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포니가 아직도 굴러가나요?”…휴게소마다 ‘강제 팬미팅’ 여는 포니 덕후 [덕후 계산기]
갖고 있는 부품값만 3000만원…“살려내면 다행”
“포니와 함께하는 세계 일주가 목표…우선 일본부터”
“와, 이게 아직도 굴러가?”
“이거 옛날에 내가 타던 차인데!”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우면 15분은 기본으로 붙잡힌다. 10·20세대는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디자인이 신기해 핸드폰을 꺼내 들고, 50·60세대는 잊고 지낸 첫차의 추억이나 부모와의 드라이브를 떠올리며 차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40년도 더 된 1985년식 ‘포니2 CX’(Canada export). 누군가에겐 낡은 차지만, 자영업자 김상국(49) 씨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 같은 존재다.

김 씨가 포니를 처음 구매한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카오디오 매장의 홍보였다. 독특한 디자인의 올드카를 매장 앞에 세워두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좋겠다는 계산이었다.
여기에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의 뿌리’라는 상징성도 마음을 움직였다. 현대자동차가 처음으로 독자 개발한 차량이자 ‘한국 최초의 국산차’로 불린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고(故) 정주영 현대자동차그룹 창업회장의 독자 모델 개발 선언 아래 1975년 양산에 들어간 포니는 ‘아리랑’, ‘무궁화’를 제치고 여대생들의 투표로 이름이 정해졌다. 이 ‘조랑말’은 곧 대한민국 마이카 시대를 연 주인공이 됐다. 1976년 한 해에만 1만726대가 팔리며 전체 승용차 판매의 44%를 차지했다. 이후 픽업·왜건·포니2 등으로 라인업을 확대하면서 1982년에는 누적 30만 대, 점유율 67%까지 올라섰다.
이러한 포니는 김 씨에게 유년 시절의 향수이기도 하다. 1970년대 후반, 부산에서 포니1 택시를 운행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포니라는 차 자체가 유달리 친숙했다.


