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도 안 모이는 곳에 예배 간다, 류마티스 손으로 반주하러
세월호·스텔라데이지호·명동재개발2지구·세종호텔 등 연대
"단 한 사람이라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해요"
주일엔 쉽니다 - 편집자 주
'진격의교인'이 '주일엔 쉽니다'란 이름으로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왜 믿는지, 무엇을 믿는지를 고민하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살펴봅니다. 쏟아지는 사건 사고와 각종 뉴스 속에서 '안식일' 하루만큼은 순수함과 본질을 기억하며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만들어 봅니다. 편집국 기자들이 매주 1~3주 일요일에 연재합니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매주 월요일 저녁, 광장과 빌딩 사이 보도블록 위에서 예배가 열린다. 접이식 의자가 펼쳐지고, 단출한 조명이 세팅된 작은 공간에 사람들이 올망졸망 모여 앉는다. 거리 한복판을 오가는 직장인과 관광객들은 무슨 공연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무시하고 지나치기도 한다. 해결이 난망하고 언론이 반짝 조명하고 떠나 버리는 장기 투쟁 현장에서 드리는 거리 기도회, '고함 예배' 현장이다.
거리에서 드리는 예배라고 다르지 않다. 찬양이 시작되고, 기도가 이어지고, 설교가 있다. 다만 지붕이 없고, 화려한 예배당의 파이프 오르간 대신 작은 건반 하나가 전부다. 해가 일찍 저무는 겨울밤이면 반주자는 악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손이 얼어 건반을 짚기도 쉽지 않다. 보통의 손으로도 힘든데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부어 있어 그릇조차 잘 잡지 못하는 손이 건반 위를 오간다. "정말 손이 굳어서 못할 때까지 섬기려고요." 이지연 집사(58)의 말이다.

"배운 것 실천하는 신앙" 찾아 거리로 |
문헌정보학과를 나온 이 집사는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직장을 다니지 않다가, 50대 무렵 일을 시작했다. 그런 그가 처음부터 '거친' 투쟁 현장에 익숙하게 나선 것은 아니었다. 모태 신앙 집안에서 자라 주일이면 교회에서 부서를 섬기고, 성가대에 서는 보통의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20대 시절 대학부에서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셩경적토지정의를위한모임(토지자유연구소 전신), 대천덕 신부 같은 새로운 신앙 세계를 접하긴 했지만, 사회 참여 현장에 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한 대형 교회에서 25년간 신앙생활했다. 그러다 목회자가 바뀌면서 설교의 질이 떨어지고, 교인의 목소리가 묵살되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교회를 떠나야 했다. 다음 교회를 찾는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신앙생활은 무엇인가' 질문하게 됐다. "교회 안에만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배운 것을 실천하는 신앙"을 살고 싶었다. 자녀들도 장성해 분가하고 인생 후반부인 50대에 접어들었으니, 남편과 함께 "이제는 행동하는 신앙인으로 살자"고 다짐했다. 그때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 온 방인성 목사가 있던 함께여는교회를 만났다. 예산의 33%를 사회 선교에 쓰는 교회였고, 교회에서 상처받고 온 교인들이 모여 있었다. 이곳에서 5년을 보냈다.
함께여는교회에서 사회선교팀장을 맡게 되면서 이지연 집사의 세계는 넓어졌다. 사회 선교 교회 연대체인 '촛불교회' 운영위원회에 가입하고, 세월호 유가족 집회, 일본 원자력 오염수 반대 기도회, 금속노조 추도 예배 등 살면서 한 번도 가 보지 못하고 만나 보지 못한 현장과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87학번이지만, 대학 시절 데모 한 번 해 본 적 없었다. 팔뚝을 들고 외치는 "투쟁"이나 '민중의 노래' 같은 투쟁가도 그때 처음 불러 봤다. 그런 그가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책으로는 다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의 삶이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세입자의 떨리는 목소리, 자식을 잃은 부모의 눈물이 피부로 다가왔다. "편하게 살았던 내가 몰랐던 것들을 가르쳐 주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현장에 가면 갈수록 배우는 게 많"았다.
"이게 제 일이에요. 직장도 4시면 퇴근이고, 주로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종로·명동은 집에서도 가까우니까요."

