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e스토리] 프랜차이즈 스타

박상진 2026. 4. 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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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스타
프로 스포츠에서 프랜차이즈 스타의 존재는 특별하다. 팀의 역사를 언급할 때 팀과 거의 동일시될 정도로 팀을 상징하는 선수인 프랜차이즈 스타는 만들려고 해도 만들어지지 않고,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타크래프트 시절 SK텔레콤 T1을 생각하면 임요환이, 리그 오브 레전드 시절의 SK텔레콤 T1과 T1을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페이커' 이상혁이 떠오른다. 이들이 팀과 종목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다. 

이들과 같은 역사를 가진 KT 롤스터는 리그 오브 레전드로만 보자면 현재 감독을 맡은 '스코어' 고동빈과 함께 그리고 2023년 시즌을 앞두고 합류했지만 3년 동안, 특히 2025년 다시는 보지 못할 기적을 써내린 '비디디' 곽보성을 프랜차이즈 스타로 삼고 싶을 것이다.

한편, LCK 최초 4연속 우승을 기록한 젠지 e스포츠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룰러' 박재혁이다. 아니 박재혁 이었다.
 

-젠지 e스포츠의 프랜차이즈 스타
지금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인 젠지 e스포츠는 원래 오버워치 리그를 위해 태어난 팀이다. 2015년 출시 후 전례 없는 대흥행을 기록한 오버워치의 개발사 블리자드는 오버워치를 전 세계적인 리그로 만들기 위해 '오버워치 리그'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를 발표하는 자리에 케빈 추와 아놀드 허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연고권을 가진 팀의 대표로 자리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KSV e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젠지 e스포츠는 오버워치 에이펙스에서 최고 인기 팀인 루나틱 하이를 인수해 오버워치 리그 서울 다이너스티를 창단했고, 루나틱 하이 멤버 중 한 명인 '에스카' 김인재를 종목 전환시켜 배틀그라운드 팀을 창단했다. 당시 인기였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게임단도 창단했다.

이에 맞춰 당시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삼성 갤럭시를 인수해 젠지 e스포츠는 다종목 게임단으로서 행보를 시작했다. 오버워치 리그나 배틀그라운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에서 두각을 보였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유독 힘든 시기를 거쳤다.

하지만 지금 젠지 e스포츠 게임단을 대표하는 종목은 리그 오브 레전드다. 월드 챔피언십을 우승하지 못했지만 항상 우승 후보로 거론되고 LCK에서는 4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 기간 잠시 해외 진출을 했지만 다시 젠지 e스포츠로 복귀한 '룰러' 박재혁은 이 팀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선수다.

젠지 e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뛴 많은 선수가 있고, 우승까지 차지한 선수도 많지만 그래도 첫 번째는 '룰러' 박재혁이었다. 긍정적이나 부정적, 어떤 방향으로든 말이다.
 

-'룰러' 박재혁, 젠지 e스포츠의 프랜차이즈 스타
2016년 서머 삼성 갤럭시에 입단한 '룰러' 박재혁은 입단 그 해 바로 팀을 월드 챔피언십 준우승까지 끌어올렸고, 다음 해인 2017년 기어이 팀을 월드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끈다. 이후 젠지와 동고동락하며 젠지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을 상징하는 선수가 됐다. 

2023년과 2024년 LPL JDG에서 활약하면서도 젠지 e스포츠와 계속 좋은 모습을 보이던 '룰러' 박재혁은 2025년 다시 젠지 e스포츠에 복귀해 LCK 첫 스프링-서머 통합으로 치러진 대회에서 우승했다.

여전히 월드 챔피언십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룰러' 박재혁은 젠지 e스포츠를 대표하는 선수로 충분했다. 오버워치 리그를 중심으로 창단된 게임단의 곁다리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젠지 e스포츠라는 게임단 전체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된 것이다.

