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최초 진해 벚나무 기증한 재일교포 편수개 씨 후손 진해 방문
이후 아들 복근 씨 관리비용 5000만 원 기부
편 씨 후손 4명 2일 25년 만에 진해 방문

진해에 벚나무를 기증한 재일교포 편수개 씨의 후손들이 군항제 기간 진해를 찾았다. 이들이 진해를 찾은 건 25년 만이라고 한다.
진해 출신 재일교포 기업인 편수개(1902~1971) 씨는 4회 진행군항제가 열리던 1966년 10월에 진해시에 벚나무 묘목 1만 그루를 기증했다. 해방 이후 진해 벚나무가 일본 잔재라며 제거됐는데, 편 씨가 기증한 것은 벚나무 되살리기 운동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편 씨 기증 이후 여러 재일교포가 벚나무 기증에 동참했는데, 지금 진해 도심 벚나무 상당수가 이때 심어진 것이다.
가업을 이어받은 편 씨의 아들 복근(1936~2015) 씨는 기업뿐만 아니라 기부 정신도 본받았다. 복근 씨는 2001년에는 벚나무를 유지·관리에 보태라며 2000만 원을 기부했다. 2009년에도 3000만 원을 당시 진해시에 맡겼다.
2일 진해를 찾은 편수개 씨의 후손은 모두 4명이다. 굳이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이들은 25년 전에 진해를 찾은 기억을 떠올렸다. 2001년 복근 씨를 포함한 편 씨 자녀 6명을 포함해 복근 씨 부인과 여러 친척이 여행을 목적으로 진해를 찾았다. 이들은 당시 진해시장을 만났고, 공무원 20여 명이 반겨줬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편 씨의 어머니 묘지에도 가고, 연락이 닿았던 사촌과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에게 진해에서 벚꽃을 본 소감을 묻자 '세계 1등 벚꽃 나무', '일본에도 이런 벚꽃을 피우는 곳이 잘 없다'며 즐거워 했다.
이들은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살았던 편 씨를 비롯해 아버지 뜻을 이어 기증을 이어 온 복근 씨의 기부 활동도 알려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생전에 복근 씨는 한국을 사랑했고, 자기의 뿌리를 찾아 나서고자 가족사를 찾는 데 열중했었다. 본관인 월성(절강) 편 씨가 중국에서 왔다는 자료까지 입수했다.
복근 씨는 이 내용을 책으로 정리해 자서전을 내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진 못했다. 그가 정리한 글에는 벚꽃나무를 얼마나 기부했고, 어떤 뜻으로 기부했는지 등이 적혀있었는데, 복근 씨의 아들이 작은 책자로 그 내용을 엮었다. 후손들은 진해문화원에 이 책자를 맡기려 했으나, 개인정보가 너무 많이 적힌 터라 가족과 상의 후 결정하기로 했다.
이들은 맞이한 우순기 진해문화원 원장은 "오랜 세월 아름다운 진해 벚꽃을 보면서도 재일 교포 편수개·복근 씨가 벚꽃을 기증하고 유지·관리하는 비용까지 꾸준히 기부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서 "몰랐던 시간이 부끄럽지만, 앞으로는 많은 이에게 알리도록 해설사가 관광객에게 설명할 수 있게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논문 '진해 군항제의 성격 변화에 관한 연구'(황정주·2007)에 따르면 진해 벚꽃은 일본인이 진해에 군항을 설치하고 1910년 6월에 본격적인 군항 설치 공사와 시가지 조성을 하면서 정원수, 관광수로 벚나무를 택해 심어 키우게 됐다. 이로 관광객이 많이 몰렸으나 광복 직후 벚나무는 모두 사라졌다.
1960년대에 관광도시로 도약하고자 제주도가 원산지인 왕벚나무를 관광수로 선정했다. 국내에서 묘목을 구하기 어려워 일본에서 2000그루를 사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했다. 이후에도 재일교포, 국내 유지가 지원한 헌금으로 조경이 만들어졌다. 1964년부터 1986년까지 6만 1200그루가 심어졌다. 이후 지자체에서 심고 키웠다. 현재 진해에 있는 벚나무는 36만 그루로 추정한다.
/주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