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박카스 2000병' 소녀의 귀환…박성현, 프로 첫 홀인원으로 재기 신호탄

김종석 기자 2026. 4. 5.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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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홀인원 부상으로 박카스 2000병, KLPGA 시즌 1호 장식
더 시에나 벨루토CC서 공동 11위…이예원·고지원까지 3명 동반 진기록
KLPGA 하루 최다 홀인원 타이…확률의 벽을 뚫은 벚꽃 라운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공식대회에서 홀인원을 작성한 박성현. KLPGA

'남달라' 박성현(33)은 학창 시절 한때 '박카스 소녀'로 불린 적이 있습니다.

  현일중 2학년이던 2007년 제주 오라CC에서 열린 박카스배 전국시도학생골프팀선수권대회에 출전해 홀인원을 기록했고, 당시 부상으로 받은 박카스 2000병을 전교생에게 돌린 사연 덕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9년이 흘러 박성현이 다시 홀인원 이야기의 중심에 섰습니다. 이번에는 프로 무대 공식 대회에서 처음으로 그 기적 같은 장면을 완성했습니다.

  박성현은 4일 경기 여주시 더 시에나 벨루토CC(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더 시에나 오픈 3라운드 4번 홀(파3·162야드)에서 8번 아이언으로 홀인원을 기록했습니다. 이 한 방에 힘입어 중간 합계 6언더파 210타를 적어내며 공동 11위에 자리했습니다.

  이번 홀인원은 박성현에게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를 남겼습니다. 2013년 KLPGA투어 데뷔 이후 공식 경기 첫 홀인원이자, 올 시즌 KLPGA투어 1호 홀인원이 됐기 때문입니다. 부상으로는 더 시에나 제주CC 5년 명예 회원권과 토니모리 500만 원 상품권을 받았습니다. 토니모리 상품권은 애초 100만 원 상당이 걸려 있었지만 이후 증액이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박성현은 경기 뒤 "연습 라운드에서는 몇 번 해봤지만, 프로 데뷔 이후 공식 대회에서는 처음이라 얼떨떨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평소 차량이 걸린 홀인원 상품을 받는 선수들이 부럽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 부상이 오히려 더 좋은 상품이라 만족한다고 웃었습니다.

  홀인원 상황도 생생했습니다. 박성현은 드로우 구질을 참작해 오른쪽을 보고 샷을 했고, 날아가는 공을 보며 예상보다 더 감길 것 같아 순간 채를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은 핀 방향으로 정확히 향했고, 한 번 튄 뒤 굴러 그대로 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설마 했는데 들어갔다. 정말 소름이 돋았다"라고 돌아봤습니다.

박성현을 보기 위해 몰려든 구름 갤러리. KLPGA

홀인원이 들어간 뒤의 반응도 박성현다웠습니다. 그는 내리막 퍼트 라인이 잘 보이는 홀이어서 더 실감이 났다고 했습니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큰 세리머니를 하지는 못했지만, 두 손을 들어 기쁨을 표현했다고 했습니다. 과하지 않은 제스처였지만 그래서 더 진심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세리머니였다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갤러리에게 인사한 이유 역시 따뜻했습니다. 계속 응원해 준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컸고, 홀인원이라는 좋은 기운을 팬들과도 나누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홀인원은 개인 기록이지만, 그 장면을 함께 본 팬들에게도 오래 남는 기억입니다. 박성현은 그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자신의 기쁨을 혼자만의 것으로 두지 않았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더 눈길을 끈 대목은 불안감에 대한 박성현의 인식 변화였습니다. 그는 불안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생각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습니다. 경기를 치르는 이상 긴장 상황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불안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다만 예전보다 감을 찾는 속도는 빨라진 것 같다고 털어놨습니다.

박성현이 늘 한결같은 성원을 보내주는 팬카페 회원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남달라 블로그 캡쳐 

KLPGA투어 통산 10승을 올린 박성현은 현재 미국 LPGA투어 출전 자격을 잃어 올 시즌 2부 엡손 투어를 뛰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에는 자신의 소속사인 세마 스포츠마케팅이 운영을 맡으면서 초청 선수로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KLPGA투어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한 건 10년 전인 2016년 한화금융클래식에서였습니다. 

  최근 슬럼프 속에서도 박성현의 공식 팬카페 '남달라' 회원들은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팬들에게 이번 홀인원은 무엇보다 반가운 선물이 됐습니다. 흔히 홀인원을 하면 3년 동안 운이 따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 한 샷이 박성현 자신에게도 오랜 슬럼프를 끊어내는 반전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립니다. 

  이날 3라운드는 마치 만개한 벚꽃처럼 홀인원이 쏟아진 하루였습니다. 박성현에 이어 이예원과 고지원까지 모두 홀인원에 성공했습니다. 7번 홀(파3·156야드)에서 차례로 짜릿한 손맛을 본 두 선수 역시 KLPGA투어 공식 경기 첫 홀인원이었습니다.

  이 홀에는 약 2300만 원 상당의 디사모빌리 토고 세트 고급 소파가 부상으로 걸려 있었습니다. 애초 최초 기록자에게만 주어질 예정이었지만, 후원사가 이예원과 고지원 모두에게 같은 부상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보통 홀인원 부상에는 상품 가액에 따른 제세공과금 부담(22%)이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가의 소파를 받으면 수백만 원 상당의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홀인원까지 올리며 사흘 연속 선두를 질주한 삼천리 고지원. KLPGA

삼천리 골프단 소속 고지원은 홀인원을 포함해 5타를 줄이며 중간 합계 14언더파 202타로 사흘 연속 선두를 질주했습니다.

  KLPGA투어에서 한 라운드 3명의 선수가 홀인원을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9년 넵스 마스터피스 1라운드에서 김보미, 강은비, 김희정이 기록했고, 2013년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 3라운드에서는 이소영, 백규정, 김현지가 같은 진기록을 썼습니다. 이어 2015년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 1라운드에서는 박서영, 이지후, 김슬기가, 2020년 팬텀 클래식 2라운드에서는 신지원, 김지영, 이지현이 하루 3개의 홀인원을 합작했습니다. 이번 박성현, 이예원, 고지원의 사례는 그 역사에 이름을 보탠 다섯 번째 장면입니다.

  홀인원은 흔히 프로 선수에게도 수천분의 1 확률로 거론될 만큼 보기 드문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런 장면이 같은 날, 같은 대회, 같은 라운드에서 세 번이나 나왔습니다. 그래서 KLPGA투어 국내 개막전이라는 더 시에나 오픈 3라운드는 단순한 3라운드가 아니라, 박성현의 부활 기대와 투어 진기록이 한꺼번에 피어난 특별한 하루로 남았습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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