비록 2년의 해외 리그 기간이 있지만, 다른 스포츠에서도 한국 리그 복귀를 친정팀으로 하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KBO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나 한화 이글스의 류현진이 그 예다. 

그리고 2026년 정규 시즌 직전 '룰러' 박재혁의 세금 회피 사건이 터진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건이기에 이번 글에서 자세한 내용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크게 일었다.
 

-젠지 e스포츠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잃었다
처음으로 세금 회피 및 불복 소송 관련 소식이 터지고 얼마 있지 않아 젠지 e스포츠는 '룰러' 박재혁을 팀 AMA 방송에 출연시켰다. 아무리 예정되어 있던 방송이라도 소속 선수가 논란 중인 상황이라면 이를 진행하지 않았어야 했지만, 이 방송은 상황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그리고 4월 1일 리그 개막 직전 '룰러' 박재혁이 사과문을 내놓았고, 3일 KT 롤스터와 경기에 젠지 e스포츠는 '룰러' 박재혁의 출전을 강행했다. 그리고 1대 2로 패했다.

만약 철저하게 젠지 e스포츠의 입장에서 본다고 가정하면 게임단 입장에서는 억울할 상황이다. 선수 본인이 방송 출연에 괜찮다고 했을 테니 방송 출연했을 테고, 마침 오뚜기와 장기 계약을 발표한 시기에 악재가 터지면서 게임단이나 후원사나 모두 곤란한 입장이 됐다. 그리고 부정적 시각을 감수하고 출전을 강행한 경기에서 지면서 정규 시즌 초부터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됐다.
 

-어떻게 만든 프랜차이즈 스타인데...
이 팀은 정말 팬덤 만들기에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을 여러 번 맞았고, 이번 사건으로 그나마 있던 프랜차이즈 스타까지 잃게 됐다. 새로운 프랜차이즈 스타를 만들기 위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2012년 MVP로 시작해 2014년 삼성 갤럭시 화이트라는 이름으로 월드 챔피언십을 우승했지만, 당시 소속 선수들이 너무나 자기 주장이 뚜렷해 팬들의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팀이었다. 

오죽하면 당시 팀 코치였던 윤셩영 현 한화생명e스포츠 감독은 당시 정글이었던 최인규 현 농심 레드포스 감독과 재회한 자리에서 "너도 이제 내 심정을 알겠지"라고 말했고, 최인규 감독 역시 당시의 자신에 관한 이야기에 부정하지 않았을 정도다.

심지어 2014년 월드 챔피언십 우승 후 소속 선수 전원이 계약을 종료하며 2015년 삼성 갤럭시는 아예 새로운 선수로 시작하며 완전히 처음부터 팬덤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 와중 2016년 서머 '룰러' 박재혁이 합류하며 월드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하고 2017년 우승까지 차지하지만, 그 후 또다시 팀명이 바뀌었고, 장기간 원하던 성적을 내지 못하며 선수 교체도 번번히 이뤄졌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결국 투자만큼의 성적을 냈고, 그 과정에서 유일하게 동고동락한 선수가 '룰러' 박재혁이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은 젠지 e스포츠에 더욱 뼈아픈 상황이다. 이제서야 성적을 기반으로 팬덤을 확장하고 있는 젠지 e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젠지 e스포츠는 어떻게 했어야 할까
이번 사건에서의 젠지 e스포츠의 대응을 다시 살펴보자면, 처음에는 제대로 상황 파악이 안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룰러' 박재혁의 소속 에이전시 입장문이 올라온 후 악화된 기류를 읽지 못하고 방송을 강행하거나, 다음 날 오뚜기와의 장기 후원 계약을 발표한 것을 보았을 때 읽을 수 있는 분위기다. 이는 젠지 e스포츠 CEO인 아놀드 허가 올린 X를 통해서도 감지할 수 있다.

