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페인'을 부르며 '별일 없이 산다' 읊조리는 밤, 마침내 '사랑하게 될 거야'…실리카겔·장기하·한로로 '스페이스 공감'

이재훈 기자 2026. 4. 5. 09: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년 만에 재개된 EBS '스페이스 공감'의 '홈커밍데이' 현장 리뷰
[서울=뉴시스] 3일 오후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홀에서 열린 EBS 스페이스 공감 '홈커밍데이'에서 실리카겔이 공연하는 모습. (사진 = EBS 제공) 2026.04.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음악이 한 시대의 심연을 어떻게 투사하는지 목도하는 일은 경이롭다. 지난 3일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홀. 3년 만에 재개된 EBS '스페이스 공감'의 무료 공연 '홈커밍데이'는 그 자체로 거대한 시대의 축도(縮圖)였다.

블랙박스 극장 한가운데 마련된 섬 같은 사면 무대를 관객들이 스탠딩으로 에워쌌다. 공중을 비롯해 다양한 각도에서 무대를 관측하는 카메라들은 단지 공연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객석과 아티스트가 호흡하는 생태계를 입체적으로 포착해 냈다. 30분씩 이어지는 릴레이 무대 교체의 긴장감조차 하나의 흥미로운 서사가 된 이 날 관객 수백 명을 뽑는 응모에 무려 1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보편적인 히트곡이 실종된 파편화된 시대라지만, 이곳에 모인 세 팀은 각자의 궤도에서 가장 강력한 중력을 행사하는 이들이다. 한로로의 '로켓단', 실리카겔의 '자경단', 그리고 장기하의 열렬했던 '장교주' 시절까지, 이들은 맹목적인 추종이 아닌 '국민 떼창'에 버금가는 뜨거운 공명으로 단단한 팬덤을 구축했다.
[서울=뉴시스] 3일 오후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홀에서 열린 EBS 스페이스 공감 '홈커밍데이'에서 한로로가 공연하는 모습. (사진 = EBS 제공) 2026.04.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2020년대의 얼굴…성숙한 낙관의 낙관(落款)

포문을 연 것은 한로로였다. 2022년 3월 '입춘'으로 데뷔한 이래, 그는 청춘의 불안을 끌어안고 기어코 앞으로 나아가는 '성숙한 낙관(樂觀)의 낙관(落款)'을 음악에 찍어내며 대형 스타로 발돋움했다. 지난 2월 '2026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된 그의 무대 매너는 훌쩍 자라 있었다. 카메라 위아래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무대를 누빈 그는 들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서울=뉴시스] 한로로 2022년 '헬로루키' 출연 당시 모습. (사진 = EBS 제공) 2026.04.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안녕 반갑습니다. 저기 얼굴에 영영(0+0)을 끼워가지고 와주신 분들 되게 많네요. 사실 '스페이스 공감'은 제게 긴장감 가득한 곳으로만 느껴져요. 헬로루키라는 경연으로 '한로로'라는 이름을 처음 알려드렸었거든요. 슬로건 같은 것도 보이고 하니까 기분이 좋으면서도 얼떨떨하네요. 오늘 빙글빙글 많이 돌아드릴 테니까요."
이날 선보인 신곡 '게임 오버?(Game Over?)'에 대해 그는 특유의 철학적 통찰을 가볍게 툭 던졌다. "제가 몬스터한테 쫓기다가 이런 삶 원치 않아, 내가 과연 여기서 게임 오버 될까, 이 현실에서 과연 게임 오버일까? 결국에는 그런 미운 뒤에 사랑을 찾아서 저희 같이 살기 좋은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 이런 공통적인 메시지를 담아낸 곡입니다." 마지막 곡을 끝내고 무대 위에서 스탠딩석 관객들과 일일이 손을 잡으며 교감하다 넘어지기까지 한 그의 모습은 꾸밈없는 청춘의 송가 그 자체였다.
[서울=뉴시스] 3일 오후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홀에서 열린 EBS 스페이스 공감 '홈커밍데이'에서 실리카겔이 공연하는 모습. (사진 = EBS 제공) 2026.04.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2010년대의 돌연변이, 2020년대의 상징이 되다

이어 등장한 팀은 2016년 헬로루키 대상을 거머쥔 후, 이제는 국내 콘서트 업계의 성지인 케이스포돔(KSPO DOME) 입성마저 앞둔 명실상부 국내 대표 밴드 실리카겔이었다. 김건재, 김한주, 김춘추, 최웅희 네 멤버가 각 모서리에 서서 마주 보는 대형은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서울=뉴시스] 실리카겔 2016년 '헬로루키' 출연 당시 모습. (사진 = EBS 제공) 2026.04.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김한주는 이 무대가 품은 유기성을 정확히 짚어냈다. "장기하 선생님이 헬로루키 출전하셨을 때는 저희가 집에서 방송으로 챙겨봤고, 그다음에 저희가 출전을 했고, 한로로 님이 결선에 나가셨을 땐 저희가 축하 무대를 해드렸는데 오늘로써 정점을 찍는 날이 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그들의 음악은 파괴적이면서도 정교했다. 신인 시절을 대변하는 '9'와 '모두 그래'로 헬로루키 상을 받았던 과거를 회상한 뒤, 가장 최근의 자신들을 증명하는 '빅 보이드(BIG VOID)'와 '틱 택 톡(Tik Tak Tok)'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김춘추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공영방송 프로그램 중에 가장 엄지손가락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저희에게 너무 의미 있던 방송입니다. 다시 하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요. 다신 그만한다는 소리를 안 했으면 합니다."
[서울=뉴시스] 3일 오후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홀에서 열린 EBS 스페이스 공감 '홈커밍데이'에서 장기하가 공연하는 모습. (사진 = EBS 제공) 2026.04.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2000년대의 파격…현 대체 불가능한 텍스트

