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녀가 나이 60인 저를 사랑한다고 합니다”···꽃뱀이 남긴 피비린내 [히코노미]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6. 4. 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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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황혼은 젊은이의 여명보다 밝고 뜨거웠다. 늙어빠진 몸뚱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 존재가 있어서였다. 심장은 사춘기 소년처럼 자주 두근거렸고, 볼은 자주 발그레했다. 더 이상의 사랑, 더 이상의 쾌락은 무의미하다는 자조는 사라졌다.

나이 65살이 어떻단 말인가. 16살, 그야말로 꽃다운 소녀가 옆에 있는데. 하얗고 고운 살갗을 내어줬다는 이유만으로, 노인은 소녀에게 모든 걸 주고 싶었다. 세상 최고의 여자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으리으리한 재산, 범접할 수 없는 권력도 모두 그녀의 것이었다.

할아버지와 손녀뻘의 사랑은 노망이나, 주책의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는 누군가의 피로써 세워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벨기에의 왕 레오폴트 2세와 어린 애인 캐롤라인 라크루아의 이야기. 경제사에 피비린내를 진하게 남긴 비극이기도 했다.

“사랑해요. 당신의 돈을.” 쿠엔틴 마티스의 ‘어울리지 않는 여인들’. 15세기 작품.
콩고에서 희망을 찾다
레오폴트 2세가 벨기에의 국왕으로 즉위한 건 1865년이었다. 그는 자주 조바심이 났다. 주변국들이 세계 열강으로 융성했으나, 벨기에는 여전히 그저 그런 소국이어서였다. 흔하디흔한 식민지 하나 없다는 사실에 그는 자주 주눅 들었다.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에 어엿한 식민지를 건설해, ‘제국’ 벨기에로 나가야 한다고 레오폴트는 사자후를 토했다.

그의 말은 언제나 의회의 벽에 부딪혀 메아리로 사라졌다. 선대 레오폴트 1세가 추진했던 식민지 건설이 모두 실패한 전례가 발목을 잡았다. “저 양반 아직 저러고 있네”라는 비아냥이 잇따랐다.

“우리 벨기에도 식민지 하나 쯤은...: 1875년 레오폴트 2세 초상화.
의기소침한 벨기에 국왕 앞에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헨리 모턴 스탠리. 미국인 탐험가였다. 아프리카를 제집 드나들 듯 해, 탐험에 이골이 난 남자였다. 그가 레오폴트 2세를 달콤한 말로 꾀었다. 아프리카 콩고분지는 아직 열강의 마수가 뻗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오호, 쾌재라. 벨기에가 나아가야 할 길로 레오폴트 2세의 눈이 트였다.

탐험가 스탠리가 다시 아프리카에 발을 디뎠을 때, 그는 더 이상 일개 탐험가가 아니었다. 레오폴트 2세가 그를 공식 대리인으로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벨기에 국왕의 공식 대리인’이라는 반짝이는 직함이 무색하게도 그의 가방에는 싸구려 면직물과 색이 바랜 유리구슬, 그리고 진(gin) 몇 병뿐이었다. 스탠리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이 가방 하나로 아프리카의 거대한 땅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아프리카에 좋은 땅이 있는데요” 미국인 탐험가 헨리 모턴 스탠리.
레오폴트, 마침내 식민지를 갖다
스탠리의 상술은 봉이 김선달과 견줄만한 것이어서, 그는 글과 셈을 모르는 부족장을 구슬렸다. 술을 먹여 알근하게 취한 추장들에게 면직물과 유리구슬을 건넸다. 종이 문서에 몇 글자만 끄적거리면 된다는 스탠리의 말에 속아 사인하고 말았다. 토지의 소유권, 교역의 독점권, 지역의 통치권이 모두 이렇게 넘어갔다. 벨기에판 봉이 김선달에게 당한 부족장은 450명에 달했다. 피부가 흰 사나이가 가져온 ‘악마의 계약서’였다.
“망고보다 맛있는 콩고~. ” 1884년 베를 린회의에 참석한 레오폴트 2세를 묘사한 만화.
콩고 분지의 거대한 땅이 제 것이라는 사실에 우쭐했지만, 레오폴트 2세는 몸을 낮게 숙였다. 식민지를 갖겠다면서 흥분해 날뛰다가 강대국들에 두들겨 맞고 찌그러진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레오폴트 2세는 영리한 아들이었으므로, 그는 방향키를 아버지의 것과 정반대로 가져갔다. “콩고 분지는 벨기에의 땅이 아닌 레오폴트 2세의 사유지일 뿐이며, 왕의 목표는 이 땅에서 노예제도를 몰아내고 자유무역을 뿌리내리기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냈다.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은 레오폴트 2세의 말을 수긍했다. 여기에는 정치 공학적 계산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콩고라는 땅을 완충지대로 만듦으로써 열강들끼리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할 수 있어서였다. ‘콩고 자유국’(Congo Free State)이 출범했다. 여기서 ‘자유‘는 레오폴트 2세가 이 땅을 착취할 ‘자유’를 말했다.

