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 ⒁"너는 너의 것"…'흑인 의식화 운동' 펼친 스티브 비코

나확진 2026. 4. 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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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재학 중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 뛰어들어…박종철 열사처럼 고문치사 당해
아프리카 콩고공화국 브라자빌에 있는 스티브 비코의 흉상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나확진 특파원 = "흑인이여, 너는 너의 것이다."(Black man, you are on your own.)

반투 스티브 비코(1946-1977)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960∼1970년대 백인 정권의 탄압정책에 맞서 이 같은 구호로 흑인의 정체성을 강조한 '흑인 의식화 운동'(Black Consciousness Movement)을 전개해 남아공 민주화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가 한창이던 1960년대 초 넬슨 만델라, 로버트 소부퀘 등 주요 지도자가 수감되면서 흑인 저항 운동이 지도력 공백 상태에 빠졌다. 이때 비코는 흑인 자존심 회복과 흑인 의식 고취를 주창하며 흑인 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1946년 12월 남아공 이스턴케이프에서 태어난 비코는 의대 재학 중이던 60년대 후반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애초 흑인과 백인 학생 모두로 구성된 남아프리카학생전국연합(NUSAS) 소속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NUSAS가 백인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휘둘리는 것을 못마땅히 여겨 남아프리카흑인학생기구(SASO)를 결성했다.

SASO는 흑인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육체적·정신적 억압을 벗어던질 것을 주문했다.

"너는 너의 것이다"라는 SASO의 대표적 구호는 비코와 함께 활동한 바니 피티아나가 처음 글로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비코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나타낸다.

2017년 9월 1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제이컵 주마 당시 대통령이 스티브 비코 서거 40주기를 맞아 추모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1973년 SASO 정책 선언에서는 '흑인 의식'이란 흑인을 태어날 때부터 자국에서 이방인으로 만들고 인간의 존엄성을 감소시키는 모든 가치 체계를 거부하라고 촉구한다. 또 남이 아니라 스스로 규정한 흑인의 가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비코는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압제자가 손에 쥔 가장 큰 무기는 압제자의 마음"이라며 "검은 것이 아름답다"고 강조했다.

그의 흑인 의식 운동은 흑인민중회의, 남아프리카 학생운동 등 다양한 조직과 운동으로 확산했다. 더불어 그는 세계 반인종주의자들의 흑인 지도자 중 하나로 부상했다.

비코의 활동에 위협을 느낀 남아공 정부는 1973년 그를 경계대상으로 지목, 활동영역을 고향인 킹윌리엄스타운으로 제한했다. 비코는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흑인 의식 운동을 지속해 펼쳤고 75~77년에만 4차례나 체포됐다.

그의 사상은 1976년 요하네스버그 인근 소웨토에서 발생한 흑인 학생들의 궐기 사건인 '소웨토 봉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소웨토 봉기는 학교 교육을 백인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로 시행하라는 정권의 지침에 맞서 학생들이 거리 시위를 벌여 전국으로 확산했으며, 경찰의 과잉 폭력진압과 발포로 인해 600여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이후 남아공 민주화 운동의 추동력을 뒷받침하는 분수령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검은 거인'의 삶은 길지 못했다. 1977년 9월 6일 비코는 경찰에 연행돼 쇠창살에 묶인 채 22시간 동안 심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으며, 이 과정에서 머리를 심하게 맞아 그해 9월 12일 프리토리아의 교도소에서 30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당시엔 비코가 벽에 머리를 부딪혀 부상했다는 경찰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그의 사망을 두고 지미 크루거 당시 남아공 법무장관이 "비코의 죽음은 내게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고 말해 더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1997년 진실화해위원회(TRC) 청문회에서 이 사건에 연루된 전직 경찰관들이 비코를 폭행한 사실을 시인했다.

남아공 검찰청(NPA)은 지난해 9월 비코 서거 48주기를 앞두고 그의 사망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흑인사회의 권리 회복을 위한 비코의 노력은 사후에도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았다.

1987년에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덴젤 워싱턴과 캘빈 클라인 주연의 영화 '크라이 프리덤'으로 그의 생애가 영화화됐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항쟁 속에서 개봉되지 못하다가 1989년 '자유의 절규'라는 제목의 비디오로 국내에 소개됐다.

남아공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는 그의 이름을 딴 '스티브 비코 학술 병원'이 있다.

2021년 1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 있는 스티브 비코 학술 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살펴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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