그 이후에야 상황을 파악한 젠지 e스포츠는 경기 후 팬 인사에서 '룰러' 박재혁이 나서지 않는다는 공지를 내보내고, 경기 후 미디어 인터뷰에서도 '룰러' 박재혁은 빠진다고 전했다. 이는 인터뷰 신청 이후의 통보였다. 그리고 경기에 나선 젠지 e스포츠는 정규 시즌 첫 경기를 패했다.

젠지 e스포츠는 둘 중 하나를 선택했어야 했다. '룰러' 박재혁을 처음부터 철저히 숨기거나, 아니면 '룰러' 박재혁이 스스로 밝힌 내용처럼 경기에 나서고 팬 인사나 인터뷰에 나서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지만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했고, 결국 경기에 출전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만들었다.

물론 이는 '룰러' 박재혁의 본인 선택이고, 팀은 철저히 선수의 요청에 따랐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는 더 갑갑한 상황이다. 회사의 가치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철저한 회사의 시각에서의 결단을 못 했다는 의미다. 젠지 e스포츠처럼 철저하게 e스포츠로 수익을 내는 것이 중요한 게임단에게는 이보다 나쁜 상황이 없다.

현재 젠지 e스포츠의 전력이라면 시즌 초 2패, 심해도 4패 정도를 안고 가도 연말에 월드 챔피언십을 바라볼 수 있는 팀이다. MSI 선발전 막차를 타도 MSI에 충분히 갈 수 있는 팀이고, 극단적으로 라이즈 그룹으로 향한다고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전력이다. 이 정도라면 게임단 전체의 이미지를 위해 최소 1주에서 2주 정도는 손해를 감수하는 것도 지금의 상황에서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젠지 e스포츠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선택의 후폭풍을 '룰러' 박재혁과 고스란히 같이 맞게 됐다. 선수의 요청이든 팀의 선택이든 결과는 최악이고, 여기서 상황이 더 나아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와서 자체 출장 정지를 하기도 애매하다. '룰러' 박재혁이 경기에 나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호전될 상황이 아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두 발 모두 늪에 빠진 젠지 e스포츠다.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정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룰러' 박재혁이 젠지 e스포츠에 있어 좋은 기억으로 남지 못하는 선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좋은 선수들이 차고 넘친다. 고진감래의 대명사인 '기인' 김기인, 최고 수준의 정글 '캐니언' 김건부, 젠지의 황금기를 연 '쵸비' 정지훈, 서포터의 신성인 '듀로' 주민규가 그들이다. 이들 모두 충분한 실력과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다만 문제는 시간이다. '룰러' 박재혁이 젠지 e스포츠와 동고동락한 시간이 있었기에 '룰러' 박재혁은 젠지 e스포츠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됐다. 정말 극적인 반전으로 '룰러' 박재혁의 이미지가 회복되지 않는 이상 젠지는 다시 팬덤 구축과 프랜차이즈 스타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2016년 여름부터 2025년까지, 9년에 가까운 시간이 다시 들어갈 수도 있다.

더불어 젠지 e스포츠 역시 이러한 시간 동안 스스로도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젠지 e스포츠는 회사의 성격에 맞지 않는 사건사고를 여럿 겪었다. 글로벌 게임단이지만 한국에 기반을 두고도 한국 팬들의 정서를 읽지 못해 일어난 BLM 사건이나, 자칫하면 게임단 전체가 날아갈 뻔한 중국 마케팅 참사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 이어 또 부정적인 이슈가 생긴다면 팬들보다 후원사들이 먼저 등을 돌릴 수도 있다. 그리고 젠지 e스포츠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 뿐만 아니라 발로란트, 배틀그라운드 외에도 많은 종목의 팀이 있다. 자칫하면 다른 종목까지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른 종목 팀 뿐만 아니라 이스포츠 시장 전체에 부정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이스포츠 무대에 처음 도전하던 당시 젠지 e스포츠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면, 어쩌다가 이 팀이 이렇게 됐나 싶을 따름이다.
박상진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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