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따라 영재고 도전, 실패 후 엉겁결에 간 과학고…나 괜찮을까?[툰터뷰]
언니 영재학교 진학 후 입시 도전부터 과학고 진학
만만찮던 과학고…사교육 끊었더니 되레 성적 올라
"'나만의 자부심'이 힘이 돼…스스로를 3인칭으로 바라보길"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아이템이든 사업 성과든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날 때면 많은 경우 일단 학벌에서 ‘남다르구나’할 때가 있다. 특목고나 영재학교를 나와서, 내로라하는 과학기술원 혹은 SKY대 출신. 그도 아니면 해외에서 대학을 졸업했거나 석사과정을 위해 유학을 간 경우다. 그러면서도 태도는 진심으로 겸손하다. 이들이 갓 대학을 졸업하거나 대학 재학 중 창업을 하는 자신감은 특별한 수학 과정의 결과물인가 싶을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남다른 테크트리(게임에서 유래된 용어로 현실에서는 장기적인 전략을 말함)의 시작인 특목고나 영재학교는 어떤 아이들이 들어가는 것일까. 정말 어느 정도 남달라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뭘 배우고, 어떻게 다르게 배우는 걸까?

그렇지만 웹툰은 단순히 입시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뛰어난 천재들의 이야기만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어른의 시각에선 공부만 하면 되는 10대들이 어떤 좌절을 하고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해내는지, 그 안에서 가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천재라 불리는 몇 안되는 영재들도 정말 밤을 새우며 치열하게 노력한다는 것이다. 작가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영재들은 평소 잡담을 나눌 때도 수학 공식이나 우주의 신비 등을 정말 재미있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남들이 보기엔 ‘갓생’이지만 스스로는 평범하다고 이야기하는 윤찐빵 작가를 지난 3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작가는 이미 성인이 되었고 현재는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 잠시 쉬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부산 여행 중 짬을 낸 윤 작가는 실제 웹툰에 등장하는 모습처럼 호감가는 귀여운 인상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금 성인인 걸로 알고 있는데, 중고등 학업과 관련한 내용을 웹툰화하게 된 계기는.
△내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왔고, 대학 강의가 전부 비디오 강의로 바뀌고 캠퍼스 생활이 차단됐다. 그러다 휴학을 했었는데 어머니께서 하루종일 누워있지 말고 뭐라도 하라고 해서 모아놓은 일기와 소재 등을 만화로 그리게 됐다. 인스타툰과 네이버웹툰 베스트도전으로 시작했는데, 이후에 바빠졌지만 내 웹툰을 봐주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4년을 그리다 정식 연재를 받아 네이버웹툰에 데뷔했는데 다시 4년 전으로 돌아가 시작하고 있다.
-인스타툰으로도 팬들이 꽤 있었나.
△과학고라는 특수한 환경에 있는 친구들 이야기가 작품으로 다뤄진게 많이 없어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 것 같다. 동문들도 많이 보더라. 고교 시절 감정선이 가장 역동적이고 섬세했기 때문에 그때 나를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싶어서 그린 부분도 있는데 학생 독자들이 많이 공감하고 좋아해주는 것 같다.
-지금 석사과정을 마쳤다면 고교 시절 기억이 잘 안날 수도 있을텐데. 웹툰 내용을 보면 메모를 꼼꼼히 하는 편인 것 같다.
△집착할 정도로 많이 한다. 공부할때 낙이 별로 없었는데 필기를 좋아했다. 적는 걸 좋아하고 펜도 사모으고. 접착식 메모지에 ‘조각일기’라는 걸 많이 썼는데 노트 한 권 채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해야할 일이나 공부 진도, 일정, 수행평가부터 단상, 영감, 시 이런 것도 많이 썼다. 지금도 보관해 둔 상자가 있는데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펼쳐보면서 웹툰에 반영하고 있다.
-영재학교 입시를 뒤늦게 준비하다 학원에서 친구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부분이 있던데.
△스스로는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당시에는 나도 유치한 말들에 상처받았던 것 같다. 왜 저런 말을 했을까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도 그냥 발산할 창구가 그거였겠구나 싶기도 하다. 일기를 쓰면서 버텼다. 그 아이 덕분에 더 폭발적으로 글을 쓰게 된 것도 있다. 러시아 문학에선 굶어야 글이 나온다고 하는 것처럼 나도 그런 어려움이 있어서 글이 폭발적으로 나온거 같다.

