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 해소하는 또 다른 방법
한풀이 판타지 장르 벗어난 ‘신이랑 법률사무소’… 귀신 보는 변호사가 보여준 ‘구원’의 메시지

“또 변호사 나오는 드라마야?”
서울 서초동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 간판 수만큼은 아니지만, 변호사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부쩍 늘었다. 그 많은 ‘변호사 드라마’ 사이에서 ‘신이랑 법률사무소’(SBS)가 눈에 띄는 건 의뢰인이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신이랑(유연석)은 로펌 입사 면접에서 번번이 탈락하자 홧김에 어머니의 식당 보증금 일부를 끌어다 법률사무소를 낸다. 그러나 계약한 곳은 과거 점집이었고 이랑은 첫날부터 귀신을 만나게 된다. 간판은 바뀌었지만 억울한 이들이 찾아오는 곳이라는 그 공간의 존재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망자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주로 사적 복수를 통해 억울함을 풀곤 하지만,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MBC)에서 유령을 보는 노무사처럼 검사나 변호사가 제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신이랑 법률사무소'는 그 설정을 한 걸음 더 밀고 나간다. 망자가 직접 변호사 앞에 나타나 사건을 의뢰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두려워하며 외면하던 이랑도 서서히 망자를 의뢰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왜 하필 이랑인가
“무슨 일인지 말씀해보세요. 변호사나 무당이나 억울한 일 들어주는 사람이잖아요.” 이랑이 건네는 이 말은 드라마를 관통하는 정서이자 오래된 질문을 건드리는 말이다. 망자의 억울함은 누가 어떻게 풀어줄까? 이 질문은 ‘아랑설화’나 ‘장화홍련전’ 등 과거 이야기를 통해, 그 이야기를 각색한 드라마 시리즈 ‘전설의 고향’ 속 (주로 처녀) 귀신을 통해서도 반복됐다. ‘신이랑 법률사무소’는 이 질문의 가장 최근 버전인 셈이다. 사또가 변호사로, 관아가 법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렇게 망자가 등장하는 이야기 중 ‘신원형(伸寃型) 원혼 설화’가 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원통한 일이나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푸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신이랑 법률사무소’는 신원형 원혼 설화에 가깝다. 억울하게 죽은 망자가 이랑을 찾아오고, 이랑은 망자의 도움을 받아 사망 원인을 밝혀 법정에서 가해자를 처벌한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 귀신이 되어 떠돌던 망자는 비로소 떠날 수 있게 된다. 물론 모든 검사나 변호사가 망자의 억울함을 해결해주는 건 아니다. 드라마에는 이랑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변호사도 등장한다. 법무법인 태백의 양도경(김경남)은 옳은 길보다는 편법이나 불의한 방법을 동원해 이기려는 변호사다. 같은 법정 안에도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인간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귀신의 억울함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왜 하필 이랑이 있을까?
그간 우리가 봐온 설화 속 사또는 제도 안의 권위자다. 중앙에서 파견된 공권력의 상징으로, 귀신의 억울함을 시혜적으로 해결해주는 존재다. 그러나 고전문학 ‘아랑설화’를 연구한 하은하에 의하면, 신원 대리자(귀신의 억울함을 듣고 해결해주는 인물)는 몰락한 양반이나 나이 들도록 과거에서 낙방한 선비 등 사실상 “소외받고 인정받지 못한 존재”가 많았다. 이들이 귀신의 호소를 들을 수 있었던 건 담력이 세거나 충분한 권력을 가져서가 아니다. 자신들도 세상으로부터 억울하게 외면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억울한 존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하은하는 이를 “소외된 존재들 간의 연대”라 불렀다.

망자들이 자꾸 나타나는 이유
‘신이랑 법률사무소’ 속 신원 대리자들도 비슷하다. 검사인 이랑의 아버지는 비리 검사라는 누명을 쓰고 죽었다. 그 때문에 가족은 사회적 냉대를 경험해야 했고, 이랑은 로펌 면접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이랑과 자꾸 얽히며 협력하게 되는 변호사 한나현(이솜)도 마찬가지다. 나현은 과거에 언니를 잃었고, 그게 나현을 변호사의 길로 이끈 주된 이유다. 이들은 권위자가 아니라 제도에 의해 상처받았지만 그 제도 안에 있는 존재다. 단순한 신원 대리자도 아니다. 때로는 망자의 영혼에 빙의해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망자들은 왜 자꾸 나타날까? 대답은 단순하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죽으면 죽어서도 변호사가 필요해”라는 이랑의 말처럼 죽어서도 변호사가 필요한 일이 세상에는 널리고 널렸다. 신이랑 법률사무소의 첫 번째 의뢰인은 의사의 과실로 사망한 이강풍(허성태)으로, 병원 쪽은 대형 로펌을 동원해 사고를 덮으려 한다. 두 번째 의뢰인은 아이돌 지망생인 김수아(오예주). 어려운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데뷔를 준비하던 수아는, 자신을 시샘한 동료에 의해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세 번째 의뢰인은 3년 연속 과학자상을 받을 정도로 촉망받던 연구자 전상호(윤나무). 상호 역시 자신을 질투한 동료에 의해 살해된 뒤 주검이 유기된다.
(현재까지 등장한) 세 의뢰인의 사연은 저마다 다르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억울하게 죽은 망자가 신이랑 법률사무소를 찾아온다. 이랑과 매형 윤봉수(전석호), 나현이 협력해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고, 망자는 떠난다. 그러나 드라마는 단순한 한풀이 판타지에 머물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받아 방에 자신을 고립시킨 딸은 아버지 강풍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밝혀지자 비로소 세상 바깥으로 나온다. 수아는 어릴 때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어머니가 사실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이랑의 도움으로 자신의 각막을 이식하게 한다. 상호는 이랑에 빙의해 미완 상태의 연구를 완료한다. 이 연구로 희귀병을 앓는 상호의 장모 상태는 호전되고 가족은 행복을 되찾는다. 모두 망자의 억울함이 해소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죽음은 단절이 아닌, 살아 있는 이들의 구원으로 이어진다.

