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어느 파 몇 세손입니다”…의성, 끊겼던 이름 다시 잇다

김동현 기자 2026. 4. 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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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로 멈췄던 의성김씨 대동종친회 2년 만에 재개
300여 명 관계 확인…“기록 아닌 사람으로 이어진다”
▲ 현판 제막 후 소나무 앞으로 자리를 옮긴 종친들이 막걸리를 따르며 제례를 이어가고 있다. 김동현 기자 jhass80@kyongbuk.com

4일, 경북 의성. 봄비가 내리는 아침, 지난해 산불로 멈췄던 의성김씨 대동종친회가 2년 만에 다시 열렸다.

종친회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우산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끊겼던 시간이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종친회관 마당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우산을 접고 들어서는 이들은 서로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웃음을 지었고, "오랜만입니다"라는 인사 뒤에는 "어느 파 몇 세손입니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름보다 뿌리를 먼저 확인하는 방식. 이날 마당을 채운 공기의 결은 그 자체로 '종친회'였다.

제123회 대동종친회 총회에는 종친과 내외빈 등 300여 명이 모였다.

▲ 경북 의성 종친회관에서 열린 대동종친회 총회 식후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텐트 아래로 모여 경품을 받으며 환호하고 있다. 의성김씨대동종친회 제공

정비된 진입로와 새로 교체된 화장실, 비를 가려주는 대형 텐트까지. 한쪽에서는 예술단이 악기를 점검하고, 딸며느리회 회원들은 차와 다과로 도착하는 이들을 맞았다.

준비의 흔적은 말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다.

행사는 종택 현판 제막으로 시작돼 소나무 아래 무대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막걸리를 따르며 종친회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했다.

짧은 의식이었지만 동작은 단정했고, 몇몇은 기념촬영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 경북 의성 종친회관에서 열린 대동종친회 총회에서 김경환 대동종친회 회장(왼쪽 네번째)이 장학생들과 함께 장학금 수여 후 무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동현 기자 jhass80@kyongbuk.com

본행사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다시 단단해졌다. 종친회기 입장과 함께 장학금 수여, 모범 청년회 시상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박수가 이어졌고, 금성면 청년회가 소개되자 객석 곳곳에서 "잘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단순한 시상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방향에 대한 공감이었다.

▲ 경북 의성 종친회관에서 열린 대동종친회 총회에서 김경환 대동종친회 회장이 종친회기를 들어 올리며 입장식을 진행하고 있다. 의성김씨대동종친회 제공

김경환 회장은 "손녀가 태어난 날 오동나무를 심고, 그 나무로 장롱을 만들어 시집보내던 이야기처럼 우리가 이어져 왔다"며 "세대를 잇는 삶이 오늘의 종친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의성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아들 석(錫)을 시조로 천여 년을 이어온 30만 일족이다.

1904년 시작된 종친회는 전쟁과 격변기를 거치며 한때 끊겼지만, 1956년 종택 설립 이후 다시 이어져 120여 년의 시간을 쌓아왔다.

▲ 경북 의성 종친회관에서 열린 의성김씨대동종친회 총회에서 종친들이 도착하는 종친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손을 내밀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저는 어느 파 몇 세손입니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이름보다 뿌리를 먼저 확인하는 인사가 현장을 채웠다. 김동현 기자 jhass80@kyongbuk.com

지난해 산불로 총회는 열리지 못했다. 그 대신 문중 차원의 성금 기탁과 읍·면 조직, 청년회를 중심으로 활동이 이어졌다.

이번 총회 역시 종친들의 손으로 채워졌다. 종회관 정비부터 행사 운영, 식전 공연과 봉사까지 각자의 역할이 모여 하나의 장면을 완성했다.

오찬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자리를 옮겨 앉으며 "오랜만이라 더 반갑다"는 말이 곳곳에서 이어졌고, 웃음이 자연스럽게 번졌다.

비가 그친 뒤에도 사람들은 쉽게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

이날 총회는 단순한 연례행사가 아니었다. 한 번 멈췄던 시간을 다시 잇고,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천년을 이어온 이름은 기록이 아니라 사람으로 유지된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날 의성의 봄비 속에서 다시 확인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