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썰] 탐사기자의 박왕열 3년 추적기... "JTBC를 사서라도 복수하겠다"

최광일 PD 2026. 4. 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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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필리핀 현지 취재는 실패, 하지만…
5개월 후 필리핀 교도소 만난 박왕열에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입국장서 만난 박왕열 “넌 남자도 아녀”

시작은 엉뚱한 지점이었습니다. “몽롱하다. 몽롱해.” 지난 2021년 남양유업 일가 황하나 씨가 마약에 취한 영상이 퍼졌습니다. 그리고 황 씨 전 남편은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선정적인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모두 자극적인 현상에 집중했습니다. “배경이 뭘까.”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당시 매주 방송하는 시사프로그램 PD였기 때문에 아이템도 필요했습니다.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달 25일, 입국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박왕열에게 질문하는 최광일 PD의 모습

점점 이 취재에 빠져들었습니다. 취재 도중 만난 4명이 마약 과다 복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왜 이들은 마약을 이토록 쉽게 구했고, 급속히 중독됐을까.” 텔레그램을 매개로 전국 골목골목까지 퍼져있는 마약 유통망. 온라인 쇼핑몰에 가까운 마약 세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 유통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마약을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대화명만 알려져 있는 인물. 누군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텔레그램방 이름은 '사자방'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바티칸 킹덤'이라 불리던 한국 총책 이 모씨가 있었습니다. 이 방의 우두머리 '전세계'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매일 수십여 개 마약 봉지와 현금 다발을 흔들며 자랑했습니다. “현존하는 모든 마약을 이곳에서 구할 수 있다.” 매일 떠들었습니다. 이 대화방엔 마약에 취한 젊은이들 영상이 심심찮게 올라왔습니다. 모여서 필로폰을 투약하고 눈 흰자위가 드러났습니다. 기괴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전세계'. 한국 마약 시장을 마치 온라인 커머스로 바꾸고 공공연한 홍보와 투약 후기를 유포하는 남자. 전국 마약 전문 형사들은 이 남자를 찾기 위해 쫓고 또 쫓았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김대규 경남경찰청 마약수사계장은 그 경찰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매일 '전세계'를 떠올리며 잠 자고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2021년 김 계장이 100여 명 규모 마약 범죄단을 검거하면서 실마리가 나왔습니다. '필리핀에 우두머리가 있다.', '예전에 살인한 적이 있다',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은신했다'. 정보는 조각조각 흘러 나왔습니다. 퍼즐은 흩어져 있었고, 점조직은 각자 제한된 정보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이름이 나왔습니다. 김 계장은 흥분했습니다. “최PD, 그놈 이름이 박왕열이래.”

김대규 경남경찰청장 마약수사계장의 모습

박왕열은 2016년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으로 수감과 탈옥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김 계장이 추적하던 시기, 현지 교도소에 수감됐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도소는 방패였습니다. 한국 경찰은 박왕열의 마약 범죄에 대해 죄를 묻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습니다.

2년 뒤 김 계장은 또 다른 마약 조직을 붙잡았습니다. 정점에 잊지 못할 이름이 있었습니다. '박왕열', 필리핀 교도소 안에서 필로폰을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김 계장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최 PD 이해가 돼? 이 어이없는 상황을 눈뜨고 봐야해?” 어떻게 수감된 사람이 해외에 마약을 공급할 수 있을까. 이 순간, 어쩌면 경찰보다 언론인이 상황을 파악하기에 더 나은 조건일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2023년 4월, 필리핀 취재팀이 꾸려졌습니다. 현지에서 오래 생활한 '필리핀112' 이동활 대표를 섭외했습니다. 필리핀 교도소 취재 경험이 있는 오혁진 일요시사 기자와도 함께 했습니다. 한재혁 촬영감독까지 총 4명 팀이었습니다.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었지만 막연한 기대를 했습니다. '박왕열 면회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2023년 4월, 첫 필리핀 현지 취재 당시 모습

오판이었습니다. 박왕열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박왕열을 만날 수 있는지 조차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필리핀 촬영 허가도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일말의 수확은 있었습니다. 박왕열의 동료 수감자를 만났습니다. 박 씨가 얼마나 황제처럼 지내는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활동하는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전언에 불과했습니다. 교차 확인할 취재원도 없고, 본인 확인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전언은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거짓이 끼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취재는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다시 취재 계획을 짰습니다. 필리핀 법무부를 두드렸습니다. 5개월 동안 연락을 반복했습니다. 현지 가이드는 박왕열 동료 제소자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수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왕열과 연락은 닿지 않았지만 주변 인물들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게 됐습니다. 그러다 필리핀 법무부에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교도소 내부 촬영을 허가합니다' 바로 짐을 쌌습니다. 이번엔 한재혁 촬영 감독과 둘이었습니다.