망자를 온전히 기억한다는 것
극의 전개 과정에서 눈에 띄는 첫 번째 설정은 ‘빙의’다. 신원형 원혼 설화에서 귀신은 주로 신원 대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신이랑 법률사무소’에서는 망자가 이랑의 몸을 빌려 직접 말하고 행동한다. 이때 빙의는 망자의 억울함뿐 아니라 다채로운 감정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설화 속 귀신이 대체로 억울함의 상징으로만 존재했다면 ‘신이랑 법률사무소’ 속 망자들은 빙의를 통해 떡볶이를 먹고, 춤추며, 슬픔과 분노를 제대로 표출한다. ‘살아 있던’ 사람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억울함을 푸는 것과 그 사람을 온전히 기억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빙의는 그 둘을 동시에 구현한다.
두 번째 설정은 ‘의례’다. 더는 빙의할 필요가 없을 때, 즉 망자가 할 말을 다 하고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전직 무속인 출신의 신부는 부적을 태우는 의례로 망자를 떠나보낸다. 이랑과 나현이 법정에서 할 수 있는 것과 신부가 의례로 할 수 있는 것은 다르지만, 이 둘은 하나의 프로세스 안에서 함께 작동한다. 법정 승소만으로는 해원이 완성되지 않는다. 어쩌면 드라마 제목이 ‘신이랑 변호사’가 아니라 ‘신이랑 법률사무소’인 건, 그 공간이 법과 의례가 유기적으로 만나는 자리임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현실에서 이 프로세스는 누가 만들어왔을까?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대부분의 억울함과 분노 정서는 문제 해결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억울함을 들어줄 여유가 없거나 법정에서 진실을 밝혀줄 공의가 부재한 상황 말이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망자의 호소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었듯, 한국 사회에서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만들어온 것은 상당 부분 유가족이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희생된 아이의 이름을 딴 일명 ‘민식이법’이나 반복되는 산업재해에 가족을 잃고 맞서 싸운 끝에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 이 법들의 이름 뒤에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고, 그 죽음을 붙들고 놓지 않은 ‘산 자들’이 있다.
망자들에게 신이랑 법률사무소가 필요했듯, 현실에서도 억울한 이들을 정당하게 신원하고 제대로 애도해줄 존재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모든 사건은 돌고 돌아 결국 변호사를 만나요”라는 이랑의 말이 낙관처럼 들리는 건, 그 자리가 채워질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됐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한이 제도 안에서 풀릴 수 있다는 믿음, 진실을 밝히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진다는 믿음. 그러나 현실에는 그 믿음을 뒷받침할 조건이 부재한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이 낙관은 서글프다. ‘신이랑 법률사무소’는 억울한 죽음 앞에서 그간 우리 사회가 당사자와 유가족에게 떠넘겨온 것들을 드라마 안으로 끌어들인다. 법정에서 싸우는 일, 죽은 자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일, 그리고 잘 떠나보내는 일. 이랑과 나현, 그리고 신부가 나눠 맡은 그 역할이 현실에서는 상당 부분 당사자와 유가족의 몫이었음을 이 드라마는, 의도했든 아니든, 보여준다.

섣부른 낙관으로 환원되지 않기를
제작진은 “세상에 없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그 어디에도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바로 그 “세상에 없는 변호사”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결핍을 가장 정확하게 짚는다. 그래서 드라마가 매 에피소드를 깔끔한 승소로 마무리할 때 이야기는 결핍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채 제도에 대한 낙관으로 서둘러 봉합될 위험이 있다. 세상에는 억울함을 풀어줄 결정적 증거가 끝내 나오지 않는 사건도, 법정 바깥에서 조용히 묻히는 죽음도 많기 때문이다.
‘신이랑 법률사무소’가 모든 걸 다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억울한 죽음들이 왜 반복되는지, 망자들은 왜 자꾸 나타나야만 하는지, 그 죽음들 사이에 어떤 연대가 가능한지를 섣부른 낙관으로 환원하지 않고 뾰족하게 드러낼 때 이 드라마는 단순한 한풀이 판타지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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