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는 먼 곳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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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는 다복이와 함께 고물상과 귤밭을 지키는 개다. 백구는 사람을 좋아한다. 낯선 이가 와도 꼬리를 흔든다. 내가 오면 백구는 앞발을 재빠르게 놀린다.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한다. 내가 다복이를 쓰다듬고 있으면 배를 까고 드러누운다. "어서요, 날 더 사랑해줘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랑에 굶주린 백구에게 다복이는 친구가 아니다. 경쟁자다. 다복이를 물려고 덤벼든 적도 여러 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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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의 지원으로 다복이와 백구의 집은 원목집으로 바뀌었다. 5m 와이어줄도 달렸다.
그 후로 백구는 5m의 줄 끝에 앉았다. 할아버지가 폐지를 쌓아두면, 그 위에 올라갔다. 푸른 빛이 도는 갈색 눈으로 먼 곳을 봤다. 귤밭 너머, 길 너머, 어딘가를.
무엇을 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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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등을 돌린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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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이름이 없냐고. 왜 그냥 백구냐고.
"원래 집안에서 누가 키우던 개야. 그 사람이 이사를 가면서 개를 줬어. 그때 이름을 말해줬는데... 까먹었어."
그렇게 백구의 이름은 사라졌다.
분명 누군가에겐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구는 사정을 모른다. 어느날 백구의 세상이 뒤집혔다. 낯선 곳으로 와서 짧은 줄에 묶이게 되었다. 추위와 더위에 그대로 노출되고, 크고 무서운 다복이 옆에서 살아야 한다.
한때는 소파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밤중에 누군가의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누군가는 백구를 쓰다듬어줬을 것이다.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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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 수의학과 교수님 한 분이 백구의 중성화수술을 도와주셨다.
수술 전날은 비가 오는 초겨울이었다. 백구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는 백구를 우리집에 데려왔다.
백구는 처음엔 현관에서 서성였다. 바닥 냄새를 맡고, 벽을 올려다보고, 나를 한번 봤다. 침대에 올라와서는 멍하니 두리번거렸다. 조금 지나자 배를 까고 누워 꼬리를 흔들었다. "나 좋아요. 집 안에 있는 게 너무 좋아요!"
그날 밤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잤다.
백구는 눈꺼풀이 꾸벅꾸벅 감기면서도 계속 나를 바라봤다. 내가 사라질 것처럼. 이 아늑한 공간이 갑자기 뒤집힐 것처럼.
깊은 바다 같은 눈.
그 바닥 어딘가에, 진짜 이름이 가라앉아 있는 눈.
나는 등을 돌리지 않고
그 눈을 오래 마주보았다.
유재연
제주시 조천읍에 살고 있습니다. 매일 밭지킴견을 산책시키고, 소설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