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하루 두 번 목욕이 하고플까…‘행복한 관광’ 고르는 법

지난 1월 타이 치앙마이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의 ‘한달 살기’ 여행 계획표에는 코끼리가 없었다. 그런데 웬걸, 사방이 코끼리다. 이 나라의 대표적인 맥주는 ‘창’이다. 알고 보니 타이어로 코끼리란다. 야시장에서 어머니가 100밧(약 4600원)을 80밧으로 기어코 깎아서 산 얇고 펄럭이는, 일명 ‘코끼리 바지’에도 녀석들이 줄지어 걷고 있었다. 상점 앞 화려한 꽃목걸이를 두른 사당을 지키는 것도 어김없이 코끼리 조각상이다.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여행사 판매대마다 빼곡하게 꽂힌 코끼리 관광 전단들은 대놓고 ‘어서 오라’고 한다. 화려한 코끼리 쇼와 코끼리 타기(트레킹)를 앞세운 전단지 사이로, 큼지막한 글씨로 ‘노 라이딩’ ‘노 불훅(코끼리를 찌르는 쇠갈고리)’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도 있었다. 무심코 한두장 챙기다 보니 어느새 가방에 스무장 넘게 쌓였다.
불현듯 궁금해졌다. 전단지 뒷면에는 어떤 풍경이 숨어 있을까. 그래서 직접 가보기로 했다. 성격이 전혀 다른 세곳을 추렸다. 코끼리 쇼와 트레킹이 벌어지는 전통적인 ‘오락형’ 캠프, 사탕수수를 먹이고 목욕을 시켜주는 ‘케어형’ 생크추어리(동물보호소), 그리고 사람의 간섭을 거둔 ‘관찰형’ 생크추어리다. 배낭을 둘러메고 숙소 문을 나섰다.

오락형: 코끼리에겐 지옥
바로 옆은 코끼리 트레킹 터미널이었다. 코끼리 등 높이에 맞춰 지은 목재 건물의 2층에서 코끼리를 탈 수 있었다. 불훅을 든 마후트가 코끼리 목에 앉아 인사했다. 나는 코끼리 등에 얹힌 나무 의자에 올랐다. 코끼리의 앞다리가 교차할 때마다 근육의 들썩임이 몸을 타고 전해졌다. 코끼리는 묵묵히 강을 건너고 비탈진 숲을 돌아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터미널에는 관광객을 토해낸 코끼리들이 텅 빈 눈빛으로 다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을 태우고 쉼 없이 도는 ‘슬픈 순환버스’ 같았다.


원래 정오는 돼야 끝난다고 한 투어는 한시간여 만에 끝났다. 공원을 나서는데 대형 관광버스 여러대가 그사이 주차장을 메웠다. 기념품 가게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코끼리 관광은 높은 회전율로 굴러가는 ‘매스 투어리즘’의 본보기였다. 수백명의 패키지 관광객이 한두시간 만에 쇼 관람과 트레킹을 해치우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새로운 버스들을 타고 온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역설적이지만, 타이의 코끼리 관광 산업은 1989년 정부의 산림 벌목 금지령으로 급성장했다. 유럽 열강이 19세기 말 치앙마이 북부 산악지대에서 목재 산업에 뛰어든 후 티크 나무를 날라왔던 운송용 코끼리 수천마리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기 때문이다.

매일 엄청난 밥값을 감당해야 했던 조련사들은 수도 방콕 시내로 나가 코끼리를 보여주고 구걸하거나, 갓 태동한 코끼리 관광 산업으로 녀석들을 밀어 넣었다. 통나무 대신 관광객을 짊어지게 된 코끼리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노동의 굴레에도 틈이 생겼다. 201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공정 여행’ 바람이 불며 동물 착취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덕분이다.
타이 코끼리 관광의 소비자 대다수는 외국인이다. 세계동물보호협회(WAP)가 지난 1월 낸 보고서를 보면, 2010년 타이 코끼리 관광 시설의 92%가 코끼리 타기를 했지만, 그 비율이 2024년에는 43%로 절반쯤 줄었다. 무거운 의자를 벗어던진 코끼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전단지를 꺼내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케어형: 코끼리에겐 연옥?
가이드는 두가지를 신신당부했다. “절대 코끼리 뒤로 돌아가지 마세요. 바닥에 떨어진 먹이도 줍지 마세요.” 사각지대에 섰다가 뒷발에 차이거나, 사탕수수를 주우려다 발굽에 밟힐 수 있단다. 아무리 유순해 보여도 녀석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힘을 가진 야생동물이었다.

