’에서는 “오늘의 푸른 잎은 어제의 낙엽이 건네준 비애”라고 말하며 현재와 과거가 이어지는 생의 순환을 짚는다. 흔들리는 잎을 바라보며 “잎마다 표기할 수 없는 악보들이 숨어서” “나의 귀는 어느덧 소리의 애인이 됐다”고 표현한 ‘오래 흔들리는 잎들은’에서는 일상의 장면을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시집에는 이별과 삶의 태도도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떠나는 것은’에서는 떠남을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표지의 아름다움을 가만히 덮어두는 일과 같다”고 비유한다.

시집 곳곳에 배치된 이러한 구절들은 일상의 경험을 통해 삶을 돌아보게 한다.

고통에 대한 인식도 시집의 중요한 축이다. ‘낙화’에서는 “나는 우울의 집에서 태어나 오래 걸었다”고 밝히며, “고통이 나를 키웠고” 그 흔적이 현재의 자신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 “떨어진 꽃잎은 쓸쓸하여도 그 향은 오래 남아서 내가 존재한다”고 덧붙이며 고통의 시간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드러낸다.

이같은 시선은 ‘폐가’와 ‘괜찮은 꿈’에서도 나타난다. 폐가에서 ‘녹슨, 붉은 못 하나를’ 꺼내 들며 누군가의 ‘친절한 노크’를 기다리는 장면이나, 눈길에 미끄러진 고라니가 여러 번 넘어지면서도 끝내 일어나 제 길을 가는 모습은 시집 전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시인은 고립된 상태를 스스로 감내하는 존재로 자신을 그린다. ‘아주 오래 혼자인 사람’에서는 밤마다 하늘에 올라 ‘별들의 파수병’이 되는 장면을 통해 고독 속에서도 이어지는 존재의 시간을 그려낸다.

한편 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았다.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 ‘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 ‘가슴이 먼저 울어버릴 때’ 등을 펴냈으며,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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