“우리도 식민지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연설하는 레오폴트 2세.
고무의 발견으로 웃다
보기 좋은 떡도 가끔은 맛이 고약한 경우가 있는데, 콩고가 그랬다. 넓은 땅은 떵떵거리기 좋았지만, 실속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주민을 윽박질러 뽑아 온 상아 몇 개로는 수지맞지 않았다. 레오폴트 2세는 모골이 송연했다. 재산이 눈에 띄게 줄고 있었다. 식민지 개척으로 벨기에를 제국으로 만들겠다는 꿈은 노망난 늙은이의 노욕으로 증명되는 듯했다. 1888년이 되기 전까지는.

존 보이드 던롭은 북아일랜드의 수의사였다. 그의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을 바꿨다. 19세기 후반 공기 주입식 타이어를 발명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자전거와 자동차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모빌리티 혁명’이었다.

“걷지 말고 앉으세요 룰루~” 존 보이드 던롭.
빠르게 달려가는 자전거 안장에서 사람들이 미소지을 때, 레오폴트 2세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타이어를 만드는 고무의 원산지가 아메리카의 브라질과, 아프리카의 ‘콩고‘였기 때문이었다. 레오폴트 2세의 땅에 단비가 내려서, 돈에 목말라 주름진 그의 얼굴도 급작스레 윤기가 흘렀다.

레오폴트 2세의 기쁨의 눈물은 콩고 땅에서는 피로 변했다. 그가 칙령을 발표해 콩고의 전 원주민들에게 고무 상납을 의무화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원주민 앞에 나타난 건 철갑을 두른 백인 군인들이었다. 쭈뼛쭈볏 하는 남자들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할당된 분량을 채우라는 의미였다. 콩고 주민의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채찍을 맞아 피를 흘리거나, 고무 노동으로 땀을 흘리거나, 아니면 둘 다 흘리거나.

콩고 노동자들이 고무나무 수액을 체취하는 모습.
지옥이 펼쳐지다
레오폴트 2세의 사병들은 포스 퓌블리크라고 불렸다. 우리 말로는 공권력. 그들은 이름과는 달리 단 한 사람을 위한 힘이고 총이고, 칼이었다. 레오폴트 2세는 쏟아져 들어올 돈의 무게를 상상하면서 황홀했다. 장밋빛 장래에 몸이 안달복달해서 포스 퓌블리크를 자주 채근했다. 더 많은 고무 생산량, 더 많은 돈을 위해서였다. 임금의 어명이 지엄해서, 포스 퓌블리크는 콩고 땅에서 더욱 미쳐 날뛰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이들의 손목을 잘라버린 것이었다.
레오폴트 2세가 콩고 원주민의 손목을 휘감고 위협하는 풍자화. 1906년 작품.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공포를 줌으로써, 고무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다고 믿은 것이었다. 손목은 레오폴트 2세를 향한 충성의 상징이었다. 레오폴트 2세의 재산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손목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고무는 그렇게 피를 먹고 자랐다. 콩고의 수많은 사내는, 여인들은, 노인들은, 아이들은, 한쪽 손만 달고 살아가야 했다. 콩고는 ‘외손’의 나라였다.

레오폴트 2세는 번듯한 사나이였다. 약소국의 이름뿐인 왕이라는 허울은 벗어 던졌다. 그의 재산이 유럽의 내로라한 왕실에 버금가는 것이어서였다. 그 누구도 레오폴트 2세를 무시할 수 없었다. 대관절, 고무의 왕을 어떻게 깔본단 말인가.

“일은 열심히 해야지... 안 하면 혼나야 하고...” 악마 레오폴트 2세.
물쓰듯 돈을 쓰다
벼락처럼 부자가 된 이들은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서라도 과시욕에 젖어 들기 마련인데, 레오폴트 2세가 딱 그랬다. 벨기에 전역에 화려한 건물을 지어댔다. 라에켄의 거대한 왕실 온실, 브뤼셀의 셍캉트네르 개선문, 안트베르펜 중앙역의 화려한 돔, 그리고 테르뷔런의 왕립 중앙아프리카 박물관. 레오폴트의 또 다른 이름은 ‘더 빌더 킹’(The Builder King), 건축왕이었다.

돈을 물 쓰듯 쓰는 그에게, 숱한 여자들이 달라붙었다. 그는 쾌락에 점잔빼는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자신이 지은 웅장한 저택에서 쾌락에 물들었다.

