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옛 양조장의 변신…술·자연·이야기 담은 ‘박봉담’

박윤희 2026. 4. 4. 17: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수제양조장·키친·테이스팅룸 유기적으로 연결된 복합문화공간
국순당 옛 화성양조장에 위치, 우리 술 과거와 현재, 미래 담아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남짓 떨어진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주말엔 오가는 인적이 드문 한적한 거리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옛 국순당 화성양조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문화공간 ‘박봉담’이 들어서면서다.

지난해 2월 개관 1주년을 맞은 박봉담엔 하루 평균 1500~2000명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주변에 별다른 관광 자원이 없는 지역임에도 이곳이 주말 나들이 명소로 자리 잡게 된 계기가 뭘까.

국순당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백세주의 기존 화성양조장 부지를 대대적으로 개발해 술복합문화공간인 '박봉담'을 지난해 2월 말 오픈했다. 박윤희 기자
 
◆ ‘백세주’ 태어난 그곳,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2일 방문한 ‘박봉담’은 단순한 술 체험 공간을 넘어 우리나라 대표 발효주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곳이었다. 이야기는 입구 주차장 입구에 우뚝 선 ‘풍류정’에서 시작된다.

얼핏 보면 ‘짓다 만 듯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과거 물류창고로 쓰이던 건물 외관을 그대로 살리고 벽을 허물어 개방감을 살렸다. 

선선한 바람이 통하는 풍류정 안으로 들어서니, 밖에선 볼 수 없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면에 네모나게 뚫린 시멘트 창밖으로 활짝 핀 진달래와 키 작은 소나무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인상적인 장면을 선사했다. 과거 건물 해체 과정에서 나온 자재는 작은 돌담으로 재탄생했다.

박봉담 풍류정. 과거 물류창고로 쓰이던 건물 외관을 그대로 살리고 벽을 허물어 개방감을 살렸다. 박윤희 기자
국순당 관계자는 “과거 유휴부지였을 당시 자연스럽게 땅 위로 풀이나 나무들이 자랐다. 건물 설계 단계부터 이들 자연을 그대로 살리면서 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고려했다”면서 “낡은 기둥 하나까지도 옛 양조장 자취를 담고 있어 최대한 살리고 그 위에 설계를 덧대 공간 곳곳에 의미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박봉담은 옛 국순당 화성양조장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다. 1986년부터 2004년까지 우리나라 전통주 역사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양조장으로, ‘백세주’가 탄생한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캔막걸리 ‘바이오탁’도 이 곳에서 생산됐다. 

◆ 술을 만드는 공간에서 머무는 공간으로

박봉담은 총 1만3200㎡(약 4000평) 규모 부지에 국순당 연구소와 수제 양조장, 박봉담 키친, 스마트팜, 보틀샵 등을 갖췄다. 

박봉담이라는 이름은 ‘봉담에 위치한 공원(park)‘라는 뜻을 담고 있다. 국순당은 박봉담이 공장이 아닌 사람들이 함께 모여 소통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공원 같은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같이 정했다.

국순당 관계자는 “박봉담은 단순한 제조 시설을 넘어 사람들이 머물고 교류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원으로 공간의 개념을 확장했다”라며 “단순히 생산만 담당하는 공장이 아닌 술에 대한 기획과 연구, 개발, 생산, 출시, 소비자와 소통을 함께 하는 술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고 말했다. 

박봉담키친과 스마트팜 사이 중정을 만들어 개방감과 계절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 박윤희 기자
박봉담은 우리 전통주와 관련한 식문화를 연구하고 새로운 술을 개발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선 연구원들이 술을 연구하고 제작에 참여해 실험적인 술을 빚는다.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연간 100여종 이상의 술이 이곳에서 탄생한다. 

새로운 술을 언제든 연구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생산라인에는 200L~500L가량 소규모 탱크를 배치했다. 현재 한국적 감성을 담아낸 K-수제맥주, 무알코올 막걸리 등 총 13종의 다양한 술을 빚고 있다. 지역 재료를 활용해 우리 술과 한국적인 맥주의 본질과 개성을 표현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다. 

박봉담양조장 막걸리로 만든 술빵과 막걸리효모로 만든 발효종빵. 박윤희 기자
박봉담키친은 양조장에서 직접 빚은 술을 다양한 먹거리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키친 한쪽에 중정을 통해 계절감을 느낄 수 있도록 꾸몄다. 좌석은 총 200석 규모다. 

