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도, 박근혜도 “국민 배반했다”…‘파면의 역사’로 본 대통령 권한과 책임[윤석열 탄핵 1년]

“우리의 헌정사적 맥락에서 계엄 선포가 국민에게 준 충격과 국가긴급권의 남용이 국내외적으로 미치는 파장을 고려하면, 피청구인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국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리라는 믿음이 상실되어 더 이상 그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2025년 4월4일 윤석열 파면 결정, 2024헌나8)
“공직자가 아닌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의견을 비밀리에 국정 운영에 반영했고, 이런 위법행위는 대통령 취임 이후 3년 이상 지속됐다. 이는 대의민주제의 원리와 법치주의의 정신을 훼손한 것으로서 대통령으로서의 공익실현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 (2017년 3월10일 박근혜 파면 결정, 2016헌나1)
2025년 4월4일 오전 11시22분,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헌정사상 두 번의 대통령 탄핵 결정을 통해 헌재는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해 ‘주권자 국민’의 신임을 저버렸다면 공직을 박탈해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시민들은 큰 혼란을 겪어야 했지만, 헌재 결정을 통해 대통령의 헌법적 책임과 의무를 재확인하고 삼권분립 등 민주주의 원칙을 바로세우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정농단과 불법계엄…“중대한 법 위반” 파면 결정타
헌재는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남용해 중대한 법 위반을 저질렀다’는 점을 파면 결정의 핵심 근거로 꼽았다. 탄핵 사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비선 조직을 국정 운영에 개입시켜 사적 이익을 추구한 점, 윤 전 대통령은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해 헌법기관인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헌재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공통된 결론을 내놨다. 사소한 법 위반을 모두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더이상 대통령직을 맡길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을 저지르면 파면돼야 한다는 기준을 세운 것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을 보면, 헌재는 “피청구인은 국회를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계엄 선포를 하고,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원 등을 체포하려 하는 등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군을 동원했다”며 “비상계엄 선포권의 남용과 그에 부수한 행위들은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한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 용도로 남용해 적극적・반복적으로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도왔고, 국정 개입을 허용하면서도 이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며 “이런 과정에서 대통령 지위를 이용했고, 국가기관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법 위반 정도가 매우 엄중하다”고 했다.
대통령 위법행위로 시민들 충격…“주권자에 대한 배반”
헌재는 두 사람의 ‘중대한 위법행위’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고, 이는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책무를 저버리고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라고도 지적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 사건에서 “약 45년만에 다시 정치적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해 국가긴급권을 남용했고,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며 “만약 피청구인이 대통령 권한을 다시 행사하게 된다면 국민들은 피청구인이 헌법상 권한을 행사할 때마다 헌법이 규정한 것과는 다른 숨은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은 아닌지 등을 끊임없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이 ‘헌법 질서를 지키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믿음이 깨져 더이상 국정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 사건에서는 “대통령의 공무 수행을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도, 피청구인은 관련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의혹 제기 행위만을 비난했다”며 “신뢰를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대신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헌재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된 대통령이 어느 한 집단의 이익만 대변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헌재는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본질과 조화될 수 있는 범위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한다”며 윤 전 대통령 주장처럼 ‘정부와 여당에게 불리한 정치환경이 지속돼 국정이 마비됐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대통령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해결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도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므로 자신과 친분 있는세력의 특수한 이익 등으로부터 독립해 국민 전체를 위하여 공정하고 균형 있게 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파면’ 역사가 남긴 교훈…“민주주의 기능 확인, 사전 견제 강화는 숙제”
헌법 전문가들은 반복된 탄핵 결정이 ‘대통령의 권한에도 한계가 있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굳건히 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두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 정도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탄핵 결정을 통해 헌법 수호에 대한 국민들의 의지가 확인됐다”며 “향후 취임하는 어떤 대통령도 섣불리 헌법에 반하는 행위를 행동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이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헌재는 두 번의 탄핵 결정을 통해 ‘중대한 법 위반’이라는 파면의 기준을 세웠고, 향후 취임하는 대통령이나 국민 입장에선 ‘이런 기준으로 대통령직이 박탈될 수 있구나’ 하는 예측 가능성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탄핵 사태까지 이르기 전에 국민이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직접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문제도 지적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권자인 국민이 아무런 헌법적 권력을 갖지 못하는 구조 때문에 탄핵이 반복되고 있다”며 “양극화된 한국 정치권에서의 잦은 충돌을 국민이 조기에 통제할 방법이 없다 보니 극단적 상황이 벌어진 뒤에야 길거리에 나가 탄핵을 촉구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교수는 “국민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정치구조를 만들 때 우리 헌정사에서 탄핵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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