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 ‘거리 집사’ 황인숙…고양이로 풀어낸 돌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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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등단한 황인숙 시인(68). 그는 매일 오후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서울 용산구 해방촌을 돌며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높낮이가 만만치 않은 언덕배기 해방촌 일대를 오르내리며, 길고양이들을 위해 쓰는 시간만 하루 8~10시간.
해방촌 한 집에서만 20년째 살아온 그는 어느새 동네 길고양이들의 '거리 집사'가 됐다.
작품에는 매일 고양이의 밥을 챙기는, 시인을 닮은 화자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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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등단한 황인숙 시인(68). 그는 매일 오후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서울 용산구 해방촌을 돌며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높낮이가 만만치 않은 언덕배기 해방촌 일대를 오르내리며, 길고양이들을 위해 쓰는 시간만 하루 8~10시간. 해방촌 한 집에서만 20년째 살아온 그는 어느새 동네 길고양이들의 ‘거리 집사’가 됐다.
그 경험은 최근 단편소설 ‘하얀 새틴의 밤’에 담담하게 스며들었다. 작품에는 매일 고양이의 밥을 챙기는, 시인을 닮은 화자가 등장한다. 고양이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화자는 이전에 좋아했던 것들을 더는 좋아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눈이다. 눈비가 내리면 고양이 밥이 완전히 무방비로 망가지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굶어 죽을 지경이 아니면 젖은 건사료를 먹지 않는다. 우아한 고양이들 같으니라고, 소복이 쌓인 눈 아래 멀쩡한 밥이 그대로 남아 있어도 끝내 굶고 만다. 하늘에서는 얇디얇은 새하얀 새틴 커튼이 끝없이 내려온다. 아름다운 풍경마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화자는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체력의 한계 앞에서 화자는 돌봄의 한계를 경험한다. 삶의 피로가 쌓이며 ‘돌봄의 동선’은 조금씩 무너진다. 미처 돌보지 못한 고양이에 대한 연민, 사라져버린 고양이에 대한 죄책감은 겨울밤 흰 눈처럼 차곡차곡 쌓여간다. 섬세하고 따뜻한 언어로 관계와 돌봄의 윤리를 되묻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고양이를 소재로 한 테마 소설집 ‘고양이, 부르면 오지 않는 것들’(잉걸북스)에 수록됐다. 황인숙, 이순원 등 원로 작가와 서성란, 고은규, 권혜린, 염기원, 이수경, 양정규, 강혜림, 이호준 등 개성 강한 중견·신진 작가들이 함께했다.
양정규의 ‘떠나도 괜찮아’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찾아온 고양이 가족을 돌보며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다. 강혜림의 ‘살아 있다는 행위’는 마당을 지키려 고양이를 밀어내던 인물이 배제에서 화해로 이동하는 변화를 담아냈다. 고양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관계, 돌봄과 상실, 사랑과 이별을 섬세하게 풀어낸 10편의 소설이 묶였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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