목욕 시간이었다. 바가지로 물을 끼얹어주는 동안 관광객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엔 마음을 불편하게 할 장면이 없었다. 코끼리의 발목을 옥죄는 쇠사슬도, 뾰족한 불훅으로 내리치는 마후트도, 등에 올라탄 관광객도 없었다. 가이드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코끼리를 타거나 묘기를 부리게 하지 않습니다. 오직 먹이를 주고 목욕을 시켜주는 ‘케어’(보살핌)에만 집중하는 생크추어리입니다.”
모두가 ‘착한 여행’을 했다는 위안을 얻고 돌아가는 길. 문득, 마음 한구석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코끼리는 정말 매일 오전과 오후, 꼬박꼬박 목욕하고 싶을까?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마다 낯선 사람들을 상대한다면, 이 녀석들 역시 강제 동원된 ‘관광 노동자’가 아닐까?

관찰형: 코끼리에겐 천국!
보호소에 들어섰을 때, 나는 꽤 당황했다. 당장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먹이가 든 바구니를 쥐여주는 사람도, 조련사 옷으로 갈아입으라며 등을 떠미는 사람도 없었다. 풀을 뜯거나 흙먼지를 뿌리는 코끼리를 두시간 남짓 관찰하는 게 투어의 전부였다. 코끼리는 인간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매땡에서 목격했던, 정해진 노선을 무한 반복하던 ‘슬픈 순환버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그저 제 속도대로 걷고 흙을 뿌리는 ‘자유로운 산책자’들이었다.

우돔을 따라 걷다 보니, 녀석들이 제각각의 아픔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코끼리들이 이곳에 오기 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 개체의 역사를 하나하나 들려주었다. “저기 시력을 잃은 ‘러키’는 서커스단에서 평생 조명에 노출됐습니다. 벌목장에서 무거운 통나무를 끌다 등뼈가 주저앉은 녀석도 있죠.” 코끼리를 직접 만지거나 타지 않아도, 그 이야기만으로 지루하지 않았다. 열살 된 아들에게 “세곳 중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묻자, 아이는 주저 없이 코끼리자연보호소를 꼽았다. 인위적으로 꾸며낸 묘기보다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이의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인 모양이다.
보호소에 있는 120여마리 중 70%가 노령 코끼리다. 타이 법상 사육 코끼리는 자동차 같은 운송 수단으로 분류된다. 보호소는 주인에게 많게는 3만달러(약 4500만원)의 몸값을 치러 코끼리를 구조한다. 늙거나 장애가 있거나 정신적 상처가 큰 코끼리가 우선순위다. 코끼리자연보호소 설립자이자 대표인 생드안 렉 차일릇(Saengduean Lek Chailert)을 보려고 했는데, 일정이 엇갈렸다. 한국에 돌아와 화상 인터뷰를 했다. 모니터 너머 하얀 머리의 65살 운동가에게 나는 다소 껄끄러운 질문을 던졌다.

“제가 처음으로 방문했던 타이 최대 규모의 매땡코끼리공원을 대표님의 형제가 운영한다고 들었습니다.” 차일릇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수많은 캠프를 바꿨지만 정작 제 가족은 바꾸지 못했습니다. 목적과 방식이 달라 우리는 갈라섰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코끼리 팀’으로서 일하니까요. 코끼리는 제 가족이고, 저는 그들을 보호합니다.” 그는 변화의 동력을 정부 규제가 아닌 관광객의 선택에서 찾았다. “각종 위원회에 참가해 의회에서 4년을 싸웠지만 관료들은 동물 복지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결국 정답은 관광객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사람들이 표를 사지 않으면, 시장은 알아서 바뀝니다.”
그는 ‘새들 오프’(코끼리 등 위의 의자를 벗기는 일) 프로젝트를 통해 주변 캠프들이 전통적인 트레킹을 포기하고 관찰형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돕는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38곳이 그의 도움을 받아 나무 의자를 벗기고 불훅을 내려놓았다. 창칠코끼리공원도 그가 세계동물보호협회와 함께 관찰형으로 바꾼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다행히도 관찰형 관광은 2010년 4.6%에서 2024년 7.3%로 느리지만 증가 추세다.

