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서재] 발코니에서 시작된 낙관의 방식

곽은영 기자 2026. 4. 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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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적 낙관. (김금희 지음. 문학동네)

김금희 작가의  산문『식물적 낙관』은 식물을 기르는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가닿는다. 발코니에서 시작된 작은 관찰은 어느새 삶의 태도를 다시 세우는 사유로 확장된다. 식목일에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팬데믹의 시간. 세계가 멈춰 선 동안 작가는 발코니로 나갔다. 물을 주고, 잎을 살피고, 햇빛을 가늠하는 반복 속에서 식물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견디는 존재가 된다. 『식물적 낙관』은 그 곁에서 천천히 바뀌어 가는 마음의 기록이다.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식물을 '관리'하거나 '가꾸는' 시선에서 벗어나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본다는 데 있다. 작가는 식물을 통해 인간의 오랜 착각, 자연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조용히 흔든다.

"식물을 기를수록 알게 되는 것은, 성장이란 생명을 지난 존재들이 각자 떠나는 제멋대로의 (때론 달갑지 않은) 모험이라는 사실이다. (...) 우리가 떠올리는 가드닝의 아름다움은 기실 상상에 가깝고 오히려 성장의 개념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그렇게 누군가의 주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식물은 설명되지 않는 방식으로 자라고, 이유 없이 멈춘다. 그 앞에서 인간은 관찰자가 될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바뀐다.

식물을 기르는 일은 작가에게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의 생활과 겹쳐 있는 행위다. 그래서 더 오래 지속된다. 기억하지 않아도 반복되는 돌봄, 의식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관심. 

"결국 식물을 기르면서 내가 하는 일이란 대체로 일상과 겹쳐 있다. 생각해보면 이런 것이야말로 가장 오래갈 마음이 아닐까. 준 것을 특별히 기억하지 않는 완전한 습관으로서의 돌봄, 혹은 사랑 같은 것 말이다."

이 지점에서 '식물적 낙관'은 환경에 대한 태도와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거창한 의지보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감각. 돌봄이 관계가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방식이 된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이유 없이 시들고, 예상과 다르게 자라지 않는다. 그 실패는 종종 인간의 몫이 아닌데도 우리는 쉽게 자신을 탓한다. 작가는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조건은 한정적이고 우리는 절대 살아 있는 것들의 완벽한 관장자가 될 수 없다. 인간이 다 알 수 없는 그런 공백 때문에 어떤 식물은 자라고 어떤 식물은 성장을 멈춘다. 그러니 빛, 바람, 물이라는 답은 가드닝의 수많은 실패자들을 북돋우고 자책에서 구해내는 치유의 말일지도 몰랐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태도에서 한발 물러서는 순간, 실패는 덜 가혹해진다. 그리고 그 틈에서 비로소 삶은 조금 더 숨을 쉬기 시작한다.

책이 말하는 낙관은 밝고 적극적인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선택지가 없는 자리에서 묵묵히 이어지는 생의 방식에 가깝다.

"식물에게는 지금 이곳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엄정한 상태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역설적으로 식물들의 낙관적 미래를 만들어낸다. 환경에 적응하는 것, 성장할 수 있다면 환희에 차 뿌리를 박차고 오르는 것, 자기 결실에 관한 희비나 낙담이 없는 것, 삶 이외의 선택지가 없는 것, 그렇게 자기가 놓인 세계와 조응해나가는 것. 이런 질서가 있는 내일이라면 낙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더 나은 선택, 더 나은 미래를 찾느라 현재를 놓친다. 하지만 식물은 다르게 살아간다.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가능한 만큼 자라고, 멈추고, 다시 시작한다. 책은 그 단순한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자연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그 느리고 조용한 전환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낙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