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淸明), 묵은 불씨 끄고 조상 마주하는 시간

이휘빈 기자 2026. 4.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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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길, 절기 이야기] (5) 청명
시기 비슷한 한식(寒食)과 풍습 겹쳐
왕실에선 제사 지내고 새 불씨 전달
중국·대만·베트남선 조상 묘 찾기도
건조한 날씨….산불·화재 주의해야
2026년 청명은 4월5일이다. 청명은 한식과 겹치거나 하루 차이가 난다. 클립아트코리아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예로부터 농가에 전해오는 속담이다. 죽은 나무토막에도 새싹이 돋는다는 뜻으로, 이 무렵의 왕성한 생명력을 빗댄 말이다. 청명(淸明) 무렵은 글자 그대로 하늘이 차츰 맑아지는 시기다. 봄볕이 대지 깊이 스며들고, 흙 속에서는 씨앗이 기지개를 켠다.

나무 심고 술 빚던 봄날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생성한 이미지. 제미나이
청명 무렵에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는 풍습이 있었다. 여자아이라면 훗날 시집갈 때 장롱을 만들어줄 오동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심거나 가꾸며 부르는 ‘나무타령’도 전해진다. 소년이 마음에 두는 소녀의 나무에 물을 주며 호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청명에 맞춰 빚는 술을 ‘청명주(淸明酒)’ 또는 봄에 담근다고 하여 ‘춘주(春酒)’라고도 한다. 찹쌀을 주재료로 누룩과 밀가루를 더해 빚는 전통주다. 성묘할 때 제사용 술로 쓰거나, 가래질 등 고된 흙일을 시작할 때 일꾼들이 마시고 기운을 북돋는 용도로 활용했다. 현재는 충북 충주와 전북 정읍 등에서 생산하고 있다.

청명과 한식, 다른 듯 같은 날
청명은 명절인 한식(寒食)과 엄연히 다르지만, 대개 같은 날이거나 하루 앞선다. 올해 청명은 5일, 한식은 6일이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여기서 유래했다.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을 말한다. 이 무렵 선조들은 아궁이의 묵은 불을 끄고 찬 음식을 먹었다.

한식은 조선시대부터 나라에서 정한 공식 명절이기도 했다.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한식은 공식 휴일로, 왕이 직접 종묘에 나가 제례를 올렸다.

새 불씨를 맞는 사화(賜火) 의식도 이 무렵에 행해졌다. 세시풍속지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청명에 내병조(內兵曹)에서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를 비벼 새 불씨를 일으켜 임금에게 올렸고, 임금은 이를 관원과 대신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어 관원들이 새 불씨를 받았다는 것을 알리면 백성들은 집의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씨를 받았다.

동아시아 곳곳 조상 기려
청명에 먹는 동아시아 국가의 절기 음식. 왼쪽부터 청단, 윤병, 바인쪼이.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생성한 이미지. 챗GPT
청명은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조상을 기리는 중요한 시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날 땅의 신들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여겨 길일로 쳤다. 그래서 비석 세우기, 무덤 수리나 옮기기, 집 고치기나 새로 짓기를 이 무렵에 했다. 또한 한식날 간단히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농가에서 논일을 마치고 묘를 찾는 일로 간소화됐다.

중국과 대만은 청명절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했다. 가족이 함께 조상의 묘를 청소하는 소묘(掃墓)를 행하고, 이후 답청(踏靑)이라 불리는 봄나들이에 나선다. 쑥이나 보리싹을 찧어 찹쌀과 섞어 만든 청단(靑團)을 간식으로 먹는다. 대만에서는 밀가루 전병인 윤병(潤餠)을 차갑게 먹는 다.

베트남은 청명을 타인민(Thanh Minh)이라 부른다. 가족이 묘지를 찾아 벌초하는 ‘따오모’ 풍습이 있다. 차가운 찹쌀 경단인 ‘바인쪼이’를 먹는다.

일본 본토에서는 청명이 절기 행사로 정착하지 않았지만, 오키나와는 다르다. 이날을 시미(清明)라 부르며 가족들이 조상의 무덤에 모여 성대하게 제사를 지낸다.

날 풀리지만 산불은 언제나 조심
청명은 날이 맑아지고 땅이 풀리지만 건조한 봄바람을 경계해야 한다. 이 무렵은 강원 영동지역을 중심으로 강풍이 불어 산불 위험이 가장 큰 때다. 2019년 고성과 속초의 산불, 2023년 강릉 산불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5년 4월 평균 강수량 67.3㎜로, 평년의 75% 수준에 그쳤다. 올해 역시 방심은 금물이다. 쓰레기 등을 태우지 말아야 하고, 낡은 농기구의 전원과 전선 등을 점검하는 것이 좋다. 산불이 나면 즉시 119에 신고해야 한다. 초기에 불길을 잡기 어렵다면 바로 대피해야 한다.

◇도움말=‘24절기 이야기’(한호철 지음, 지식과 교양), 한국세시풍속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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