마지막을 장식한 이는 2000년대 후반 혜성처럼 등장해 2010년대를 대표하는 얼굴이 됐고, 최근엔 비비의 '밤양갱' 작곡가이자 영화 '밀수'의 음악감독으로 경계를 허물고 있는 장기하였다. 2008년 헬로루키 출연 당시 '싸구려 커피', 같은 해 '스페이스 공감'에 나와서 부른 '달이 달이 차오른다, 가자' 영상이 불렀던 그 파격적인 룸펜 정서와 쇼맨십은 세월을 거쳐 더욱 유려해져 있었다. 그는 2008년 헬로루키 결선에서 장기하와얼굴들로 인기상을 받았다.
[서울=뉴시스] 장기하 2008년 '헬로루키' 출연 당시 모습. (사진 = EBS 제공) 2026.04.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오늘 사실 좋을 거라고 예상을 했는데 너무 분위기가 좋네요. 오늘 홈커밍 데이잖아요. 되게 기분이 묘해요." 그는 스탠딩 마이크를 잡고 관객의 환호를 유도하며 담담히 회고를 이어갔다. "2008년 그 방송이 TV 데뷔였어요. 제가 그 후 몇 년 동안 저를 기억하는 거의 모든 모습이 그 모습이었거든요."
그는 가장 유명한 라이브 영상 중 하나가 된 '달이 차오른다, 가자'의 탄생 비화를 털어놓았다. "군대 제대하면서 '밴드 꼭 하고 싶다, 내가 진짜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그냥 간다'는 생각으로 달밤에 혼자 깨서 만들었던 노래예요. 그게 가장 유명한 영상 중 하나가 될 줄은 몰랐죠." 넉살 좋게 '그건 니 생각이고'와 '부럽지가 않어'를 연달아 부르는 그의 무대는 여전히 화끈했고, 그만의 독보적인 텍스트는 관객들의 폭발적인 떼창을 이끌어냈다.
[서울=뉴시스] 3일 오후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홀에서 열린 EBS 스페이스 공감 '홈커밍데이'에서 장기하가 공연하는 모습. (사진 = EBS 제공) 2026.04.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시대를 대변하는 인디…그리고 남겨진 노래들

이날 세 팀이 마지막으로 남긴 곡들의 궤적을 연결해 보는 것은, 곧 이 시대 청춘들의 마음을 관통하는 철학적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일과 같다. "26년도의 4분의 1이 지났는데 사랑 많이 하고 계신가요?"라고 묻던 한로로는 결국 우리가 이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게 될 거야'라고 선언했다.

그 지독한 사랑과 상실의 과정을 온몸으로 관통해 낸 실리카겔은, 이윽고 상처를 초월한 무감각의 경지인 '노 페인(NO PAIN)'에 다다를 수 있음을 증명했다. 특히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 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라는 가사는 '홈커밍 데이'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희비극을 통과한 장기하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얼굴로 우리 삶을 긍정하며 '별일 없이 산다'고 위로를 건넸다.

이렇듯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은 단순히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라, 한 세대의 불안과 희망을 정밀하게 기록하는 시대정신 그 자체다. K-팝이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몸집을 불려 나갈 때, 주류의 문법 바깥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세우는 숱한 인디 뮤지션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의 고유한 텍스트가 발굴되고 조명될 수 있었던 것은 '스페이스 공감'과 '헬로루키'라는 단단한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류가 놓친 시대의 얼굴들을 기록해 온 이 고집스러운 프로그램이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해내야만 하는 이유가, 이 뜨거웠던 '홈커밍데이'의 밤에 온전히 증명됐다.

'스페이스 공감'은 올해에는 3년 만의 공연 재개를 알리는 '홈커밍데이' 공연을 시작으로 매주 무료 공연을 선보인다. 방송은 오는 5월6일 '홈커밍데이' 실황을 시작으로 매주 오후 10시50분 EBS 1TV에서 송출된다. '스페이스 공감'은 동시에 4년 만에 인디 신의 새로운 얼굴을 찾는 '헬로루키'도 재개했다. 최근 모집한 5월의 헬로루키에 총 952팀이 지원했고 음원 심사를 거쳐 10팀을 꼽았다. 선발된 10팀의 무대는 오는 23일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UNDERSTAGE)에서 공개된다. 라이브 경합을 통해 2팀이 '이달의 헬로루키'로 선정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