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상속세'에 짐 싸는 기업…청호나이스도 결국 매물 행렬
"부자 감세 아닌 재산권 보호"…인식 전환 절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공들여 일군 중견기업들이 상속세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잇따라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있다. 26년 전 기준에 멈춘 상속세제가 경영권 포기를 강제하며, 우리 산업의 허리인 강소기업들이 사모펀드나 해외 자본에 넘어가는 사례가 속출하는 형국이다.

◆ 2000년 기준 고착화… 세계 최고 수준 실효세율
1950년 도입된 상속세 고율 체계는 2000년 말 법 개정 이후 26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당시 정부는 최고세율을 50%로 상향하고 과세표준 30억 원 초과 구간을 설정했으나, 26년이 흐르는 동안 이 기준은 요지부동이다.
특히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액에 20%를 일률적으로 가산하는 '할증 평가'를 포함할 경우, 실효세율은 60%까지 치솟는다. 이는 OECD 최고 수준으로, 낡은 과세 기준이 기업의 영속성을 가로막는 족쇄가 됐다는 평가다.
재계와 학계가 상속세를 '약탈적'이라 부르는 근거는 명백한 이중과세에 있다. 창업주가 기업을 일구며 소득세와 법인세 등 납세 의무를 이미 마쳤음에도, 주인이 바뀐다는 이유로 지분 절반 이상을 다시 거두는 것은 조세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상속세의 모순은 자산 형태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업 가치가 수천억 원이라 해도 대부분 공장과 주식에 묶여 있다. 현금이 부족한 상속인이 세금을 내기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하는 역설적 상황을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국가가 경영권의 근간을 앗아가는 '사실상의 합법적 약탈'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 가업 승계 대신 '매각' 선택… 중견기업 경영권 유출 가속
상속세의 벽에 부딪혀 기업의 대가 끊긴 사례는 허다하다. 국내 1위 종자 기업이었던 농우바이오는 2014년 1200억 원대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농협으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세계 1위 콘돔 제조사였던 유니더스와 손톱깎이 브랜드 쓰리쎄븐 역시 주인이 바뀌는 비운을 맞았다.
밀폐용기 강자 락앤락 또한 상속세 부담 속에 사모펀드에 매각되며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다.
게임 기업 넥슨(NXC)은 상속세 물납 제도가 낳은 기이한 사례다. 유족들이 6조 원의 상속세를 지분으로 대납하면서 정부는 졸지에 넥슨의 2대 주주가 됐다. 경영권은 여전히 유가족이 보유하고 있으나, 지배구조상 민간 기업이 사실상 국영기업화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이 지분을 처분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세 번째 공개 매각을 시도했으나 또다시 유찰의 고배를 마셨다. 거듭된 매각 실패로 정부의 주주 역할이 장기화되면서, 기업의 지배구조 불안정성과 정부의 재정적 부담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 "부의 세습 아닌 일자리 대물림"… 이제는 인식 전환할 때
수년째 상속세 완화 요구가 제기되고 있지만, 정치권은 '부자 감세' 프레임에 갇혀 묵묵부답이다. 하지만 상속·증여 과정의 세 부담은 이제 국민 대다수가 직면한 현실이라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자산 규모와 관계없이 발생하는 상속세 부담을 '부자들만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상속세 완화는 특정 계층을 위한 혜택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경제 활력을 되찾기 위한 보편적 세제 개편이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스웨덴,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이 일찍이 상속세의 부작용을 깨닫고 제도를 폐지하거나 자본이득세 체제로 전환한 이유다.
특히 스웨덴은 2005년 상속세 폐지 이후 기업 유출이 멈추고 고용과 세수가 증대되는 선순환 효과를 보고 있다. 상속 시점에 경영권을 위협하는 대신, 자산 매각 시점에 세금을 부과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택한 결과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상속을 부의 세습이 아닌 기술과 일자리의 대물림으로 보는 인식 전환이 없다면 100년 기업은 나올 수 없다"고 일갈했다. 노조 역시 고용 불안을 우려하며 경영진을 압박할 것이 아니라, 기업을 팔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정부의 징벌적 세제 개편을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