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반 동안 먹지 않는 문어를 위하여 [임보 일기]

김연하 2026. 4. 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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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

그곳에 어미 심해 문어 한 마리가 있다.

한번 파괴된 심해 생태계가 회복되려면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 필요하다.

피해는 심해와 그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태평양 사람들이 감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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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빛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 그곳에 어미 심해 문어 한 마리가 있다. 학명은 ‘Graneledone boreopacifica’. 유령 문어(Ghost octopus)라고도 불린다. 2007년 미국 몬터레이만의 연구자들이 발견했을 때, 녀석은 차가운 바위 절벽에 촉수를 두른 채 알 무더기를 감싸고 있었다. 연구팀이 4년 반 가까이 수차례 찾아가는 동안 어미는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먹지도 않으면서.

지구상의 어떤 동물도 이렇게 오래 알을 품지 않는다. 코끼리가 약 22개월을 버티는 것도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이 작은 심해 문어 앞에서는 숫자가 무색해진다. 53개월. 4년이 넘는 시간 어미는 바위에 붙어 촉수로 알을 쓰다듬고, 신선한 물을 흘려보내고, 포식자를 쫓아내다가 알이 부화하는 날 조용히 생을 마쳤다. 심해 문어는 먹이인 게나 새우가 지나가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외면했다.

그리고 지금, 이 어미가 살고 있는 바다의 운명이 결정되려 한다. 해양 캠페이너로서 바다 이야기를 계속 해오고 있지만 심해에 대해서는 고민이 앞선다. 너무 멀고 너무 어둡고 너무 조용한 세계의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까.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어떻게 사람들의 가슴에 닿게 할까.

그린피스 캐나다 활동가들이 심해 채굴 문제를 알리기 위해 오타와 메이플 아일랜드에 1000개 이상의 LED 조명으로 제작된 14×9m 규모 문어 설치물을 설치했다.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가 이번에 발표한 분석 보고서는 그 조용한 세계에 들어가려는 채굴 산업에 관한 이야기다. 국제해저기구(ISA)는 수년째 심해 채굴 규정을 논의하고 있다. 채굴 기계가 해저를 훑고 지나가면 발생하는 퇴적물 기둥은 수백㎞까지 퍼지고, 가라앉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린다. 한번 파괴된 심해 생태계가 회복되려면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 필요하다. 53개월을 버텨낸 어미의 새끼들이, 그 새끼의 새끼들이 살아갈 세계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이 채굴을 정당화하는 논리 중 하나가 ‘개발도상국을 위한 수익배분’이다. 인류 공동의 유산인 심해를 개발하는 만큼, 그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학자와 개발경제학자가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 행정비용, 기관운영비, 보상기금을 제하고 나면 실제로 나눌 것이 거의 남지 않는다.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이 받을 것으로 추산되는 금액은 연평균 4만6000달러 정도다. 아프리카 국가들에 돌아가는 몫은 전체 로열티의 0.5%에도 미치지 못한다. 어떤 나라는 자국 GDP의 0.001%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는다. 북반구 대기업 CEO 한 명 연봉과 엇비슷한 금액을 나라 전체가 받는 것이다.

반면 채굴 기술과 자본을 가진 기업들은 압도적 이익을 가져간다. 피해는 심해와 그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태평양 사람들이 감당한다. 심해 채굴이 가장 먼저, 가장 광범위하게 진행될 해역이 태평양이기 때문이다. 이익은 가장 적게, 피해는 가장 크게. 오래된 착취의 패턴이 새로운 무대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린피스 독일 활동가들이 심해 보호를 촉구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슈프레 강변의 독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8×10×5m 규모의 대형 분홍색 문어 에어벌룬을 활용해 시위를 벌였다. ⓒ그린피스 제공

3월9일부터 20일까지, ISA 이사회 회의가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열린다. 이 회의에서 심해 채굴 규정의 핵심 조항들이 논의되고, 어쩌면 결정될 수 있다. 이사회 회원국인 한국 정부 역시 심해 채굴을 막기 위한 결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책임이 있다. 한국 정부는 다가오는 제4차 유엔 해양총회 개최국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닷속 어딘가에서, 지금 이 순간도 한 마리 어미가 알을 쓰다듬고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자리를 뜨지 않은 채 새끼가 부화하기만을 기다리면서. 그 어둠의 평화가 파헤쳐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 바다가 이렇게 싼값에 팔리지 않기를 바란다.

김연하 (그린피스 해양 캠페이너)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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