△정말로 어쩌다보니 박사까지 가게 된거 같다. 정말로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데 언니가 기출문제를 풀어주고 끌고 다녀준 부분도 도움이 됐다. 학교가 비학군지에 있었던 점도 상대적으로 성적을 잘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리고 딴짓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중학교 시절엔 만화부에, 고교 시절엔 신문부, 밴드부에서 보컬도 했었다. 대학 시절에도 밴드부를 비롯해 동아리를 5개씩 했었다. 사실은 딴짓이 적성인 것 같다. 공부만 하지는 않았다. 하하.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하진 않았지만 고등학교 때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부분이 있던데.
△사실 1학년 때 그룹과외는 성적이 안돼서 안껴줘서 못했다(웃음). 그래서 학원을 다녔는데 진도를 따라가기 힘든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컸다. 당시에는 깜지를 써서 들고 다니며 외우고 답지보고 풀이 따라쓴 뒤 숫자만 바꿔보고 무식한 방법을 동원해서 공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혼자 공부를 하면서 공부방법을 효율적으로 바꾸고자 했다. 학원에 다녔으면 숙제 하느라 바빴을텐데 스스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면서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았다. 개념을 조금만 읽고 바로 실전 문제를 푸는 방식을 택했는데 혼자 하면서 성적은 오히려 하위권에서 중위권으로 올라갔다. 자신에게 맞는 공부방법은 각자에게 다 다른 것 같다.
-초반에는 천재로만 묘사되던 언니의 에피소드가 중간에 비중있게 등장한다. 어릴 적부터 뛰어났던 언니 역시 상당한 노력파인 것 같다.
△언니는 그냥 날 때부터 영재였다. 언니는 어릴 적부터 함께 동네 보습학원을 가더라도, 학습지를 하더라도 만나는 선생님들마다 이 아이는 남다르다고 부모님께 이야기했었다. 학원에서도 초등학교 반에선 감당이 안돼서 중등반에 갔었는데 초등학생과 함께 공부하는 것에 중학교 언니들이 불만을 갖기도 했었다.
그런데 억울한 점은 노력도 엄청나게 한다는 것이다. 머리가 좋아서 중학교 시절엔 적당히 했어도 됐을 것 같은데 엄청나게 노력했다.
-본인이 그림영재라고는 생각하지 않나.
△자만심이 들때마다 주변에 걸출한 사람이 자꾸 나와서 아니라는 걸 자각하게 되더라. 중학 시절 만화부였는데 애니고 진학하는 친구들은 완전히 다르더라. 정말 묘사가 너무 달라서, 스스로 ‘나 좀 잘 그리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다가도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늘 겸손을 주입당하고 있다.(웃음)
-어떤 학생들이 과학고를 가면 좋을 것 같은지.
△과학을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과학고는 정말 좋은 학교라고 생각한다. 영재고도 그렇고 과학고도 그렇고 학생 한 명에게 주어지는 지원이 어마어마 하다.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공계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연구하는지를 볼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고 사용할 수 있는 고가의 실험장비도 많다. 대학에선 막상 사용허가서를 받고 예약하고 써야하는 실험장비를 과학고에선 비교적 쉽게 썼었다. 선생님들도 자원해서 오시기 때문인지 학생들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새벽까지 같이 남아서 연구해주시고 고민 상담해주시는 경우도 있다.
물리를 좋아하면 새벽까지 토론하고 찾아보는 경우는 허다하다. 아이돌 보는 것보다 과학계에서 걸출한 성과를 올린 인물을 만나보는 걸 더 좋아하는 게 과학고 학생들이다. 기억나는 선배 한 분은 과학을 정말 사랑해서 실험실에 몰래 숨어있다가 한밤 중에 실험하다 들켜서 경보기가 울리기도 했다.
-지금도 나만 안되는 것 같아 좌절하는 10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디서든 나보다 뭔가를 잘하는 사람은 항상 존재하더라. 나같은 경우 학원에서 살아남으니 과학고에서 좌절했고 과학기술원에서도 좌절했고 우울해했다. 주변에선 한국에서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미국 유학가서 좌절하는 경우도 봤다.
어떤 친구는 이런 말을 하더라. 내가 주위 사람보다 모자란 것 같으면 내 주변엔 배울 점이 많은 친구들밖에 없다고 생각하라고. 나도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공부 잘 하는 친구에게선 어떻게 공부하는지, 공부를 대하는 태도를 많이 배웠다.
그리고 나만의 자부심을 하나씩 가지면 좋을 것 같다. 나는 ‘과학고에선 내가 그림 제일 잘 그린다’, ‘내가 노래는 좀 잘 부르는 편이지’란 자부심이 있었다. 공부나 스펙이나 성취가 아니더라도 자기 만의 자부심이 하나씩 있으면 훨씬 건강해지는 것 같다. 유치한 게 때론 도움이 되는데 하다못해 ‘난 강아지도 있는데’ 같은 생각까지도 괜찮다. 가끔씩은 나 스스로를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보면 따뜻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것도 같다.

김혜미 (pinnst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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