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녀가 나이 60인 저를 사랑한다고 합니다”···꽃뱀이 남긴 피비린내 [히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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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황혼은 젊은이의 여명보다 밝고 뜨거웠다.
주변국들이 세계 열강으로 융성했으나, 벨기에는 여전히 그저 그런 소국이어서였다.
그는 쾌락에 점잔빼는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자신이 지은 웅장한 저택에서 쾌락에 물들었다.
수많은 드레스, 보석, 현금과 저택이 그녀의 소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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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황혼은 젊은이의 여명보다 밝고 뜨거웠다. 늙어빠진 몸뚱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 존재가 있어서였다. 심장은 사춘기 소년처럼 자주 두근거렸고, 볼은 자주 발그레했다. 더 이상의 사랑, 더 이상의 쾌락은 무의미하다는 자조는 사라졌다.
나이 65살이 어떻단 말인가. 16살, 그야말로 꽃다운 소녀가 옆에 있는데. 하얗고 고운 살갗을 내어줬다는 이유만으로, 노인은 소녀에게 모든 걸 주고 싶었다. 세상 최고의 여자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으리으리한 재산, 범접할 수 없는 권력도 모두 그녀의 것이었다.
할아버지와 손녀뻘의 사랑은 노망이나, 주책의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는 누군가의 피로써 세워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벨기에의 왕 레오폴트 2세와 어린 애인 캐롤라인 라크루아의 이야기. 경제사에 피비린내를 진하게 남긴 비극이기도 했다.

그의 말은 언제나 의회의 벽에 부딪혀 메아리로 사라졌다. 선대 레오폴트 1세가 추진했던 식민지 건설이 모두 실패한 전례가 발목을 잡았다. “저 양반 아직 저러고 있네”라는 비아냥이 잇따랐다.

탐험가 스탠리가 다시 아프리카에 발을 디뎠을 때, 그는 더 이상 일개 탐험가가 아니었다. 레오폴트 2세가 그를 공식 대리인으로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벨기에 국왕의 공식 대리인’이라는 반짝이는 직함이 무색하게도 그의 가방에는 싸구려 면직물과 색이 바랜 유리구슬, 그리고 진(gin) 몇 병뿐이었다. 스탠리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이 가방 하나로 아프리카의 거대한 땅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은 레오폴트 2세의 말을 수긍했다. 여기에는 정치 공학적 계산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콩고라는 땅을 완충지대로 만듦으로써 열강들끼리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할 수 있어서였다. ‘콩고 자유국’(Congo Free State)이 출범했다. 여기서 ‘자유‘는 레오폴트 2세가 이 땅을 착취할 ‘자유’를 말했다.

존 보이드 던롭은 북아일랜드의 수의사였다. 그의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을 바꿨다. 19세기 후반 공기 주입식 타이어를 발명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자전거와 자동차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모빌리티 혁명’이었다.

레오폴트 2세의 기쁨의 눈물은 콩고 땅에서는 피로 변했다. 그가 칙령을 발표해 콩고의 전 원주민들에게 고무 상납을 의무화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원주민 앞에 나타난 건 철갑을 두른 백인 군인들이었다. 쭈뼛쭈볏 하는 남자들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할당된 분량을 채우라는 의미였다. 콩고 주민의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채찍을 맞아 피를 흘리거나, 고무 노동으로 땀을 흘리거나, 아니면 둘 다 흘리거나.


레오폴트 2세는 번듯한 사나이였다. 약소국의 이름뿐인 왕이라는 허울은 벗어 던졌다. 그의 재산이 유럽의 내로라한 왕실에 버금가는 것이어서였다. 그 누구도 레오폴트 2세를 무시할 수 없었다. 대관절, 고무의 왕을 어떻게 깔본단 말인가.

돈을 물 쓰듯 쓰는 그에게, 숱한 여자들이 달라붙었다. 그는 쾌락에 점잔빼는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자신이 지은 웅장한 저택에서 쾌락에 물들었다.
![레오폴트 2세가 건설한 브뤼셀의 퀀테네르 파크. [사진출처=마크 리카에르트]](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4/mk/20260404095416168feji.jpg)
십 대의 교태에 홀려서, 레오폴트 2세는 그녀에게 모든 걸 주려 했다. 수많은 드레스, 보석, 현금과 저택이 그녀의 소유였다. 라크루아의 보석함에는 콩고 채권도 놓여 있었다. 콩고 원주민의 피가 프랑스 창녀의 배를 채웠다.


노욕은 끝이 없어서, 그는 벨기에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상금을 챙겼다. 그는 막대한 자금을 안고 라크루아와 결혼식까지 올렸다. 창녀에서 왕의 부인으로. 라크루아는 화류계의 전설이었다. 이듬해 레오폴트 2세가 죽어버려서, 라크루아는 프랑스의 포주와 재혼했다. 그녀의 서사는 더없이 완벽해졌다. “공사를 칠 거면 라크루아처럼 치는 것”이라고, 프랑스의 창녀들은 수군거렸다.


손목에서 흐르던 피가, 또 다른 피를 불러서, 콩고는 여전히 피에 잠겼다. 고무나무에서 눈물짓던 고사리손의 아이들은 100년 뒤에는 스마트폰 배터리의 원료인 코발트를 캐고 있어서다. 벨기에를 아름다운 궁전으로 밝힌 손이 스마트폰을 밝히는 손이 되어가는 셈. 어두워지는 건 오직 콩고 아이들의 낯빛과 고사리손 뿐.
![콩고 자유국 관리 스톰스 장군 기념비에 붉은 페인트가 칠해 져있다. 콩고 국민의 피 를상징한다. [사진출처=EmDee]](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4/mk/20260404095422618ikof.jpg)
ㅇ19세기 벨기에 레오폴트 2세는 어엿한 제국이 되기 위해 아프리카 콩고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ㅇ고무 타이어가 발명되면서, 콩고는 고무 생산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레오폴트 2세의 폭주가 시작됐다.
ㅇ고무 생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목을 잘랐고, 그 돈으로 10대 창녀와 부귀영화를 누렸다.
ㅇ벨기에가 임의로 만들어놓은 국경선 때문에 독립 후에도 내전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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