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주어진 시나리오에만 매몰되지 않을래요” KBS N SPORTS 최서임 아나운서의 농구일기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3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점프볼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25년 3월에 입사하여 이제 10개월이 넘어가는! 아나운서 최서임입니다. 중간 연차 정도를 담당하고 있답니다.
특이한 이력이 있어요. 오랫동안 배우로 활동했더라고요. 계기가 있을까요?
엄마가 쓰신 육아 일기를 보면, 3살 때 저의 모습들이 많이 담겨 있더라고요. 저는 TV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게 나오면 그 장면을 엄마와 함께 역할극을 해야 직성이 풀리고, 에너지를 다 쓰고 잠이 드는 그런 아이였다고 하더라고요. 어떠한 계기라기 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활동을 좋아하는 게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그렇죠! 해당 학교로의 진학도 고민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뭐가 됐던 지 간에 학생으로서 소임을 먼저 다해라. 일단 공부를 먼저 하라’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대학 진학 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도전하게 되었죠. 바로 대학 교내 방송국 아나운서랑 연극 동아리를 병행했어요. 거의 저를 갈아 넣다시피 했답니다(웃음).
2022년부터 2023년까지 대학로 연극 ‘한뼘사이’에서 마혜리 검사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더라고요.
대학로에서 극단을 작게 차린 적이 있어요. 관객들과 만나고 하는 경험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높은 레벨까지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업극으로 프로 입봉을 하게 된 것이죠. 그게 ‘한뼘사이’랍니다! 제가 배우 중 막내였고, 연장자 선배와는 18살 가까이 차이가 났어요. 돌이켜보면 칠칠찮은 행동도 많이 했는데 연기 비전공자 후배를 너무 잘 받아주셨어요. 열정 가득한 분들과 연기했던 시간이 저에게는 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답니다.
관객들과 호흡하는 자리라 에피소드도 많았을 거 같아요.
대학 시절 과외를 하던 친구가 공연을 보러 온 적이 있어요. 온라인 과외 플랫폼이 오로지 목소리로만 원격 수업을 진행하는 형태라 얼굴을 그날 처음 봤어요(웃음). 게다가 전라남도 함평군에 거주하는 친구라 거리도 엄청 먼데… 와줘서 너무 감동이었어요. 목소리 너머로 수업해주는 걸 들으면서 연극을 한다는 것도 알고서 와준 것이죠. ‘저의 꿈은 애니메이션 성우인데 선생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순수한 제자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하나를 택하자면 단편 영화 ‘러브 플래닛’의 제시카가 생각나요. 학교 선배가 연출했고, 충무로 단편 독립 영화제에서 수상도 한 작품이에요. 물론 저도 연기상을 받았답니다(웃음). 사람들의 관계를 데이터화해서 커플 매칭을 시켜주는, 미래 세대의 러브 매니저 역할이었는데 대사가 되게 길었어요. 그것을 소화하는 게 부담이다 보니 큰 도전으로 느껴졌죠. 그래서 큰 의미가 남는 것 같아요. 작품도 잘 되었으니까요!
배우 활동을 이어오다 아나운서를 꿈꾸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서두에 이야기했듯 저는 교내 방송국 아나운서도 했어요. 늘 ‘나는 연기와 아나운서, 두 개 다 너무 좋은데’ ‘카메라 앞에 서는 건 다 너무 좋은데’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죠. 노선을 변경했다고 하기보다는 좋아하는 것 하나를 하기 위한 큰 도전을 한 것 같아요. 연극을 하는 동안 2년 동안 휴학을 했어요. 그 사이에 점점 취업 준비를 하거나 인턴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죠. 그 속에서 ‘나도 명확하게 진로를 정해야 할 때가 왔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나운서를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도전을 안 하고 연기자의 길로 가는 것도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거든요.
