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에 투영된 현대인의 생존 본능…배틀그라운드가 다시 뜨는 이유

박정원 2026. 4. 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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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주춤했던 '배틀그라운드(PUBG)'가 역주행하고 있다.

글로벌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Steam)에서 동시 접속자 수 수십만 명을 유지하며 상위권을 탈환했다.

30대 이용자 K 씨는 "게임 속에 판타지적 요소가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에서 맨몸으로 시작해 무기를 찾아 나서는 과정이 우리 사회의 민낯과 같다"며 "결국 상대방을 모두 제거해야 '치킨'(1위 승리)을 먹을 수 있다는 규칙은 냉혹한 현실의 시뮬레이션처럼 느껴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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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2018년 1월 스팀이 배틀그라운드를 서비스하며 사용자 수가 크게 늘었다가 감소했다. 2022년에 무료화로 다시 이용자 수가 늘었다가 현재는 하루에 100만 명에 가까운 접속자를 보유하고 있다. - 자료=스팀 제공



한때 주춤했던 ‘배틀그라운드(PUBG)’가 역주행하고 있다. 글로벌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Steam)에서 동시 접속자 수 수십만 명을 유지하며 상위권을 탈환했다. 하락세였던 이용자 지표도 회복세다. 단순한 ‘과거 인기작의 귀환’을 넘어 9년 차 게임이 이토록 생명력을 과시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크래프톤 측은 이번 반등의 일차적 요인으로 철저한 ‘라이브 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꼽는다. 2022년 무료화(Free-to-Play) 전환으로 진입장벽을 대폭 낮춘 상태에서 개발 로드맵에 따른 정밀한 업데이트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중 최근 진행된 ‘서브제로’ 업데이트가 결정적이었다. 맵 ‘에란겔’에 도입한 혹한 환경과 블루존 냉각 효과, 총기 밸런스 조정 등은 고착화된 플레이 방식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다. 정다인 크래프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실 담당자는 “지속적인 콘텐츠 업데이트와 반부정행위 대응 등 서비스 전반의 접근성을 높인 결과 이용자 지표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비스 개선만으로는 최근의 폭발적인 흐름을 설명하기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배틀그라운드 특유의 게임 구조가 이용자들의 심리를 정확히 관통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배틀그라운드는 모든 플레이어가 맨몸으로 시작해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생존해야 하는 단순한 규칙을 따른다. 그러나 무작위로 배치되는 아이템과 이동 수단 확보 여부 등 ‘불확실성’이 변수로 작용하며 매 판 예측 불허의 결과를 만든다. 여기서 발생하는 핵심 동력이 바로 ‘니어 미스(near miss)’ 경험이다. 20대 이용자 B 씨는 “1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상대를 거의 잡을 뻔했던 순간의 긴장감 때문에 다시 플레이하게 된다”며 “인형뽑기에서 거의 잡았던 인형을 놓쳤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완전한 성공은 아니지만 ‘성공에 매우 근접했던 경험’이 뇌의 보상 체계를 자극해 반복적인 도전을 유도하는 셈이다. 이는 최근 유행하는 확률형 소비 메커니즘과도 유사하다.

배틀그라운드에서 1위를 하면 '이겼닭!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 문구가 뜬다. - 박정원 인턴 기자



배틀그라운드의 재부상을 단순한 게임 트렌드로만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 게임이 제공하는 극한의 생존 경쟁 구조가 현대인이 처한 현실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30대 이용자 K 씨는 “게임 속에 판타지적 요소가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에서 맨몸으로 시작해 무기를 찾아 나서는 과정이 우리 사회의 민낯과 같다”며 “결국 상대방을 모두 제거해야 ‘치킨’(1위 승리)을 먹을 수 있다는 규칙은 냉혹한 현실의 시뮬레이션처럼 느껴진다”고 전했다. 여기서 ‘치킨’은 1위 승리 시 화면에 나타나는 “이겼닭!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이라는 문구에서 유래한 용어로 수십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살아남은 최후의 생존자만이 쟁취할 수 있는 독점적인 보상을 상징한다.

배틀그라운드는 불확실성과 무한 경쟁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이용자들이 느끼는 원초적 불안과 승리욕을 투영하는 장이다. 크래프톤은 이러한 상승세를 바탕으로 세계관 확장에 속도를 낸다. 올해 9주년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이용자가 직접 게임 규칙을 만들고 수정할 수 있는 UGC(User Generated Content) 기능을 강화할 방침이다. 3v3v3 점령전이나 파쿠르 모드 등 플레이어의 창의성이 개입된 새로운 공간을 통해 단순 서바이벌 게임을 넘어선 ‘IP 플랫폼’으로 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배틀그라운드의 역주행은 단순한 운이 아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긴장감과 이용자의 심리적 허기를 정확히 짚어낸 결과다. ‘치킨’ 한 마리에 열광하는 이용자들의 모습은 오늘도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분투하는 현대인들의 초상일지도 모른다.

박정원 인턴기자 jason2014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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