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이란 전쟁, ‘번역 저널리즘’의 민낯

미국 CNN 방송의 프레드 플라이트겐(Fred Pleitgen) 기자는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의 테헤란에서 전쟁 실상을 알린 유일한 서방 기자이다. 지난 2월말 전쟁이 시작되자 그는 독일에서 비행기로 아르메니아로 가서, 육로로 21시간 운전을 해 테헤란까지 갔다. 테헤란에 머물면서 미군과 이스라엘군에 의해 공습받은 지역을 직접 확인하고, 목격자들을 인터뷰했다. 현장 접근은 이란 정부의 통제와 안내를 받아서 가능했다. 그렇기에 미국 정부로부터 이란의 선전에 이용당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기자가 공습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보도했다는 점에서 그의 보도는 미국 정부의 발표에만 의존하는 타 보도와는 차이가 컸다.
프리랜서 기자 셀리 키틀슨(Shelly Kittleson)은 지난달 31일 바그다드의 한 호텔에서 친이란 민병대 조직에 납치당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거주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 이라크 등 분쟁 지역을 주로 취재해왔다. 그녀의 기사는 이탈리아 대표 통신사 안사(ANSA)와 일간지 일 폴리오(Il Foglio) 등에 실리곤 했다. 납치당하기 전에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구역에서 친이란 민병대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취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미국-이란 전쟁이 6주째에 접어들었다. 해외의 많은 기자와 프리랜서들은 이란 현장은 물론, 이웃한 이라크 바그다드, 레바논 베이루트, 이스라엘 예루살렘 등에서 전쟁을 취재하고 있다. 죽음과 부상 위험을 무릅쓰는 ‘발로 뛰는 보도’(Shoe leather reporting)를 하는 것이다. 이는 분쟁 현장에서 만난 전쟁 피해자와 목격자의 목소리를 직접 기록하는 것이다.
현장에 직접 기자를 보내지 않는 언론은 현장의 취재원이나 주민을 상대로 간접 취재를 한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과 가디언, BBC 등은 이란 출신의 기자를 채용해서 이란 현지를 간접 취재해 보도하고 있다. 과거 이란을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란에 거주하는 지인, 이란에서 탈출한 이주민(디아스포라)을 취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반면 국내 대부분 언론의 이란전쟁 보도는 ‘번역 저널리즘’으로 일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대변인의 목소리가 그대로 전달된다. 대부분 독자적 취재 없이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언론의 보도를 재인용하는 행태다. 최근 들어서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설립한 타스님(Tasnim) 통신사의 자료 화면이 그대로 사용되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어디까지 거짓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이번 전쟁은 경제규모 세계 10위를 자랑하는 우리 언론의 민낯을 보여줬다. 한국언론연감에 따르면, 2024년 중동 지역에 특파원을 파견하고 있는 매체는 연합뉴스, 동아일보, KBS 등 3사에 불과하다. 파견 장소도 이집트와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UAE) 등지다. 전쟁 중인 이란과 이스라엘에는 기자도, 현지 통신원도 없다. 일부 방송사에서는 오만 등에 임시 특파원을 보냈지만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서 중동을 배경삼아 리포팅할 뿐이다. 전달하는 내용 역시 국내에서 확인되는 정보에 비해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 없다.
이웃 일본의 NHK방송은 이번 전쟁 직전까지 테헤란에 지국을 운영했다. 지난 1월 20일 일본 NHK의 가와시마 신노스케(川島 伸介) 기자는 이란 혁명수비대에 체포·구금됐다. 그는 지난해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를 취재, 보도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NHK는 두바이, 예루살렘, 이스탄불, 테헤란, 카이로 등 5개 지국을 포함해 전 세계 31개국에 75명의 특파원을 보내고 있다.
외국 방송에서는 앵커와 자사 고참기자 간 대담 형식으로 전쟁 진행 상황에 대한 설명을 자주 한다. 잘못된 정보 전달에 대한 책임은 해당 언론사가 진다. 반면, 국내 방송사들은 이란 전문가, 중동 전문가를 섭외해서 배경 설명을 인터뷰로 전달하고 있다. 방송 내용의 신뢰는 섭외된 전문가의 몫이다. 더구나 일부 전문가들은 다른 방송, 심지어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해 같은 내용을 반복해 전달하고 있다.
오는 7일은 70번째 ‘신문의 날’이다. 독립신문 창간일을 기념하여 1957년 제정되었다. 관훈클럽 창립 멤버로 ‘신문의 날’ 제정에 앞장섰던 최병우 기자는 1958년 9월 중국과 대만의 금문도 포격전을 취재하다가 조난으로 희생됐다. 취재 없이 번역 보도에 의존하는 요즘 기자들은 현장 확인을 위해 전장에서 사망한 최병우의 ‘기자 정신’을 되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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