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착취하는 대학엔 미래가 없다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6. 4. 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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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분회는 교육부가 권고한 ‘공무원 보수 인상률에 연동한 강의료 인상’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29일부터 부산대 본관 앞에서 무기한 파업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분회 제공

이수경 | 부산대 강사·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분회 조합원

내가 강사로 일하고 있는 부산대에는 전국에서 몇 없는 비정규 교수 노동조합이 있다. 우리가 대학 본관 앞에 파업 농성 천막을 친 지 100일 가까이 지났다. 천막에 앉아 ‘자신이 돌아올 때 있어달라’는 학생의 쪽지를 생각하자니, 불안정한 강사의 삶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편지를 품고 대학을 떠난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우리는 언제까지 서로를 잃어야 하는가.

천막에 손길이 들어와 상념을 깼다. 천막의 하루는 끝없는 기다림과 모욕의 시간이지만 놀랍게도 따사로운 연대의 시간이기도 하다. 강의 고민, 연구 지원 정보, 방학 중 생활고를 나누다, 자기 연구 이야기가 나오면 눈을 반짝인다. 어느 순간 책을 편다. 그렇다, 우리는 어디서든 연구해왔다. 책을 펼 공간만 있다면 천막이라고 다를 게 있나.

다음 학기 수업에서 다룰 그레이스 엠(M.) 조의 ‘유령 연구’를 읽고 있는데, 한 선생님이 우리 이야기냐 묻는다. 물론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에는 오랜 유령이 있었다. ‘시간강사’라 불리며 대학의 연구와 교육을 떠받쳤지만, 수업이 끝나면 작은 자리조차 갖지 못했던, 법적 지위도 없이 시간당 급료로 계산되던, 나의 선배이자 스승인 이들이다. 대학은 이 유령들의 노동 위에 세워졌지만 그들의 얼굴을 지워왔다.

한국 대학의 차별 구조에 맞선 강사법 투쟁과 2019년 시행된 강사법 이후에도 차별의 관성은 깊이 남았다. 강사의 삶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법에 명시된 방학 중 임금도 연간 방학 22주 중 단 4주만을 받고 있다. 그마저도 사립대 강사들은 받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임금 투쟁 중이다. 공무원 보수 인상률에 연동한 강의료 3% 인상. 적정 임금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활을 꾸려갈 하한선을 건 싸움이다.

여전한 삶 앞에서 사람들은 강사법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법은 해결책이 아니라 차별을 중단하겠다는 표지일 뿐인지 모른다. 중단이 차별을 끊어내기 위해 개입해야 하는 공백일 뿐이라면, 우리는 이를 인지하고 메워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법은 삶의 제도가 아니라, 삶이 무너지는 자리 위에 선 기념비가 될 뿐이다. 차별의 관성을 끊기 위해서는 차별보다 더 끈질긴 물음이 필요하다. 선생님의 말처럼 우리의 요구는 바로 그 물음이다. 한국 사회가 한번도 진지하게 묻지 않았던 강사의 노동가치에 대한 질문.

강사는 누구인가. 학생의 선생이며 대학원생의 미래다. 강사의 노동은 교육과 연구이며, 그 노동은 대학이라는 학문 생태계를 지탱하고 있다. 강사의 노동이 학생들과 학문 생태계와 이어져 있음을 상상하지 못한 채 ‘비용 절감’만을 고려할 때, 대학의 한 축은 강사의 불안정한 삶과 함께 무너질 것이다. 학생은 선생을 잃고, 우리는 동료를 잃으며, 남은 이들은 살아남은 슬픔 속에 고립되어갈 것이다.

정부와 대학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글로컬 거점 국립대학’ 같은 미래 계획을 맹렬하게 추진한다. 하지만 대학의 한 축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그 미래는 누구와 함께하는 미래인가. 착취 위에 세운 대학에는 미래가 없다. 그 대학에 있는 이들의 삶이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를 잃어갈 때 대학은 무엇을 잃는가. 강사의 삶을 지키는 일이 학문 생태계의 다양성과 지속성, 그리하여 학생의 학습권을 지키는 일임을 대학과 사회가 진지하게 생각할 날은 올까. 지워진 얼굴들이 스쳐 지나며 왜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떠난 이들, 멀리서 온라인 농성을 이어가는 이들, 불안한 삶을 껴안고 대학 어딘가에서 연구하고 교육하는 이들까지. 천막은 하루하루 동료의 얼굴을 그리는 자리이자, 대학과 사회가 지워온 얼굴들을 다시 그려내는 곳이다.

각자의 연구에 몰두하고 연구 성과를 경쟁하며 서로의 존재조차 알기 어려운 우리는 서로를 발견해왔다. 천막에서 선생님이 부채에 써준 어느 날의 말은 향원익청(香遠益淸), 멀어질수록 맑아지는 향. 서로를 지키려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 천막의 하루는, 멀어질수록 맑아지는 향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어느 날에도 우리가 서로를 발견하도록 할 것이다. 오늘도 천막의 숫자를 바꿔 단다. 이것이 내가 학생에게 할 수 있는 답변이자 약속이기 때문이다.

※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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