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자동화 시급한 K-제조업…‘노조 변수’ 따라 기업들 극명한 격차

박혜원 2026. 4. 5.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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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조업 경쟁력 갈림길
설비·기술보다 노사관계 핵심변수로
무노조 기업은 고속추진으로 생산성·품질 제고
노조 반대 기업은 아직 첫 발도 못 떼
“기술 발전 빠른데 노사 관계는 과거 머물러”
‘CES 2026’ 현대차그룹 전시관에서 아틀라스가 자동차 부품을 옮기는 작업을 시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헤럴드경제=박혜원·전새날 기자]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갈림길에 서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스마트 팩토리 기술이 빠르게 고도화되며 글로벌 제조 현장은 ‘공정 자동화’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의 발걸음은 유난히 더디다. 설비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관계가 속도를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되고 있어서다.

노조가 없거나 노조 저항이 덜한 기업들은 자동화 전환을 빠르게 추진하며 생산성과 품질을 끌어올리는 반면, 노조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 기업들은 수년째 도입조차 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같은 산업, 같은 기술 환경 속에서도 자동화의 진척 여부가 ‘노조 변수’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는 현실이 한국 제조업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아직은 급하지 않은 노조…골든타임 놓칠라

공정 자동화 관련 노사 협의에 가장 적극 나서고 있는 곳은 HD현대중공업이다. 미래 첨단 조선소(FOS)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이 회사는 노사공동협의체를 꾸려 지난달부터 현재까지 다섯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가장 최근인 지난 25일 열린 회의는 회사가 산업전환 방향을 설명하고, 노조는 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는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

HD현대중공업 FOS는 2030년 구축을 목표로, 올해까지는 조선소 운영 과정을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도 로봇 100여대를 투입, 용접 등 일부 공정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노조는 구체 논의를 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다. HD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자동화 설비를 어떻게 더 구축할지 회사에서 계획을 내놓지 못한 상태”라며 “현재로선 노조가 요구할 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도입 문제로 대립각을 세운 현대차 노사도 협의에 진전은 없다. 현대차가 올해 CES 행사에서 아틀라스를 공개한 직후 현대차 노조는 “합의 없이는 1대도 로봇을 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현대차에 아틀라스 도입 계획 설명회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으나, 한 달여가 지난 현재까지 회사에선 별다른 회신을 하지 않고 있다.

올해 임단협(임금협상 및 단체협약)에서 아틀라스 도입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질지도 미지수다. 현대차 노조도 기본적인 방침을 밝혔을 뿐 이 의제 자체가 시급하진 않다는 입장이다. 한 노조 관계자는 “아틀라스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라면서도 “우선 미국 공장부터 투입해, 한국엔 수 년 뒤에야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별도로 요구 사항을 구체화하진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회사가 AI 자율 공장 구축 계획을 밝힌 상태이지만 올해 임단협에서 이 문제는 의제에 포함돼 있지 않은 상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AI를 도입하려면 물론 노조 합의가 있어야겠지만 현재 시급한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無노조 사업장은 전환 속도

한편, 노조가 없는 기업들은 자동화 공정 구축에 속도가 붙고 있다. 노동자협의체제인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0월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플랫폼 ‘S-EDH’를 구축했다. 플랫폼에 데이터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2D 도면을 만들고, 3D로도 시안을 확인할 수 있다. 삼성중공업은 사무직과 생산직노조는 있지만 가입율은 크게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노조의 존재 여부에 따라 공정 자동화 도입 속도가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어 대부분 노조를 갖고 있는 국내 주요 제조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저하 우려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노사간 눈치보기로 하세월…대기업이 먼저 나서야”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AI 논의가 노사 간 ‘눈치보기’로 더딘 상황”이라며 “기술 발전은 빠르게 이뤄지는데 국내 노사 관계는 전통적인 제조업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술 개발로 인한 일자리의 축소가 노동계에서 공공연한 우려인만큼, 선제적으로 논의를 시작해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에서 먼저 주도적으로 자동화에 대한 노사 합의가 이뤄져야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는 “산업계 AX(인공지능 전환)는 1~2년 안에 확산할 수밖에 없다. 생산성 혁신을 위해선 기업들이 중국산 로봇이라도 들여올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에서 선제적으로 AI 협의 모델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중소·중견 업계 일자리 타격이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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