아나운서도 여러 갈래가 있잖아요. 스포츠 아나운서를 택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될 줄 몰랐어요. 올림픽이나 월드컵같이 큰 행사만 가족들이랑 챙겨보는 정도로 스포츠는 저랑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느 정도였냐면, 투수가 공격 역할을 하는 줄 알았어요(웃음). 이 정도로 몰랐으니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죠. 운 좋게도, 감사하게도 잘 봐주셔서 오게 되었는데 하면 할수록 적성에 잘 맞다고 느끼고 있어요. 제 MBTI가 ESFJ거든요. 바깥 구경하면서 여러 사람, 선수들과 대화하는 게 너무 재밌습니다.

맞아요! 제가 지난해 8월에 졸업식을 했어요. 아이 러브 베이스볼을 진행할 때였는데… 친한 남사친들이 ‘내가 최희 아나운서 시절에 그 방송을 봤는데 그걸 네가 진행한다고? 어떻게?’라며 농을 던지더라고요. 그 정도로 신기해하는 지인들이 많았답니다.
곧 있으면 입사한 지 1년이 되네요. 스포츠 아나운서의 이상과 현실은 무엇이었나요?
남들 눈에는 화려한 느낌이 많잖아요? 그러나 그 이면에는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들도 많이 있습니다. 혼자서 샵을 갔다가 기차표 끊고 지방으로 이동하는 날이 많죠. 막차를 놓치면 자고 오는 스케줄도 만나게 되죠.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예상과 다른 점도 많았어요. 선수들 인터뷰 질문을 방송사에서 다 정해주는 줄 알았는데 주제 선정, 리포팅 코멘트 모두 아나운서가 직접 하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스포츠 쪽을 잘 몰랐던 저에게는 굉장히 낯선 부분들이 많았죠. 그래도 저의 역량을 발전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동기 아나운서와 달리 홀로 WKBL에 투입되었다고 들었어요.
회사 선배님이 ‘농구할래? 배구할래?’라고 선호도 조사를 하셨어요. 지난 시즌 아이 러브 바스켓볼(이하 알럽바)을 쭉 다 본 후 ‘저 농구 할래요!’라고 말씀드렸죠. 갈증 하나가 있었어요. 시청자들이 리포팅을 하는 아나운서에게 요구하는 건 경기 요약이나 스킬 설명이 아니에요. 비하인드를 많이 듣고 싶어 하시죠. 저도 재미있는 비하인드를 많이 담고 싶었죠. 제 또래 여자 선수들이 많은, WKBL에서야말로 궁금증을 긁어줄 수 있는 역할을 많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매주 월요일마다 현장 리포팅에 나가요. 그러면 매치업을 이루는 팀들의 최근 4경기를 무조건 봅니다. 그러면서 김기웅 캐스터와 세 분의 해설위원님(손대범, 김은혜, 하은주)의 주옥 같은 멘트 하나하나를 받아적으려 하죠. 자연스레 인터뷰에 담을 코멘트들이 많아져요. 이거는 저만의 팁인데 유튜브 구독 목록을 맡게 된 종목 위주로 바꿔요. WKBL 6개 구단의 공식 유튜브 채널 모두 구독했어요! 말 그대로 ‘농구화’된 유튜브 계정이랍니다(웃음). 많은 공부가 되더라고요. 모든 선수마다 갑자기 인터뷰를 하더라도 관련된 질문을 바로 할 수 있게끔 준비합니다.
농구의 매력도 더 느꼈을 거 같아요.
그럼요! 지금은 쉴 때도 직관을 갈 정도로 농구에 푹 빠졌답니다. 우울할 때 경기장 가서 넋 놓고 보면 에너지가 생겨요. 농구를 보면, 보통 슈팅을 쏘는 과정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그 과정에서 많은 선수들의 궂은일 같은 보이지 않는 헌신이 있다는 게 큰 매력이라고 느꼈어요.
식스맨 선수들에게 눈길이 갔겠는데요?
그렇죠! 그런 연유에서 벤치에 있는 선수들에게 특히 눈길이 가더라고요. 벤치와 가까이서 경기를 지켜보니까 언제 올 지 모르는, 기회 하나만 바라보고 노력하는 걸 자주 봤어요. 제 또래 선수들이 뚝심 있고 독하게 하는 걸 보니까… 큰 영감을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전 선수들은 이야기를 나눠 볼 기회가 많은데 이 선수들과는 대화를 나눌 날이 적어요. 하지만 감정 이입이 되면서 계속 시선이 벤치로 많이 가요.