교도소로 들어가는 길. 두근거렸습니다. 촬영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카메라와 장비를 들고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전화로 연락을 해왔던 동료 제소자와 먼저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을 들었고 신뢰가 쌓였습니다. “혹시 박왕열 씨도 만날 수 있을까요. 저 한 번 만나달라고 얘기해주세요.” 간절히 말했고, 마음 속은 더 간절했습니다. 취재라는 건 사실 대부분 실패의 연속입니다. 이번에도 못 만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올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분 뒤, 페도라 쓴 남자가 웃으며 면회장으로 들어왔습니다. “먼 길 오셨네요.” 비현실 같은 현실이었습니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마약왕 박왕열을 마주한 제 첫마디였습니다. 정말로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 3명을 살해했고 수백 명을 마약으로 파멸시킨 범죄자. 그에게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있는지 물어야 했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수감자와 면회한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박왕열은 좀 달랐습니다. 범죄를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럴 만 해서 사람 세 명을 살해했다.” “난 소비자에게 최고의 상품을 판 마약 사업가다.” 표정은 상기돼 있었고, 목소리는 높았습니다.

2023년 10월, 필리핀 교도소 내에서 만난 박왕열과 최광일 PD.

궤변은 계속됐습니다. “국내 총책 바티칸은 어린 친구라 사업할 기회를 준 거다.”, “내 상품에는 문제가 없는데 스스로 목숨 끊은 사람들은 자기 책임일 뿐”이라고 웃었습니다. “삼성 핸드폰을 아이들이 맨날 들고 있는데, 이건희가 나쁜 놈이에요?”

1시간 가까이 대면은 금세 지나갔습니다. 그 대화는 감춰둔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이제 또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보도 여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여러 가지 고민 지점이 있었습니다. 사실 겁부터 났습니다. “방송에서 떠드는 놈들은 조선족 보내 없애버리겠다”던 박왕열 목소리와 표정이 생각났습니다. 또 어찌됐든 함께 대화한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미안함도 있었습니다. 질문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단지 단독 기사를 쓰고 싶다는 내 욕심 아닐까.”

2023년 11월, JTBC 뉴스룸 보도 후 박왕열 동료 수감자가 보낸 살해 협박 메시지.

여러 가능성을 촘촘히 검토했습니다. 시청률보다 공익을 위한 것인지, 이 취재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도 가능했을지, 침해될 박왕열의 인격권보다 사회 전체가 얻을 이익이 더 클지. 고민과 논쟁 끝에 이 영상은 공개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방식이 아니라면 밝혀져야 할 진실은 묻힌다” 이 문장을 되뇌었습니다. 박왕열은 저와 대면한 그 순간에도 국내에 마약을 팔고 있었습니다. 보도하고 송환 여론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게 저희 의무입니다. 2023년 11월, JTBC 뉴스룸에 박왕열 수감생활이 공개 됐습니다. “입을 열면 한국이 뒤집어진다”는 마약왕의 말에 시청자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났습니다. 2026년 1월, 국내 송환이 결정되었습니다. 한국으로 들어올 일 없다던 박왕열이 돌아옵니다. 한국 구치소에선 박왕열도 일개 수용자일 뿐입니다. 더 이상 황제 대우는 없습니다. 그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인천공항으로 갔습니다.

'넌 남자도 아녀'

지난 달 25일, 입국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박왕열에게 질문하는 최광일 PD의 모습

입국장으로 들어서는 박왕열. 기억할지 알 수 없어서 “오랜만이에요.”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순간 박왕열이 표정이 변하더니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날 알아보는구나.' 쫒아가며 다시 말을 걸었습니다. “한국으로 진짜 들어올지 몰랐냐”고 묻자 노려보며 '넌 남자도 아녀'라고 말했습니다. 화가 나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전 같은 자신감, 당당함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더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저에게 취재원을 속였다며 비겁하다고 합니다. 또 누군가는 관심받기 위해 연기한다고 합니다. 제가 받아야 할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또 똑같이 취재할 테고, 꼭 보도할 겁니다. 그래야만 하니까요. 다만 이제는 집에 들어올 때 비상계단에 누가 숨어있는 건 아닌가 걱정하며 승강기 두층 아래서 내려 걸어 올라갈 필요가 없는 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왕열의 살인 피해자 유족이 송환으로 조금은 위로받았다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는 박왕열의 마약이 국내에 유통될 가능성이 없어진 것도 다행입니다. 이제 그가 받아야 할 죄 만큼 국내에서 받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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