이 기억을 따라 김 씨는 2011년 폐차 직전의 ‘포니2 픽업’을 처음 가져왔다. 막상 마주한 차의 상태는 처참했다. “이걸 언제 다 고치나” 하는 막막함뿐이었지만, 1년 동안 직접 차를 뜯고 수리하는 과정에서 홍보용이라는 목적은 점차 의미를 잃어갔다. 요즘 차의 직분사 방식이 아닌, 공기와 연료를 섞어 넣는 혼합 분사 방식의 카뷰레터 엔진이 내는 특유의 소리에 매료되면서 포니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됐다.
포니의 매력에 완전히 빠진 그는 2021년 고양시 일산동구 지하주차장에서 7년간 방치됐던 ‘포니2 CX’를 인수했다. 현재 김 씨가 갖고 있는 유일한 포니다.
이처럼 희귀한 올드카 포니를 직접 복원해 타던 김 씨지만, 그조차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차가 있다. 바로 포니1 승용차다. 김 씨는 “국내에서 실제 운행 가능한 포니1 승용차는 정말 드물다”며 “그 귀한 차를 볼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말했다.
현재 김 씨가 파악하고 있는 운행 가능한 포니1은 전국에 단 몇 대뿐이다. 제주도에 3대, 서울에 1대, 전라도에 1대 등 실체가 확인된 차량은 손에 꼽을 정도다.
올드카를 유지하는 건 어려움의 연속이다. 가장 큰 고충은 역시 부품 수급이다. 세월에 삭아버리는 고무나 플라스틱류 외장 부품은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품번 체계가 바뀐 뒤로는 전국의 재고를 확인할 수 있지만, 막상 전화를 해보면 “단종된 부품”이라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다.
그래서 김 씨는 전국 이곳저곳의 오래된 부품 가게를 찾아다니며 필요한 부품을 구한다. 부품이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망설임 없이 무조건 구매한다. 늦으면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고장에 대비해 창고에 쌓아둔 포니 부품만 약 2500만~3000만원 규모. 웬만한 경차 신차 한 대 값이다.
김 씨는 “일반 차량 수리에 30만원이 들면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포니는 고칠 수만 있으면 다행”이라며 “‘돈이 비싸네’가 아니라 ‘살려냈네’라는 안도감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포니를 팔 생각이 전혀 없다. 그만큼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쓴다. 남들은 옛날 차라 관리 차원에서 세차를 안 할 거라 생각하지만, 김 씨는 차가 조금이라도 더러워지면 무조건 닦는다. 다만 기계식 자동세차는 철저히 피한다.
“포니는 차체가 워낙 작아서 자동세차기에 들어갈 수 없지만, 혹시나 솔 등에 백미러나 브레이크등 같은 부품이 부딪혀 고장 날까 봐 겁이 나서 손 세차만 하죠.”
세차가 끝나면 곧바로 물기를 꼼꼼히 닦는다. 올드카의 최대 적은 부식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세차하고 나면 항상 물기 제거를 가장 우선으로 한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틈새 물기까지 꼼꼼하게 닦아낸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성 덕분에 포니의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인천 동구청은 2023년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전시용으로 1983년식 포니2와 1989년식 포니 픽업을 각각 4900만원, 1867만원에 구입했다. 학예연구사와 외부 위원들의 엄격한 감정평가를 거친 금액으로, 포니의 희소성이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 씨는 2011년부터 네이버 카페 ‘포니 타는 사람들’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 부품을 공유하고 수리 노하우를 나누기 위해 만든 커뮤니티다. 회원들은 상태가 좋지 않은 차량을 함께 수리하고, 구하기 힘든 귀한 부품을 서로 기꺼이 나눈다.
김 씨는 “시동도 안 걸리던 회원 차를 일주일 넘게 같이 고쳐서 모임에 데려온 적도 있다”며 “본인이 여유 있게 갖고 있는 부품들을 회원들이 선뜻 내어주기도 한다”고 끈끈한 유대감을 드러냈다.


가장 최근인 지난 3월 말에는 커뮤니티 회원들과 함께 충남 예산에서 모임을 가졌다. 포니 픽업 2대, 포니2 1대, 스텔라 4대 등 총 7대의 차량이 모였다. 이들이 일렬로 줄지어 예당저수지 인근 관광지를 지날 때마다 시민들의 “우와” 하는 감탄이 이어졌다. 김 씨는 “예전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그 시선을 즐긴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지금도 1년에 1만 km 이상을 포니와 함께 달린다. 40년 된 노장이지만 김 씨의 정성 어린 관리 덕분에 지금까지 포니와 함께 달린 누적 거리는 10만 km가 넘는다.
김 씨의 최종 목표는 포니와 함께하는 세계 일주다. 하지만 현실적인 고민도 있다. 포니를 배에 싣고 북미나 유럽 등지로 건너가 몇 개월씩 이동하는 게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목표는 포니와 함께하는 일본 여행이다. 그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세계일주를 완주하는 게 어렵다면 우선 가까운 일본이라도 꼭 다녀오고 싶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전했다.

그가 일본행을 꿈꾸는 데에는 기술적인 이유도 크다. 포니는 이탈리아 디자이너가 디자인했지만, 엔진은 당시 일본 쪽 부품을 많이 가져다 쓴 방식이기 때문. 김 씨는 “엔진 형식이 일본 모델과 똑같아서 그곳에서는 여전히 부속품을 구하기가 수월한 편”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배에 차를 싣고 일본 도로 위를 직접 달리며 포니의 건재함을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보 수단으로 시작해 이제는 인생의 동반자가 된 포니. 김 씨와 그의 조랑말은 오늘도 과거와 미래를 잇는 도로 위를 힘차게 달린다.

김도연 AX콘텐츠랩 기자 dore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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