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훈, 농민운동서 국회까지···‘현장형 정치인’의 40년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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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전남광주특별시장 경선 후보는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 지방행정과 국정을 두루 거친 '현장형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굴곡진 삶의 궤적 속에서 지역과 중앙을 오가며 쌓아온 경험은 그의 정치적 자산으로 꼽힌다.
정치 입문은 1995년 '무소속 농민 후보'로 전남도의원에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특히 전남·광주 행정통합 특별법 통과를 주도하며 지역 정치의 핵심 현안 해결에도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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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지방행정·국정 경험 갖춰
통합시장 도전 속 사법리스크 우려도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전남광주특별시장 경선 후보는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 지방행정과 국정을 두루 거친 ‘현장형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굴곡진 삶의 궤적 속에서 지역과 중앙을 오가며 쌓아온 경험은 그의 정치적 자산으로 꼽힌다.
1964년 나주 왕곡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지역 현실과 밀접한 삶을 살아왔다. 광주 인성고 재학 중이던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경험하며 시대의 격랑 한복판에 섰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한 뒤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 사건에 참여했다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했다. 이 기간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아픔도 겪었다.
출소 후 그는 고향 나주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농민운동에 투신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농업용수 사용료 ‘수세’ 폐지 운동을 통해 제도 개선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다시 수감되는 등 험난한 길을 걸었다. 운동을 함께했던 주향득 여사와의 인연도 맺으며 삶의 동반자가 됐다.
정치 입문은 1995년 ‘무소속 농민 후보’로 전남도의원에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재선 도의원을 거쳐 나주시장을 두 차례 지내며 지방행정 경험을 쌓았다. 도의원과 시장 모두 전국 최연소 기록을 세우며 주목을 받았다. 나주시장 재임 시절에는 전국 최초로 학교급식 조례를 제정하고 친환경 급식과 마을 공동급식 제도를 도입하는 등 생활밀착형 정책을 추진했다.
또 노무현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과 맞물려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를 유치, 한국전력을 비롯한 공공기관 이전을 이끌며 지역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 드라마 ‘주몽’ 세트장 조성을 통해 관광객 유치 성과도 거뒀다.
2014년 재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2016년 총선에서 낙선하며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으로 발탁돼 양곡관리법과 청년 창업농 정책 설계에 참여하며 정책 역량을 인정받았다. 또한 한국에너지공대 설립 공약 제안과 특별법 발의를 주도하는 등 입법 활동에서도 존재감을 보였다.
2020년 총선에서 국회에 복귀한 뒤 2024년까지 연이어 당선되며 3선 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경선 전까지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맡으며 지방자치와 균형발전 정책을 다루고 있다.
특히 전남·광주 행정통합 특별법 통과를 주도하며 지역 정치의 핵심 현안 해결에도 앞장섰다. 다만 일각에서는 그간의 정치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논란과 관련해 사법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다는 평가도 함께 제기된다. 신 후보는 나주시장 시절 화훼단지 조성을 추진하면서 자부담금과 부지를 확보하지 못한 화훼영농조합에 2004년 5월과 2006년 2월, 2차례에 걸쳐 12억3천여만원의 국고 보조금과 시 지원금을 지급한 혐의(특가법상 배임 등)로 기소돼 대법원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확정 선고했다. 신 후보는 정치적 음해로 비롯된 사건이라고 반박하고 있으며, 부당하고 억울한 판결이지만 변상금을 납부 중이라고 밝혔었다.
이정민기자 ljm7da@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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