시그니처 메뉴는 박봉담양조장 막걸리로 만든 술빵과 막걸리효모로 만든 발효종빵이다. 막걸리 발효에서 나오는 유익한 미생물과 영양소를 때문에 달콤하면서 은은한 산미가 난다. 

모든 재료에 활용되는 채소는 스마트팜에서 직접 키워 사용한다. 계열사 팜업에서 운영하는 공간으로, 버터헤드 등 엽채류 3종과 허브류 등이 재배된다. 근접 공간에 위치해 물류비용 절감 등 탄소 절감에 기여한다. 
중앙 정원에서 스마트팜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박윤희 기자
 
박봉담 테이스팅룸은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술과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소비자 의견을 들어 다시 신제품 개발에 활용한다. 이 공간엔 프랑스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드비알레'의 스테레오 사운드 시스템이 설치돼 웅장한 사운드가 체험의 몰입감을 높인다.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리브랜딩 백세주 브랜드체험행사 ‘백년을 잇는 향기’가 진행됐다. 향후 박봉담양조장에서 개발한 전통주와 K맥주를 해외 유명 와인과 동시에 비교 시음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 코드명 ‘화양연화’…술과 인생, ‘이야기’ 담은 술 개발

신우창 국순당 연구소장은 우리 술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윤희 기자
이곳에서 만난 신우창 국순당 연구소장은 우리 술의 특징에 대해 ‘다양한 미생물이 모여 만들어내는 복합성’과 ‘복잡성’을 꼽았다.

신 소장은 “일본 술이 하나의 누룩과 효모로 하나의 술을 빚는 구조라면, 우리 전통 누룩은 수천개의 미생물이 모여 복잡한 맛을 낸다. 여러 누룩 향과 과실향이 모여 자칫 잘못하면 향미가 너무 많거나 맛이 떨어질 수 있다”며 “다양한 미생물의 ‘복합성을 질서화’해 최상의 맛을 끌어내고 유지하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맛이 강한 우리나라 음식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술의 맛을 내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복합적인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신 소장은 막걸리 개발 과정에 관한 에피소드도 풀어놨다. 박봉담 막걸리 개발 당시 코드명은 ‘화양연화’. 

신 소장은 “인생의 절정기가 있듯 술도 향미가 폭발하는 시점이 있다. 너무 불안정한 시기이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 박봉담에서 소량 생산으로 제품화했다”면서 “이 술을 마시면서 자신이 가장 빛났던 순간을 돌아보고 인생을 이야기 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박봉담막걸리는 국순당 연구소가 최적의 향을 만들기 위해 우리 제법을 기반으로 발전시킨 ‘아로마 발효기술’로 빚어낸 수제 생막걸리다. 알코올 도수는 8.5%로 과실 향이 풍부하게 살아 있는 원주 그대로 깊은 풍미를 담았다. 

이 외에도 박봉담에선 지역에서 수확한 쌀로 생산한 생백세주를 만나볼 수 있다. 기존 백세주와 재료 비중을 다르게 구성해 백세주 본연의 맛을 간직하면서도 더 풍성하고 산뜻한 과실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박봉담 양조장에서 만든 수제맥주 샘플러. 박윤희 기자
전통 재료를 활용해 재해석한 맥주도 이곳의 인기 메뉴다.

시그니처 메뉴는 ‘박봉담쌀맥주’다. 국내 최초 양조전용쌀인 설갱미와 홉, 맥아를 정교하게 조합해 뉴잉글랜드IPA 스타일의 쌀맥주로 부드럽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국순당은 2008년부터 설갱미로 맥주를 빚고 있다. 

‘박봉담IPA’는 전통 잉글랜드 스타일 맥주로 강한 쓴 맛과 묵직한 바디감이 특징이다. ‘박봉담유자바이첸’은 독일식 밀맥주 스타일에 국내산 유자를 활용해 바이첸 맥주 특유의 상큼한 향과 유자의 새콤한 맛이 특징이다. 

국순당 관계자는 “박봉담에는 이야기를 담은 술과 음식을 즐기며 개인의 취향을 발견하는 공간”이라며 “앞으로도 술의 본질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다양성을 더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윤희 기자 pyh@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