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서 '공포' 파는 정치 장사꾼들 [영화로 읽는 세상]

김상회 정치학 박사 2026. 4. 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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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이코노무비
장미의 이름④
인간, 희망보다 공포에 반응
법에서도 보상보다 처벌 각인
천국과 지옥 문고리 쥔 교회
국민의 생명 · 안전 틀어쥔 국가

수도사들의 연쇄적인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문제의 수도원에 도착한 윌리엄 수사修士(숀 코너리 분)는 '연쇄 살인사건'보다 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윌리엄이 막 수도원 근처에 다다랐을 때, 피골이 상접하고 남루한 차림의 수많은 주민이 산 위에 자리 잡은 거대한 수도원 아래에 모여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 속 교회는 존재 이유가 불명확하다. 지금 국가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윽고 수도원 담장 한편에 뚫어놓은 쓰레기 배출구가 열리고, 음식 쓰레기가 산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거지꼴을 한 주민들은 수도원 음식 쓰레기를 성령이라도 강림하는 것처럼 두 팔 벌려 영접하며 썩은 배추잎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인다. 윌리엄 수사는 혼란스러워진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왜 저렇게 거지가 됐을까. 주민들이 저토록 굶주릴 때 교회는 왜 저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일까."

참상의 전모는 곧 밝혀진다. 수도원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아침에 수도원 뜰에 내려간 윌리엄 수사는 주민들이 왜 그토록 굶주려서 수도원 쓰레기나 먹으며 연명하고 있는지 알아차린다. 수도원 앞마당에 기다란 테이블이 놓이고 그 행색만으로 보면 분명 수도원의 구호품을 받으러 온 거지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행색의 사람들이 테이블 앞에 줄지어 서 있다.

윌리엄이 그 전날 봤던 수도원 음식 쓰레기를 거둬 먹던 그 주민들이다. 그런데 그 '거지 같은' 사람들이 손에 무언가를 들거나 품에 안고 줄을 서 있다. 놀랍게도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그 거지같은 주민들은 구호품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수도원에 '공물'을 바치러 온 것이다.

거지 같은 주민들은 돈과 곡식이나 돼지, 닭 등 아마도 마지막 남은 것임에 분명해 보이는 자신들이 가진 가장 귀한 것들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하나님께 공물을 바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공물을 받은 수도사들은 그 명세를 기록하고 영수증을 발급한다.

그 영수증은 중세교회사 최대의 스캔들인 '면죄부'다. 그렇게 주민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 혹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수도원에 자신들의 양식을 모두 바치고, 수도사들이 배 터지게 먹다 버린 그 쓰레기로 연명하는 거지가 되고 있었다.

윌리엄은 중세교회사에서 청빈淸貧을 핵심가치로 삼았다는 교파인 프란치스코(Francesco)파의 수사이고, 이 문제의 수도원은 하나님이 세운 질서를 지키기 위한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교단으로 알려진 베네딕트(Benedict)파에 속한 수도원이다. 베네딕트파는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해 교회는 부유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나님의 뜻'를 제멋대로 왜곡한다.

공포를 퍼트릴수록 유튜브 수입이 꽤나 늘어나는 모양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이들에게는 피골이 상접한 주민들이 바치는 '공물'로 교회가 부유함을 유지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주민들이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교회가 주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윌리엄은 이 수도원 권력이 왜곡한 하나님의 뜻에 분노한다.

윌리엄은 결국 이 수도원에서 발생하는 연쇄살인사건도 왜곡된 하나님의 뜻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밝혀낸다. '중세사'에 정통한 원작자 움베르토 에코가 던지는 질문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직도 이 질문을 하고 있다면 우리가 아직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갖 만행을 저지르던 중세를 벗어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중세의 백성들을 이토록 '상거지'로 만든 교황청과 교황의 문장紋章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교황이 머리에 쓰는 세겹으로 이뤄진 왕관(삼중관ㆍPapal Tiara)은 모든 왕 중의 왕, 세상의 길잡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라는 3가지 권력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왕관을 중심으로 천국의 문을 여는 금색열쇠, 천국의 문을 여는 금색열쇠의 권위가 땅에도 소급됨을 뜻하는 은색열쇠, 그리고 그 2개의 열쇠를 묶어주는 붉은 실로 장식하고 있다.

하나님만이 보유한 천국의 문 열쇠를 하나님 대리인으로서 교황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신자들에게는 대단히 진지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비非신자들에게는 거의 코믹할 수도 있겠다.

쉽게 말하면 교회는 천국의 문을 여는 '문고리 권력'이다. 그러나 문고리 권력이 '천국'이라는 당근만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지옥'이라는 채찍도 동시에 제시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쳐 면죄부를 받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곧 지옥에 떨어진다는 공포이기도 하다. 교회는 천국의 문고리뿐만 아니라 지옥의 문고리도 쥐고 있다.

인간심리 구조상 공포는 희망보다 강력하다. 법에서도 보상보다 처벌 조항이 더 강하게 각인된다. 경제 예측에서도 걸핏하면 '블랙 먼데이' 운운하며 경제대폭락이라는 공포가 언론기사를 도배한다.

닥터 둠(Doctor Doom)으로 불리는 루비니라는 경제분석가가 내지르는 공포는 모든 언론들이 최우선적으로 받아준다. 희망적인 기사보다는 공포 조장이 더 독자들의 관심을 받는다. 이란 전쟁을 두고 유가 폭등, 경제 폭망에 제3차 세계대전의 공포까지 모든 언론을 휩쓸고 다닌다.

눈에 안 보이는 위험일수록 상상력이 무한 개입돼 더욱 강력해진다. 지옥은 검증불가능성과 최대 공포라는 강력한 조합을 만들어낸다. 그 공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영화 속 중세 이탈리아의 주민들처럼 모든 양식을 수도원에 바치고, 자신들은 거지꼴로 수도원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먹고 살아간다.

인간은 심리구조상 희망보단 공포에 먼저 반응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천국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1% 가능성으로부터 한 발자국만이라도 도망칠 수만 있다면 양식을 쓰레기로 바꿔 먹고사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하다. 교회가 천국과 지옥의 문고리를 쥐고 인간들을 지배했다면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문고리를 쥐고 국민들에게 '공포 마케팅'을 한다.

70년이 넘도록 북한의 남침이라는 지옥문이 열리지 않게 해주겠다는 안보의 문고리 권력자들에게 전전긍긍해야만 하는 우리들 모습도 영화 속에서 천국의 문고리 권력자들에게 마지막 곡식까지 바치는 마을 주민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제는 '중국 공산당'의 하이브리드 전쟁의 공포와 선거조작의 공포까지 호외처럼 뿌리고 다니는 공포 장사꾼들까지 활개친다. 공포를 퍼트릴수록 유튜브 수입이 꽤나 늘어나는 모양이다. 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처구니없는 비상계엄령도 천사의 나팔소리로 들리는지 모르겠다. 이제 우리는 '공포 장사꾼'들의 수작에 신물이 날 법도 한데, 공포 마케팅 기법은 좀처럼 수명을 다하지 않는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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