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혁명 수비대의 ‘한국 선박 인질극’ 전말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2026. 4. 5.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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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105회>]
2010년 미국 압력으로 서울의 이란 은행 폐쇄
美 제재로 묶인 70억 달러, 韓·이란 갈등 뇌관
2021년 이란, 호르무즈해협서 한국 선박 나포
韓, 95일간 억류 끝에 사태 해결하며 양국 중재
美·이란 오가며 2023년 동결 자금 사태 해결
2021년 1월 4일 이란 혁명수비대가 ‘해양 오염’을 이유로 한국 국적 ‘한국케미’를 나포하고 있다. 이란측은 한국 선박을 나포할 때 고속정과 소형 보트 등 최소 5척의 함정과 헬기까지 동원했다. 이란은 당시 미국의 제재로 한국에 묶여 있던 70억 달러 동결이 오랫동안 지속되자 이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실력 행사에 나선 것으로 추정됐다./FARS

2021년 1월 4일 외교부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해양 오염’을 이유로 메탄올 등 화학물질을 수송 중이던 한국 국적 ‘한국케미’호를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나포하고 한국인 5명 등 선원 20명을 억류했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고속정과 소형 보트 등 최소 5척의 함정과 헬기까지 동원한 대규모 작전이었습니다. 해양 오염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이란 제재에 따라 국내 은행에 이란산 원유 수입 대금 약 8조원(당시 환율로 약 70억달러)을 동결하고 있었습니다. 이란은 이 자금을 활용해 코로나 백신을 구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협의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관련 논의를 위해 이란 방문을 앞둔 시점에서 선박 나포가 발생한 겁니다.

선박 나포로 드러난 동결 자금 갈등

2021년 당시는 여전히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던 시기였습니다. 백신 구입에 어려움을 겪던 이란은 동결 자금을 백신 구매에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협의에 착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선박을 나포했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분석이었습니다. 외교부가 주한 이란 대사를 초치해 선박 나포에 대해 항의하자, 이란 정부 대변인은 “인질극이 있다면 한국이 70억달러를 동결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면 대응했습니다. 이는 동결된 자금 문제와 선박 나포가 연결돼 있음을 인정하는 발언이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청해부대 최영함을 호르무즈 해협에 급파하고, NSC 회의와 상황 점검 회의를 잇달아 개최했습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도 긴급 간담회를 열었습니다.미 국무부는 “미국은 화물선을 즉각 석방하라는 한국의 요구에 동참한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2021년 1월 4일 호르무즈 해협 오만 인근 해역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된 '한국케미호' 선박 모습./외교부

8조원 문제의 출발…2010년 제재 구조

이 사건의 본질은 당시 한국에 묶인 약 8조원 규모 자금입니다. 이 자금은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를 탈퇴하고 제재를 강화하면서 동결됐습니다. 한국에 묶인 8조원은 이란이 보유한 해외 자산 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

그러면 왜 이란 자금이 국내 은행에 동결됐을까요? 이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오바마 미 정부는 핵 개발에 나선 이란 정부를 제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중동에 ‘제2의 북한’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강했습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던 저는 오바마 행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7월 이란에 대한 제재를 규정한 유엔 안보리 1929호 결의가 국제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 점을 들어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동참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미 국무부 관계자들은 저를 비롯한 워싱턴 특파원들을 만나 유럽연합(EU) 외에도 호주·캐나다 등 30여 국가가 독자적인 제재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한국에 이란 제재 압력

오바마 행정부가 이같이 적극적으로 나온 이유는 이란의 2위 은행인 멜라트 은행이 서울에 지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01년 설립된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20여 대기업, 2000여 중소기업과 거래해 온 것을 주시했습니다. 멜라트은행은 우리 기업들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다른 나라 기업들과도 거래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아랍권 밖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지점임을 중시, 사실상 폐쇄에 맞먹는 강력한 조치를 요구했습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오바마 행정부는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이란의 불법 행위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동맹국인 한국이 솔선수범해서 관계를 정리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소식통은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한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 생각하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뿐만 아니라 이란 제재법을 통과시킨 미 의회도 한국의 제재 동참 여부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상·하원 외교위원의 관계자들도 여러 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한 것이 포착됐습니다.

2021년 1월 4일 한국케미'호에 이란 혁명수비대의 고속정(오른쪽 작은 선박)이 접근, 나포하려는 장면이 선박 회사의 CCTV 화면에 잡혔다./조선일보

