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가족돌봄 아동·청년 복지 체계 제도와 현실

이진영 포항대학교 간호학과 외래교수 2026. 4. 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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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영 포항대학교 간호학과 외래교수

이진영의 '복지 키워드로 풀어보는 영화세상' 열네 번째 이야기는 2005년 국내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이다. 1988년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난 아동 방임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아파트에 남겨진 네 남매가 서로를 돌보며 하루를 이어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제57회 칸 영화제에서 주인공 아키라 역의 야기라 유야가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국내에서도 약 4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조용히 오래 기억되는 영화로 남아 있다.

영화는 특별한 장치 없이 아이들의 일상을 무심하게 보여준다. 어느 날 엄마가 남기고 떠난 "엄마 한동안 집 비울 거야. 쿄코, 시게루, 유키를 부탁한다"라는 메모와 약간의 돈은, 열두 살 아키라를 준비되지 않은 가장의 자리로 밀어 넣는다.

편의점에서 얻어온 폐기음식으로 동생들의 끼니를 챙기고, 마지막 남은 초콜릿 한 알까지 양보하며 하루를 이어간다. 아키라에게 그 시간은 선택이 아니라, 버텨내야 하는 일상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는 아이들을 끝내 비극으로만 몰아넣지 않는다. 무너질 듯한 순간에도 아키라는 쉽게 주저앉지 않고, 그렇게 하루를 이어간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남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그럼에도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다.

영화 속 아키라는 오늘날 우리 곁의 '영케어러(Young Carer·가족돌봄청년)'와 닮아 있다.

영케어러는 질병이나 장애, 정신건강 문제 등으로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대신 돌보며 살아가는 아동과 청년을 의미한다. 이들은 보호받아야 할 시절과 미래를 준비할 시간을 가족 돌봄에 내어주고, 남들보다 조금 일찍 삶의 무게를 짊어진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도 이들의 문제에 응답하기 시작했다.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2026년 3월 26일부터 시행되면서, 가족돌봄 아동·청년에 대한 조기 발굴과 맞춤형 사례관리를 중심으로 한 지원 체계를 갖추게 됐다.

하지만 제도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현실이 곧바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주당 평균 21.6시간을 가족 돌봄에 쓰고 있으며 평균 돌봄 기간도 46.1개월에 달한다. 삶의 불만족도와 우울 수준이 또래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는 점은, 우리가 '가족의 도리'라는 말로 지나쳐온 시간들이 이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는 아이로, 청년은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현실을 더 이상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둘 수는 없다. 영케어러에 대한 지원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복지는 누군가의 버팀을 지켜보는 데 머무는 일이 아니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삶을 함께 나누고, 다시 일상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그래야 이들은 비로소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앞선 이야기 '미나리'가 "우리는 지금, 누군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잠시 멈출 자리를 사회 안에 남겨두고 있는가"를 물었다면, '아무도 모른다'는 그 다음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일상의 권리에서 멀어진 이들의 현실을 얼마나 들여다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평범한 하루를 위해 무엇을 더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