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류문명의 여정] 신대륙의 원주민을 다시 바라본다

'아메리칸 인디언'이라는 말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부분 영화와 소설이 만들어낸 것이다. 말을 타고 달리는 전사, 불타는 마을, 끝없는 추격과 소멸의 서사. 서부극이 반복해온 이러한 장면들은 신대륙 원주민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묶어,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단순화해왔다. 하지만 그 오래된 이미지 뒤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한다.
신대륙 원주민의 뿌리가 동북아시아에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가설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현대 과학의 축적된 연구 성과로 확인된 결과다. 그럼에도 이러한 인식은 아직 대중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반세기 넘게 이 주제를 연구해온 나는, 인류사에서 가장 길고도 위대한 이동의 여정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그 연구 성과를 최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정년퇴직 이후의 시간은 종종 단조롭고 무기력하게 흐른다. 해야 할 일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로 되는 순간도 점점 줄어든다. 그런 반복 속에서 떠오른 사유와 호기심은 나로 하여금 신대륙 원주민의 고대 문명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번 집필은 학문적 정리인 동시에, 잊혀온 이름을 다시 부르고 지워진 이야기를 복원하려는 개인적 성찰의 과정이기도 했다.
나와 신대륙 원주민과의 인연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주의 신라 유적을 답사하던 한 서양 학자가 우리 집을 방문하여 인디언 역사에 관한 책 한 권을 남겼다. 그는 미국 원주민 미술 연구의 권위자였다. 그 짧은 만남은 이후 나의 학문적 관심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유학 시절에는 원주민의 기원을 밝히는 발굴 현장에 참여해 직접 흙을 파고 유물을 만졌다. 이후 중앙아메리카 유적 조사에 장기간 참여하면서 원주민 문명 연구는 나의 주요한 학문 영역이 되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북미 남서부와 중남미의 여러 유적지를 답사하며, 나는 고대 도시와 피라미드 앞에서 시간이 겹겹이 쌓인 층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반복해왔다.
우리는 여전히 '인디언'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야만성'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이는 식민주의적 시선이 만들어낸 허상에 가깝다. 미국 뉴멕시코주의 주도 산타페는 유럽의 정복자들과 원주민들이 치열하게 맞섰던 역사의 격전지이자, 오늘날에는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들어선 문화의 중심지다. 그 광장 한복판에는 전쟁기념비가 서 있다. 한때 기념비에는 "남북전쟁과 야만인 인디언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기려 세웠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광장 한켠에서는 원주민들이 전통 공예품과 기념품을 펼쳐놓고 관광객들과 마주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나는 비문 속 '야만인'이라는 표현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기념비를 세운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역사 속의 야만인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최근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비문에서 '야만인'이라는 표현은 삭제되어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원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결코 야만인이 아니다. 그들의 문화 또한 역사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사회는 유럽의 정복자들보다 더 정교하고 풍요로운 문명을 이루어 냈다.
우리는 지금, 너무도 본질적인 질문 하나를 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기계의 소음도 정복자의 군화 소리도 없던 시절을 떠올리며, 만약 내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살았다면 삶은 어땠을까? 무엇을 먹고 살았고, 어떻게 다투고 화해하며,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갔을 지 궁금해진다.
신대륙 원주민을 다시 바라본다는 것은 과거를 미화하려는 뜻이 아니다. 이는 인간이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었음을 성찰하게 하며,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