결국 이란은행 폐쇄, 원화 결제 방식 만들어

이명박 정부는 당시 미국의 이란 제재법 시행 규칙이 확정될 때까지 제재를 결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권은 동맹국인 한국이 이란 제재에 미적거리는 것으로 비칠 경우, 다른 국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단호한 입장을 시사했습니다. 미국 측 관계자로부터는 이런 얘기도 들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에서 한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란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을 경우 마찰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서울에 지점을 둔 멜라트 은행이 이란 금융 네트워크의 핵심으로 지목되면서 곤란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2010년 9월 우리 정부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영업을 정지시키는 이란 제재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이었지만, 이는 사실상 폐쇄를 의미했습니다. 영업정지가 풀리더라도 앞으로 멜라트 은행을 통하는 모든 한국은행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에 정상영업이 불가능했습니다. 미국의 폐쇄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겁니다. 당시 미국의 폐쇄 요구를 직접 받았던 정부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이란 정부에 좀 미안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이 워낙 강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달러 거래가 막히자 한국은 원화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우리은행과 IBK 기업은행에 계좌를 개설해 무역 대금을 원화로 정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한국 기업이 이란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하면 그 대금을 원화로 지급해 이 계좌에 쌓아두고, 그 반대로 이란이 한국 기업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할 때는 이 계좌에서 돈을 빼서 한국 기업에 지불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방식은 달러 유입을 차단하면서도 교역을 유지할 수 있는 절충안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이란 교역은 연간 100억 달러 수준이었고, 한국은 원유의 약 10%를 이란에서 수입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미국의 제재를 우회하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은 직접 미국을 방문, 국무부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재무부 부장관을 만나 이를 관철시켰습니다.

2010년 9월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멜라트 은행 서울 지점을 사실상 폐쇄했다. 이후 한국과 이란간 교역을 위해 우리은행, IBK기업은행에 원화로 결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조선일보

트럼프 제재 이후 8조원 동결

한동안 한국과 이란 간에는 원화 결제 시스템이 작동됐으나 2018년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란에 대한 제재를 전면 강화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예 이란과 교역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한국에 있는 원화 계좌가 동결됐습니다. 그 규모가 약 8조원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대해 이란은 지속적으로 동결 해제를 요구했지만, 한국은 미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 의약품과 코로나 방역 물자 제공 등의 방안을 제시했으나, 이란은 이를 거부하며 반한 감정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21년 한국과 이란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주관하는 코로나 백신 공동 구매 및 배분 사업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코로나 백신을 확보하고 이 대금을 한국 내 동결 자금으로 납부하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8조원 중 1000억원 미만의 돈을 코백스에 선금으로 지불하는 것이라 미국도 동의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란은 이 자금이 달러화로 환전돼 미국 은행으로 송금되는 과정을 우려했습니다. 이같은 배경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의 한국 선박 나포가 발생하면서 양국 관계가 더욱 경색됐습니다.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협상 끝에 이란은 한국케미호를 나포한 지 약 한 달 만에 한국인 선장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원 19명을 우선 석방했습니다. 이어서 2021년 4월 9일 억류 95일 만인에 선장과 선박에 대한 억류를 전면 해제했습니다.

2023년 동결 자금 해결... 한국이 중재 역할

선박 나포 사건 이후에도 동결 자금 문제는 지속적인 외교 현안으로 남아있다가 2023년 8월 미국과 이란 간의 ‘수감자 맞교환’ 합의의 일환으로 해결되었습니다. 한국에 동결되었던 약 8조원 규모의 이란 자금은 스위스를 거쳐 카타르 은행으로 송금되었습니다. 2023년 9월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동결된 자금이 ‘이란 국민 소유’란 명확한 인식 하에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해 관련국과의 외교적 소통과 협의를 지속해왔다”며 “이란 자금은 카타르로 이전된 후에도 한국에서와 유사하게 식량·의약품 구입 등 인도적 목적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한국케미호 나포 문제 해결 과정에서 장기간 이어진 한·이란 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단순 당사국을 넘어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미국 재무부와 협의를 통해 제재 예외를 확보하고 자금 이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동결 자금을 활용해 이란의 유엔 분담금을 납부하도록 지원해 투표권 회복에도 기여했습니다. 이는 한국이 미국과 미국의 적성 국가가 관련된 금융·외교·제재가 얽힌 복합 문제를 해결한 첫 사례로 평가됩니다.

한국케미호 나포 사건의 전후 맥락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이는 단순한 해양 사건이 아니라 미국의 대이란 제재와 동결 자금이라는 구조적 갈등이 표면화된 문제였습니다. 이 사건은 제재 체제 속에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가 겪는 딜레마를 보여주는 동시에, 복잡한 국제 환경 속에서도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고 한국이 중재하는기록을 남겼습니다. 윤강현 전 주이란대사의 희망처럼 한국이 이런 경험을 살려 한 달 넘게 전쟁 중인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P.S.] “국가가 보호 의무 다했다”고 판결...외교부 참고 사례로 남아

  1.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던 한국케미호 선사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습니다. 선사는 정부가 사전 경고와 구조에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심 재판부는 정부가 억류 직후부터 이란 측과 접촉하고 선원 안전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정부 고위급 협의와 NSC 대응 등 일련의 조치가 적절했다고 봤습니다. 2심 역시 같은 판단을 유지하며 국가의 보호 의무 위반이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정부 대응이 적절했음을 인정한 판례로 남아 외교부가 유사시 대책을 논의할 때 참고하는 사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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