(용인)삼성생명의 방지온 선수가 갑자기 생각났어요. 사람 자체가 선하고 귀염둥이 이미지인데 뚝심이 있어 보였죠. 잠깐 이야기를 나눴지만, 심지 굳은 선수라는 게 바로 느껴졌어요. 그때 배혜윤 선수가 옆에서 ‘지온아 너 농구 계속해’라고 했는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농구를 더 잘하려 개명도 하고, 인내하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졌어요. 모든 선수가 다 저의 ‘최애’이지만, 지온 선수는 좀 특별한 감정을 느꼈어요.
미디어데이부터 쉼 없이 WKBL과 호흡해 왔어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하나만 꼽자면요?
바로 이명관 선수와의 일화들이 생각나네요. 정말 섬세한 선수거든요. 한 번은 명관 선수랑 사전 인터뷰를 하기 전에 갑자기 속삭이더라고요. ‘아나운서님 치아에 틴트… 여자들끼리는 이런 거 꼭 알려줘야 하거든.’ 그 사실을 모른 채 다녔는데 너무 웃기고 감사했죠. 알럽바 촬영하러 장위동 숙소에 갔을 때는 간식거리도 잔뜩 챙겨주셨죠. 허예은 선수도 꼭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저랑 동갑(2001년생)인 선수고 처음으로 말을 놓은 선수예요. 농구도 잘하고 배려심도 많은 선수라 정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알럽바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거 같아요. 점프볼 독자들을 위해 프로그램 홍보를 잠깐 해볼까요?
올 시즌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요. 먼저 유소녀 선수들을 찾아가는, 점프볼이라는 코너를 통해 미래를 책임질 선수들을 발굴하고 있죠. 저는 ‘하이볼’이라는 코너를 진행하고 있어요. 오프닝 맛집이에요. 매주 주인공에 대한 힌트를 김은혜 해설위원과 함께 주고 있답니다. 노래와 춤, 성대모사까지 가리지 않고요. 그런 재미 포인트들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감사하게도 시청률이 잘 나오고 있어요. 선수들이 너무 귀엽고, 예쁘고 착하고 매력 있어요. 꼭 많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우열을 가릴 수 없어요. 입사 1년도 안 된 연차에 큰 프로그램 진행을 맡겨주신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출연 기회 하나하나가 감사하죠. 각각 연애 이야기를 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결이 달라 재밌어요. 특히! 연애의 참견은 역할극을 하는 신이 많은데, 과거 연기 경험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어서 더 신나요.
아나운서 최서임의 궁극적 목표가 궁금합니다.
한뼘사이를 보러온 제자가 해준 말처럼, 누군가가 저를 보고 힘을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제가 있는 어디든 간에 ‘최서임 아나운서가 있는 곳은 분위기가 좋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저는 완벽한 아나운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기계처럼 다듬어진 인간미 없는 아나운서보다는 우툴두툴하지만, 개성이 있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요. 틀에 얽매이는 사람으로 남기보다는 뭔가 좀 색다르고 에너지 높은 사람이 되는 게 목표랍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KBS N SPORTS의 에이스가 될 예감이 드는데요?
그렇게 이야기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주어진 시나리오에만 매몰되지 않을래요. 인간적으로 공감하고 다가갈 수 있는 AI 대체 불가 아나운서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WKBL 홍보 하나만 더 해도 될까요?
그럼요! 물론입니다.
WKBL 팬 및 점프볼 독자 여러분! 올 시즌 현장 리포팅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요. 경기전 선수들을 만나서 가볍고 재밌는 질문을 꼭 하나씩 하는 건데요. 그 질문 내용을 토대로 하프타임 리포팅때 재밌는 내용을 전하고 있어요. 선수들이 꽂힌 노래, 스트레스 해소법과 추운 날씨 속 몸 관리 방법이 대표적이랍니다. 꼭 중계뿐 아니라 리포팅도 놓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웃음).
# 사진_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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