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강화도조약 150년 특별전 ‘인천, 세계의 바다에 뛰어들다’

박경호 2026. 4. 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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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열린 조선의 빗장… 150년 전 비극을 엿보다

인천시립박물관, ‘도전과 응전’ 되새기는 시도
개항 제물포 변화상·그날 담은 두루마리 일기
국제 정세 대응법 시사… 내달 10일까지 전시

신헌 ‘심행일기’ 상권(왼쪽)과 하권.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인천시립박물관은 1876년 2월 체결된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이하 강화도조약) 150년을 맞아 기획특별전 ‘인천, 세계의 바다에 뛰어들다’를 내달 10일까지 진행 중이다.

강화도조약은 우리나라가 외국과 체결한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일본의 조선 침략 의도가 반영된 ‘불평등조약’이다. 인천시립박물관의 이번 특별전은 당시 격변하는 국제 질서 속 ‘역사의 도전과 응전’이라는 입체적 관점으로 강화도조약을 되새겨보자는 시도다. 논쟁적이며 다양한 토론 거리를 낳을 수 있을 만한 기획인데, ‘트럼피즘’으로 또다시 격변에 휩싸이고 있는 오늘날 국제 정세 속 한국이 대응해야 할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주는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는 강화도조약 7년 후 생겨난 개항된 제물포(인천)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1부 ‘새로 태어난 인천’, 1부에서 시계를 되돌려 강화도조약 직전 동아시아와 조선의 정세를 설명하는 2부 ‘개국전야 : 조선이 마주한 세계’, 강화도조약 협상 상황과 그 이후 상황을 담은 자료들을 전시한 3부 ‘도전과 응전’으로 구성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강화도조약과 관련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유물들을 선보여 주목된다. 강화도조약 협상 당시 조선 측 전권(全權)대신 신헌(1810~1884)이 강화도로 가는 여정과 협상 과정을 기록한 ‘심행일기’는 상·하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 각각 분산 소장돼 있다. ‘심행일기’ 상·하권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공개됐다. ‘심행일기’ 상권은 신헌이 조정으로부터 명을 받아 강화도로 도착해 일본 사절단과 마주하기까지 상황을 담았고, 하권은 일본 측 전권대신 구로다 기요타카(1840~1940)와의 팽팽한 문답기와 일본 측의 내정간섭 시도 등의 구체적 정황이 기록됐다.

1876년 당시 일본인이 찍은 강화도조약 체결지 연무당.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신헌은 무관 출신으로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 염창을 수비했고, 이후 강화도 연안에 포대를 구축한 인물인데, 강화도조약 때는 전권대신으로 외교 협상을 이끌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조선이 1875년 9월 운요호사건을 비롯한 일본의 일련의 행위를 군사 도발로 여기고 대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립박물관 측은 “조선은 전쟁을 피하면서도 국격을 지키기 위해 외교적 대응을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시립박물관이 지난해 입수한 길이 12.6m짜리 두루마리 형태의 ‘강화도조약 일기’는 협상 현장에서 기록한 문서다. 급하게 흘려쓴 글씨와 먹 자국 등이 당시 긴박했던 현장 분위기를 가늠하게 한다. 시립박물관은 이 문서에 대한 본격적인 해제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근대기 대표적 초상화가인 석지 채용신(1850~1941)이 그린 한말 대표적인 위정척사 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 최익현(1833~1906)의 초상화(1925·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도 대중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최익현의 초상 옆에는 개화파의 시조 격인 박규수(1807~1877)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시립박물관 측은 이번 전시에 대해 “강화도조약 이후 150년 동안 한민족은 숱한 고난과 좌절을 겪으며 남의 나라 전쟁터가 되기도 했고, 아예 국권을 침탈당하기도 했으며 광복 후 역사도 순탄치 않았다”며 “강화도 조약 이후 한국 근현대사에 끊임없이 가해져온 역사의 도전에 한국인들이 성공적으로 응전해 온 결과로,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약하고 가난했던 나라의 문화(K-컬처)에 세계인이 열광하고 있다는 게 이 전시의 관점”이라고 했다.

전시에 대한 반론도 나온다. 김창수 인문도시연구소장은 “강화도조약은 조선이 ‘자발적으로 세계에 뛰어든’ 계기가 아니라, 운요호사건 뒤 일본의 무력 시위와 협박 속에서 체결된 불평등 조약이며, 개항·연안 측량권·치외법권·통상 특혜를 통해 조선의 영토·사법·경제 주권을 침해한 식민지적 예속의 출발점이었다”며 “오늘의 한국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은 강화도 조약이나 개항의 결과가 아니라, 식민지 종속과 수탈, 해방 뒤 분단의 비극까지 견디며 그것을 극복해 온 민족의 저력”이라고 했다.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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