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회전무대의 ‘회전’을 담당하는 순간 가슴 속에 차오르는 기묘한 책임감이 있다. 탑승객들의 비명을 끌어내고야 말겠다는 순수한 목표 의식이다. 순간을 포착한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광기의 회전력이 느껴진다. [inter play]
명사. 1. 회전무대 2. (美) 메리 고 라운드, 라운드어바웃 3. (호주) 캐러셀, (영국) 갤로퍼【예문】고도로 발달한 회전무대는 원심분리기와 구별할 수 없다.
회전무대다. 뺑뺑이, 뱅뱅이 등 지역에 따라 별칭도 다양하다. 회전무대라는 이름보다 뺑뺑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다. 영어로는 메리 고 라운드(merry-go-round)라고 한다. 테마파크에 있는 놀이기구 중에, 미취학 아동들을 미치게 만드는 회전목마의 영문명과 같다. 보통 메리 고 라운드라고 하면 회전목마를 연상하기 때문에, 놀이터 라운드어바웃(playground roundabout 혹은 그냥 라운드어바웃)이라고 부르면 더 확실하다.
구형 회전무대. 휴먼 착즙기로 진화한다. [Guangzhou Kydavr Tech. Co., Ltd./알리바바]
지름 2~3미터 가량의 원형 철판 자체가 회전하는 경우도 있고, 원형 프레임에 외발자전거 같은 좌석을 붙여서 페달을 돌려 회전하는 모델도 있다. 내부에 고정된 벤치가 있어 앉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구(球) 모양으로 생긴 회전무대는 120%의 확률로 지구본이라 불린다.
어떤 모양이든 회전이 가능한 구조여서 탑승자가 발을 구르거나 외부에서 힘을 가해 빙글빙글 돌리며 노는 놀이기구다.
빠르게 돌릴수록 원심력이 세진다. 아이들의 동심(童心)은 때론 동심(動心)이어서, 그저 회전무대를 빨리 움직이는 것에 전심전력을 다하다가 튕겨 나가기도 한다. 떨어져 나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아예 다리나 머리 등 신체의 말단을 회전무대 밖으로 내밀고 원심력에 몸을 맡기는 익스트림 스포츠맨도 있었다. 이 모든 광기는 한 아이가, 보통 형 따라서 놀러 나온 동생이다, 울면서 끝나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원심분리기 아닌가. 때론 동심의 유의어는 광기가 되는 법이다. [project play grounds]
영화 ‘쏘우 : 여섯 번의 기회’(2009)에 등장하는 회전무대 트랩. 여섯 명이 회전무대 가장자리에 묶여 있고, 회전무대가 돌아가다가 멈추면 산탄총이 설치된 방향에 있는 사람에게 총이 발사되는 함정이었다. 실로 악취미다. [트위스티드 픽쳐스]
회전무대는 노는 게 밥 먹여 주나 - 라는 핀잔에 “물은 먹여줍디다”라고 대답할 근거가 되기도 한다. 198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처음 등장한 회전무대 플레이펌프(roundabout playpump)는 놀이에 생산성을 결합한 혁신 사례다.
놀이터 회전무대에 물 펌프를 결합해, 아이들이 놀면서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이용해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장치다. 끌어올린 물은 저수조에 저장되고 수도꼭지를 통해 공급받을 수 있다.
남아공의 수자원 엔지니어 로니 스투이버(Ronnie Stuiver)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이 장치는 이후 마케팅 전문가 트레버 필드가 특허를 인수해 사업화에 몰두했고, 2000년대 초반까지 남아공 곳곳에 50개의 펌프를 설치했다. 저수조에는 상업·공익 광고를 달아 유지 보수 비용을 벌충한다는 아이디어도 더했다.
플레이펌프 희망 편. 곧 절망 편이 나온다. [Roundabout Water Solutions][Roundabout Water Solutions]
플레이펌프의 작동 원리. [PlayPumps Zambia]
웃으며 뛰노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그리고 깨끗한 물이 쏟아져 나오는 수도꼭지. 그림으로 그린 듯한 매력적인 이미지에 미국과 서방 세계의 원조가 답지했다. 2000년 세계은행 개발 마켓플레이스 상(Development Marketplace Award)을 수상하며 아이디어를 인정받기도 했다.
2006년 미국의 에이즈 긴급구호계획(PEPFAR)¹은 비영리 단체인 플레이펌프 인터내셔널과 6000만 달러 규모의 민관 파트너십을 발표했고, 이중 1640만 달러는 미국 정부 및 민간 재단들과 공동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제43대 대통령과 배우자인 로라 부시 여사(1946~)도 개인적인 지지를 보냈고, 래퍼 제이지JAY-Z도 기금을 모금했다. 덕분에 2008년에는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지역 위주로 1000여 개의 플레이펌프가 설치됐다.
¹ United States President‘s Emergency Plan For AIDS Relief. HIV/에이즈 예방 및 치료, 연구를 위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시작한 보건 프로그램이다. 50개국 이상에 누적 900억 달러를 투입했다.
마케팅은 완벽했지만, 현실은 기대 이하였다. 복잡한 구조 탓에 설치 비용²이 높았고, 유지 보수도 어려웠다. 노는 행위가 생산성과 결부됐을 때, 아동 노동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컸다. 실제로 플레이펌프 인터내셔널은 4000개의 플레이펌프를 설치해 1000만 명에게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겠단 목표를 세웠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펌프의 성능을 기준으로 1000만 명에게 하루 최소 권장 사용량인 물 15리터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하루 27시간 내내 놀이를 해야만 했다. 24시간의 오타 아니다.
심지어 재밌지도 않았다. 펌프와 연결된 탓에 시원하게 회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리할 부품, 비용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고장 난 채로 방치됐고, 수요 없는 광고판은 비어있었다.³
² 정보 출처에 따라 다른데 1기의 플레이펌프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9만6000 남아공 랜드(약 871만원, chemeurope.com)~1만4000달러(약 2024만원, www.playpumps.org) 소요된다. │ ³ Brocklehurst C. and P. Harvey(UNICEF), 2007, ‘An Evaluation of the PlayPump® Water System as an Appropriate Technology for Water, Sanitation and Hygiene Programmes’ 참조.
사람들은 채도를 높이고, 웃고 있는 개도국 아이들을 배치한 사진에 약하다. 인스타그램 필터를 끄고 나서야 보이는 진실이 있는 법이다. [PlayPumps International]
요는 의도는 좋았지만 실효성은 턱없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물 관련 자선 단체와 비정부기구(NGO)는 수천만 달러의 자금이 헛된 사업에 낭비됐다며 비판했다. 그 돈으로 수동 펌프와 우물을 더 설치·관리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자, 결국 2009년 플레이펌프 인터내셔널은 신규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재는 라운드어바웃 워터 솔루션스(RWS) 라는 남아공 비영리단체가 약 860여개의 플레이펌프 관리 및 설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사람들은 혁신에 쉽게 열광한다. 세상을 바꾸겠노라 선언하며 등장한, 선의로 포장한 아이디어는 때론 너무 반짝여 실체적 빈약함을 감춘다. 혁신이란 이름의 착시에 현혹된 이들은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지 않고, 지속 가능성을 외면한다. 이런 일은 비단 아프리카의 가난한 마을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고 엘리트라 자부하는 실리콘밸리와 월가에서도 반복돼 온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