보도블록 위 예배, 기성 교회에는 없는 것 |
매주 고함 예배와 개신교 사회 선교 모임들이 여는 거리 기도회를 다니면서 이지연 집사의 예배관도 바뀌어 갔다. 처음 삼성역 앞에서 열린 한국옵티컬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했을 때는 솔직히 주눅이 들었다. 번화한 빌딩 숲 사이에서 10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앉아 예배드리려니 마음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기성 교회 안에서는 느끼지 못한 뜨거운 마음이 올라왔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어떤 고난을 겪고 있는지 증언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였다.

"예수님이 들로, 산으로 무리를 이끌고 말씀을 전하셨잖아요. 그게 다 거리 예배 아닌가요. 제자들도 잔디밭에 누워서 예수님 말씀을 듣다가, 이해를 못 하면 떠다니는 구름 보고 꽃 보고 새 보고 양 보고 그랬을 거예요. 예수님 시대에도 그렇게 했는데, 거리 예배가 이 시대의 진정한 예배가 아닐까요.
하나님은 우상처럼 숭배받기를 원하지 않으실 것 같아요. 하나님은 이 땅에, 우리 옆에, 특히 눈물 흘리는 자 옆에 계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사람 자체 속에 계신 하나님, 이 사람과 함께하는 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예요."
"모인 사람과 예배하지만, 주변 사람들도 우리의 설교와 기도를 지나가면서 듣잖아요. 실제 중구청 앞에서 기도회를 할 때 미국에서 출장 온 27세 청년이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며 찾아왔어요. 명동에서는 관광객들이 무슨 공연인가 싶어 서서 지켜보기도 하고요. 같은 현장에서 반복해 예배를 여니까, 경찰들도 "예배 오셨죠?" 하며 친하게 말을 걸어요. 그때 씨가 심어진다고 봐요. 한 번 심어진 씨는 어디서든 언젠가 싹을 틔우겠죠. 저는 그게 전도라고 생각해요. 삶이 전도이고, 삶이 예배여야 해요.

의무가 아닌 '마음이 움직일 때' |
이지연 집사의 본업은 '학교 도서관 사서'다. 올해 1월부터는 독서 모임을 직접 꾸려 운영하고 있다. 계기는 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학생이었다.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하루 종일 도서관에 오던 한 학생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공황장애가 있고 한때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부도 잘하고, 부모가 모두 교수인 아이였는데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집사와 도서관 사서 출신 50대 세 명, 졸업생 출신 20대 두 명이 모여 첫 책으로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페트라 펠리니)을 읽었다. 16세 소녀와 86세 치매 노인의 우정을 다룬 책이었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다 부모뻘 나이 차이가 나는데도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쏟아 냈다. 자살을 시도했던 학생은 책 속 주인공이 자기 같다고 했고, 남편과 아들을 잃은 선생님은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믿는 사람들이 자기 옆에 서서 지지해 준 것만으로도, 그냥 어려운 현장에 같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힘이 되는구나. 저는 이것도 하나의 전도라고 생각해요. 꼭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 않아도, 그냥 삶 속에서 따뜻함이 전해지면 충분한 거예요."
투쟁 현장에 갈 때에는 이지연 집사만의 원칙이 있다.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것보다 마음이 움직일 때 참여하는 거예요." 예배위원이라는 직함 때문에 억지로 가는 법은 없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욕을 얻어먹더라도" 쉰다. "그래야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어요. 마음이 움직여야 예배자도 위로받고, 당사자들도 위로받아요. 그게 진정한 예배죠."
"살아남은 사람들은 힘내서 살아가야 되잖아요. 저는 같이 울어야 할 때는 울지만, 그래도 힘내서 즐거워하려고 해요."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기억하고 기도하는 거죠. 저는 해결을 보러 가는 게 아니에요. 기억하러 가는 거예요. 한 사람이라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해요. 그래서 계속 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봐요. 현장에 기존 교회에서 얻지 못했던 기쁨이 있어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과의 교제. 그 안에 정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걸, 갈 때마다 느껴요."

나수진 sjnah@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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