망가진 지구에서 코끼리들을 옛날의 울창한 야생으로 단숨에 돌려보낼 요술 방망이는 없다. 우리가 할 일은 녀석들의 등에 얹힌 무거운 의자를 치우고, 남은 생애 동안 그간 잃어버린 존엄을 조금씩 되찾아주는 것 아닐까? 치앙마이에서의 한달이 지나고 짐을 꾸리며, 스무장 남짓한 코끼리 관광 전단지를 쓰레기통에 툭 던져 넣었다. 가방 한구석에 어머니가 기어코 깎아서 산 바지가 보였다. 펄럭이는 옷감 위를 걷는 코끼리들이 왠지 전과 달라 보였다. 코끼리들아! 다음 생애에서는 무거운 의자를 벗고 울창한 숲을 산책하렴!
치앙마이/글·사진 남종영 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코끼리도 행복한 시설 고르는 법
세계동물보호협회(WAP) 보고서를 보면, 타이의 236곳 시설에서 2849마리의 사육 코끼리가 관광 산업에 동원되고 있다. 최근 코끼리 관광은 등에 올라타고 쇼를 보는 전통적인 ‘오락형’에서 먹이를 주고 교감하는 ‘케어형’, 나아가 코끼리 생태와 개체의 역사를 듣고 보는 ‘관찰형’으로 바뀌는 추세다. 하지만 주의가 필요하다. 많은 캠프가 간판에 ‘생크추어리’ ‘보호구역’ 같은 그럴듯한 단어를 내걸지만, 상당수는 마케팅을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 코끼리자연보호소(ENP)의 생드안 렉 차일릇 대표는 “오전에는 코끼리 등에 사람을 태우고 쇼를 하다가, 오후에는 옆 캠프로 코끼리를 이동시켜 윤리적 프로그램을 하는 곳도 있다”고 지적한다.
어떻게 좋은 곳을 고를 수 있을까? 불훅(코끼리를 찌르는 쇠갈고리)을 사용하거나 등에 올라타는 오락형 캠프는 피하는 것이 기본이다.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한 ‘관찰형’ 시설이 최선이지만, 많지 않다. 굳이, 코끼리를 보겠다면 ‘케어형’을 가되, ‘코끼리의 뜻을 얼마나 존중하는가’를 확인한다. 첫째, 목욕 프로그램을 안 하거나 소극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좋다. 먹이로 유도하여 ‘강에 앉기’ ‘물 뿌리기’ 같은 행동을 시키는 곳도 있다. 코끼리에게 관광객의 일정표에 맞춰 억지로 물에 들어가 낯선 이들을 ‘즐겁게’ 하는 것도 강제 노동이다. 둘째, ‘번식 제한’ 여부를 확인한다. 진정한 생크추어리는 관광객을 모으거나 덩치를 불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새끼를 낳게 하지 않는다. 전단지를 꼼꼼히 확인하고, 예약 때 질문하고, 현장에서 의견을 주는 것만으로도 코끼리 산업을 바꿀 수 있다.
남종영 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트럼프, 이란에 ‘48시간 최후통첩’…“지옥 쏟아질 것”
- 민주당 6·3 지방선거 압승 쉽지 않다
- ‘윤석열 파면’ 일군 광장에 다시 모인 시민들…“사회대개혁, 이제 출발”
- 정청래 “국힘 ‘위헌정당 심판’이 완전한 내란 청산…지선 후보 내지 말아야”
- 대한노인회 “아침 대중교통 이용, 건물청소 등 생계형…제한 부적절”
- 이란, 미 ‘48시간 휴전’ 제안 거부…실마리 못 찾는 협상
- 국힘 5년 만에 최저 지지율…“이러다 선거 비용 보전도 못 받을라”
- 민주 충북지사 후보에 국힘 출신 신용한…결선투표서 노영민 꺾어
- 홍준표, ‘김부겸 지지’ 비판 국힘에 “더 이상 진영 논리 안 돼” 불쾌감
- 한화솔루션, ‘유상증자 금감원 사전협의’ 발언 공식사과…“잘못 표현한 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