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여행자] 다음은 없어, 우린 다시 못 만나

하은정 기자 2026. 4. 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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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결국 사람이다, 산티아고에서 만난 그 소년
사진=최윤성

[우먼센스] 스페인의 순례길 '산티아고'를 혼자 걷는다는 것은 여행을 많이 다녔던 나에게도 무척 낯선 일이었다. 나는 평소 낯을 가려 쉽게 누구와 친해지지도 못하는데, 여럿이 함께 잠을 자야 하는 순례자 숙소 또한 내게는 커다란 난관이었다.

그에 비해 길에서 만나는 다른 순례자들은 참으로 멋져 보였다. 대부분 구체적인 일정과 지도를 가지고 있었고, 단단해 보이는 등산화에 멋지게 차려입은 아웃도어 스타일의 점퍼, 그리고 머리에 얹은 햇빛을 가려주는 모자까지, 정말 완벽한 여행 준비를 하고 온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친근하고 외향적인 성격이라니. 다들 낯가림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브라질에서 첫 남미 인솔을 마치고 막 날아와, 준비한 것이라고는 하얀색 스니커즈 한 켤레뿐이었다. 평소 입고 다니는 반팔 티셔츠 몇 장과 헐렁한 여행자 바지 두 개, 그리고 낡아서 구멍까지 난 윈드 재킷이 전부였다. 나중에야 그들이 한껏 차려입은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옷을 구비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없이 부러웠지만, 중간에 길이 들지 않은 새 등산화로 갈아 신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었고 새 옷을 사는 것도 짐이 되는 일이기에 순례가 끝날 때까지 조금만 참아보기로 했다.

사진=최윤성

산티아고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 진귀하고도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나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 말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첫날부터 숙소에서 만난, 헝가리에서 온 미소가 어여쁜 아이와 동행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친절한 스페인 남자와도 같이 길을 걷게 되어 거의 항상 붙어 다니게 되었다. 우리 세 명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어울리는 묘한 동행자였다고, 길에서 만난 순례자들이 말하는 것이 들리곤 했다. 너무도 다른 느낌의 한국인, 헝가리인, 스페인 순례자들의 조합이었다. 그렇게 순례길을 함께 걷던 어느 날, 아침 식사를 위해 멈춘 중간 휴식처에서 나는 귀여운 꼬마를 발견하게 되었다.

산티아고를 걷는 사람들 대부분은 어느 정도 긴 세월을 살아오며 무엇인가에 염원을 두고 길을 걷기에, 나이가 어린 순례자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여성 순례자들과 함께 신나게 웃고 있는 곱슬머리의 귀여운 소년을 보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그 소년의 유쾌한 얼굴에 이끌려 그들의 테이블에 다가가 소년 옆에 섰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부드러운 언어를 듣고, 막 브라질에서 건너온 나는 그것이 브라질 사람들이 쓰는 포르투갈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래서 인사도 없이, 어찌 보면 무례하게 "너네 브라질 사람들이니?"라고 물었다.

하지만 그들의 냉랭한 표정과 함께 돌아온 대답은 "아니, 우리는 프랑스인들이야"였고, 그들은 다시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게 그렇게 다른 것인가. 한 곳을 바라보고 같은 길을 걷는 우리에게 국적이란 것이 그렇게 큰 의미인지, 그리고 그 의미를 크게 두지 않았던 내게는 의아한 순간이었다. 멀쑥하게 돌아선 내게 헝가리 친구는, 그렇게 묻는 것은 무례한 것이고 프랑스인들은 자부심이 강하며 예의를 중시하는 민족이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약간 민망한 마음에 돌길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는데, 그 꼬마 소년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가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안녕, 난 헝가리에서 프랑스로 입양돼서 지금은 프랑스에 살고 있어."

어린 나이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서글픈 표정이었다. 키가 비슷한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그 소년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같은 또래 친구처럼 대했다. 그 애는 아주 키가 큰 남자와 함께 다니고 있었고, 그는 무척 무뚝뚝해 보였다.

기분이 한껏 누그러진 나는 친구 두 명을 뒤로하고 한적한 길을 홀로 걷다가, 카페에 앉아 있는 그 애를 다시 보았다. 사실 나와 함께 길을 걷고 있던 헝가리 친구는 그 소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같은 헝가리인으로서 입양아라는 조금은 어색한 단어, 그리고 그 애의 얼굴에는 집시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며 거리를 두려 했다.

나는 카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다시 만난 그 소년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 소년은 대뜸 헝가리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입양된 가정에서 행복하지 않아 좋지 않은 행동을 했고, 그 대가로 소년원에 들어가는 대신 순례길을 택했다고 했다. 함께 다니는 키 큰 남자는 소년을 보호하는 기관의 사람이었고, 그는 차가워 보일 정도로 소년을 원칙적으로 대했다.

나는 그 애가 그냥 좋았다. 스스럼없는 행동과 또래처럼 나를 대하며 장난을 거는 모습, 까르르 웃음소리와 곁눈질, 그리고 곱슬곱슬한 황갈색 머리카락까지.

사진=최윤성

하지만 순례길은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그날 그렇게 그 애와 헤어졌고, 며칠 뒤 내가 다리를 다쳐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나를 놀리던 그 애를 다시 만난 뒤로는, 다시는 못 볼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시간이 흘러, 29일 만에 순례자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생각보다 화려한 도시를 보며 놀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도시 한가운데서 그 애와 마주치게 되었다. 순례길 내내 그 애를 떠올리며 언젠가는 다시 만나기를 바랐는데, 산티아고의 한복판에서 운명처럼 다시 만난 것이다.

"와…" 하는 환호와 함께 우리는 동시에 포옹을 했다. 그 애를 보호하던 키 큰 남자는 보이지 않았고, 이번에는 낯선 여인이 곁에 있었다. 우리처럼 빠르게 걷지 못했던 그 작은 소년은 느릿느릿 걷다가 결국 중간에 버스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고 했다.

"다시 또 언제 만날까? 어떻게 연락하면 돼? 이메일 주소 알려줄래?"

나의 물음에 그 소년은 웃으며 말했다.

"다음은 없어. 우린 다시 못 만나."

어렴풋이 나 역시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몇 해가 흐르면 그 소년도, 나도 많이 변해 있을 것이고, 스쳐 지나가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자로서의 예의 같은 것이 있었다. 아니, 나는 다시 만나고 싶었다. 계속 연락하며 안부라도 묻고 싶었다.

그 소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솔직하게 말했다.

내 표정을 바라보던 소년은 내가 들고 있던 작은 노트를 빼앗아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었다. 우리는 커다란 포옹과 웃음을 나눈 뒤, 음료를 한잔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안녕, 소년아. 이제는 이름도 잊어버린 소년아.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니? 잘 지내고 있지? 그 아름다운 미소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면, 너는 잘 지내고 있을 거야. 오늘따라 네가 많이 보고 싶다. 그리고 내게 마음을 열어주어서 고마워."

글쓴이 최윤성 '망고 요가 트래블'의 1인 여행 기획자. 국내외 요가 여행을 진행하고, 틈틈이 산티아고 순례길 인솔을 한다. 겨울에는 인도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만들며 생활하는 여행자로 살고 있다.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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