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공급 20% 증발…복구도 최대 5년 걸려 ‘에너지 플랜B’ 비상[美-이란 전쟁]
중동 정유소·가스시설 잇달아 피격
호르무즈 원유운송 10분의1로 줄어
LNG 공급감소, 우크라戰 직후의 2배
EU 횡재세 검토·이집트 전기료 인상
韓·日 등 아시아 국가 석탄발전 늘려
알제리·인도는 대체 공급처로 부상

미국·이란 전쟁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사우스파스 가스전을 공격하고 이란이 카타르 라스라판 액화천연가스(LNG) 시설 공격으로 맞대응한 지난달 18일을 정점으로 한도 없는 에너지 전면전에 들어갔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난이 극심해지면서 각국은 전기료 인상과 석탄 에너지 회귀 등의 고육책을 내놓고 있다.
4일(현지 시간)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외신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의 하루 원유 운송량은 2024년 최대 2000만 배럴에 달했지만 현재는 200만 배럴 이하로 추산된다. IEA는 사실상 운송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에 의한 공급 부족량(약 500만 배럴)의 3배 이상에 이른다. 줄어든 LNG 규모는 약 1400억 ㎥로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발생한 750억 ㎥의 2배에 육박한다.
2일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총공격 발표 이후 중동 지역에서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특히 이전에 공격했던 곳을 재차 공격해 재가동을 끊어놓는 패턴이 반복된다. 4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이란 부셰르 원전 단지는 2월 28일 이후 네 번째 공격을 받았다. 3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위치한 합샨 가스시설도 이란의 공격을 받았는데 이곳 역시 두 번째 피격이다. 같은 날 이란이 공격한 쿠웨이트 미나알아흐마디 정유소는 지난달 중순에 이어 두 번째 공격을 받았다. 동일 표적에 대한 재차, 3차 공격은 시설 피해를 더욱 키우며 에너지 시설의 재가동에 필요한 시간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

뾰족한 에너지 안정 방안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중동 에너지 시설 복구에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의 공격을 받은 카타르의 라스라판 LNG 단지는 피해 복구에 약 5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의 경우 이란이 설치했다고 주장하는 기뢰 제거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기뢰는 무인 잠수정이나 잠수부를 투입해 하나씩 처리해야 하는 고위험 작업인 데다 호르무즈해협은 조류가 복잡해 작은 기뢰를 탐지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원유도 마찬가지다. 장기간 방치해서 물·침전물·미생물·산소가 섞이면 바닥에 슬러지가 두껍게 쌓이고 정제 공정을 방해할 정도로 품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그간 비축유로 버텨오던 세계 각국들은 전기세 인상과 소비량 감축 등 고육지책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일본 정부는 최근 에너지 절약 등 수요 억제책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의 80%를 가스발전으로 충당하는 이집트는 이번 달부터 상업용 전력 사용자와 일부 주거용 전력 사용자를 대상으로 전기요금을 각각 20%, 16%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유럽에서는 에너지 기업에 대한 횡재세 논의가 고개를 들었다. 독일·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오스트리아 5개국 재무장관은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에너지 기업에 대한 초과 이윤세 도입을 촉구했다. 전쟁으로 반사이익을 누리는 에너지 기업들에 세금을 걷어 소비자 부담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럽 가스 가격은 2월 28일 개전 이후 70% 이상 급등한 상태다.
저탄소 정책으로 활용을 줄여오던 석탄이 대체 에너지로 각광받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자국 석탄발전소에 최대 가동률을 유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태국과 방글라데시 역시 석탄발전소 가동률을 최대로 높였다. 원유 90% 이상을 중동에서 의존하는 일본 역시 환경 명목으로 제한했던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을 이달부터 1년 동안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긴급 조치에 착수했다. 한국 정부도 석탄발전량 상한선을 해제한 상태다. 사만다 다트 골드만삭스 글로벌 원자재 연구 공동 책임자는 “중동산 LNG 외에 대안이 없는 아시아 국가들은 더 긴 기간을 석탄에 의존할 수 있다”고 봤다.
장기적으로는 이란을 우회할 수 있는 중동 에너지 파이프라인과 중동 이외 에너지 생산국들의 부상이 예측된다. 우선 수에즈운하를 가진 이집트는 사우디산 원유를 지중해로 운송하기 위한 대체 물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수혜가 기대된다. 수에즈만에서 이집트를 가로질러 지중해 연안까지 이어지는 ‘수메드 파이프라인’의 유량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에 LNG를 수출해온 알제리 등 아프리카 국가들도 이란 전쟁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노리고 있다. 인도 정부도 천연가스 인프라 구축 및 확장을 추진하며 에너지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장기적으로 에너지 수급 루트가 다변화될 경우 미국과 중동 중심이었던 기존 에너지 패권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윤선 기자 sepys@sedaily.com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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