레오폴트 2세가 건설한 브뤼셀의 퀀테네르 파크. [사진출처=마크 리카에르트]
특히 그가 가장 애착을 보인 인물은 캐롤라인 라크루아였다. 16살, 프랑스 파리 출신의 여인이었다. 십 대의 재기발랄함으로, 그녀는 손쉽게 레오폴트를 요리했다. 남자를 다루는 방법에 능란했던 그녀는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창녀였다. 파리의 내로라 하는 거물들을 제것으로 만든 실력으로 고무의 왕까지 손아귀에 거머쥐었다.

십 대의 교태에 홀려서, 레오폴트 2세는 그녀에게 모든 걸 주려 했다. 수많은 드레스, 보석, 현금과 저택이 그녀의 소유였다. 라크루아의 보석함에는 콩고 채권도 놓여 있었다. 콩고 원주민의 피가 프랑스 창녀의 배를 채웠다.

캐롤라인과 레오폴트 엽서.
콩고를 포기하나 했더니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어서, 손목이 하나만 있는 사람으로 가득한 콩고의 이야기가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유럽인들은 뒤로는 온갖 구린 짓을 일삼으면서도, 앞에서는 도덕과 체면을 내세우는 위인들이었으므로, 모두가 레오폴트 2세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프랑스 어린 창녀와 뒹굴면서, 콩고 어린이의 손목을 잘라대는 비열한 인간이라고.
“노세, 노세 늙어 노세...” 레오폴트 2세와 라크루아 관계를 조롱한 풍자화.
1908년 벨기에는 사면초가였다. 주변유럽의 시민사회, 종교 단체들의 비난이 거세게 일어서였다. 분노한 그들의 손에는 ‘손이 잘려 망연자실한 콩고인’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레오폴트 2세는 그의 사유지를 벨기에 정부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노욕은 끝이 없어서, 그는 벨기에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상금을 챙겼다. 그는 막대한 자금을 안고 라크루아와 결혼식까지 올렸다. 창녀에서 왕의 부인으로. 라크루아는 화류계의 전설이었다. 이듬해 레오폴트 2세가 죽어버려서, 라크루아는 프랑스의 포주와 재혼했다. 그녀의 서사는 더없이 완벽해졌다. “공사를 칠 거면 라크루아처럼 치는 것”이라고, 프랑스의 창녀들은 수군거렸다.

“자기야...재혼은 안돼...돌싱글즈는 안돼...” 레오폴트 2세의 죽음.
콩고의 비극은 현재진행형...
비극의 원흉은 죽어버렸지만, 콩고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고무나무 씨앗이 동남아시아까지 밀수돼 대량 생산되기 시작해서였다. 과잉 공급은 가격 폭락을 불러서, 콩고는 더없는 고통을 마주했다.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민주콩고)했어도 콩고는 웃지 못했다.
“할아버지, 내 손 어디있어요” 브뤼셀 대성당 주춧돌을 놓는 레오폴트 2세 옆에 손과 발이 잘린 콩고 아이들이 그려져 있다.
비극은 고무나무 뿌리처럼 억세고 질기게 달라붙었다. 언어, 문화, 민족 구성원이 전혀 다른 부족끼리 ‘한 국가’로 뭉쳐버린 탓이었다. 카탕카 주가 분리 독립을 선언하면서 콩고는 내전에 빠졌다.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지역에서도 분리를 주장했다. 그 뒤로 군부 독재가 이어졌다.

손목에서 흐르던 피가, 또 다른 피를 불러서, 콩고는 여전히 피에 잠겼다. 고무나무에서 눈물짓던 고사리손의 아이들은 100년 뒤에는 스마트폰 배터리의 원료인 코발트를 캐고 있어서다. 벨기에를 아름다운 궁전으로 밝힌 손이 스마트폰을 밝히는 손이 되어가는 셈. 어두워지는 건 오직 콩고 아이들의 낯빛과 고사리손 뿐.

콩고 자유국 관리 스톰스 장군 기념비에 붉은 페인트가 칠해 져있다. 콩고 국민의 피 를상징한다. [사진출처=EmDee]
<네줄요약>

ㅇ19세기 벨기에 레오폴트 2세는 어엿한 제국이 되기 위해 아프리카 콩고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ㅇ고무 타이어가 발명되면서, 콩고는 고무 생산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레오폴트 2세의 폭주가 시작됐다.

ㅇ고무 생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목을 잘랐고, 그 돈으로 10대 창녀와 부귀영화를 누렸다.

ㅇ벨기에가 임의로 만들어놓은 국경선 때문에 독립 후에도 내전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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