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세금 냈다” 성난 노인들…“출근길만이라도” 반기는 청년들
“국가 발전 기여 감안해야” vs “장점보단 단점이 더 많은 제도”
(시사저널=이태준·이강산 기자)

"노인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데가 없어. 그런데 일단 나와서 공원 가면 앉아서 쉴 수도 있고, 처음 보는 사람이어도 대화할 상대가 생겨. 혼자 있는 것보다 훨씬 낫지…"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가 44년 만에 변곡점을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국무회의에서 "출퇴근 시간대 노인의 대중교통 무료 이용을 제한하는 방안을 연구하라"고 지시하면서다. 미국-이란 전쟁 사태에 따른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고자 출근길 대중교통 혼잡도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쟁터 같은 출퇴근길의 고통을 덜 수 있는 조치라는 평이 나오지만, 노인들의 일상 전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처사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무임승차 제한, 정부가 노인들 무시하는 것"
시사저널은 이 대통령의 관련 언급이 나온 지 열흘이 지난 3일 오전 8시, 노인들이 많이 몰리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을 찾았다. 개찰구 앞은 출근길 직장인들 사이로 고령 승객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가방을 메거나 수레를 끄는 이들부터 정장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든 노인까지 복장은 다양했으나, 이들 모두 우대용 교통카드를 태그하며 역사를 빠져나갔다.
시간이 오전 9시에 가까워질수록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급히 역사 밖으로 뛰어나가는 젊은 승객들이 많아졌지만, 노인 승객들은 대부분 여유롭게 움직였다. 다시 지하철을 탑승하려는 노인과 역사 내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도 눈에 띄었다.
이날 무임승차로 종로3가역에 도착한 노인들은 대부분 무임승차 제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종로3가에서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남아무개씨(71)는 "무임승차 제한은 정부가 노인들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무임승차 혜택을 받고 있는 노인들은 과거 한국이 개도국일 당시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세금도 많이 내온 이들"이라고 강조했다.
남씨는 노인들의 무임승차 목적이 대부분 '여가'를 위한 것이라는 시선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무임승차를 단순히 여가 활동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현장 사정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단순히 놀러 지하철 타고 온 것이 아니다. 사무실이 이곳에 있어 출근해 일을 본 뒤 근처에서 지인들과 점심을 먹곤 한다"고 말했다.
무임승차 제한을 노인들의 일상에 대한 '간섭'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주말을 제외한 평일마다 비슷한 연령대의 지인들과 종로3가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김아무개씨(85)는 "놀러 오는 노인도 있고, 그렇지 않은 노인도 있다. 중요한 건 놀러 오는 노인들은 알아서들 출근 시간대보다 늦게 나오곤 한다"며 "노인들에게도 각자의 사정과 일상이 있는데, 사실상 유일한 이동수단인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는 건 나쁘게 보면 간섭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던 김씨는 "노인들이 왜 이곳(종로3가 인근)에 몰리는지 아느냐"고 반문했다. 이유를 묻자 "파고다공원(탑골공원)도 있고 종묘공원도 있고,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곳들이 많아서 그렇다"며 "노인들 편히 쉴 곳이 없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취미가 등산 정도인데 그것도 몸 따르고 돈도 있어야 하는 거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대화 한 마디라도 나눌 상대가 있는 여기로 오는 것이다. 혼자보다는 낫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노인이니 대우해달라? 설득력 없어" 주장도
같은 날 취재진은 오전 8시경 서울의 대표적인 '지옥철'로 불리는 신도림역을 찾았다.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환승의 메카답게 역사 안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인천 방면에서 서울로 향하는 직장인들과 신도림역 인근 직장으로 출근하는 이들이 좁은 통로에서 어깨를 부딪치는 장면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노인들은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취재진이 지하철 칸을 이동하며 확인한 그들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했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거나, 이어폰을 꽂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젊은 승객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대입을 준비 중인 박아무개씨(22)는 "직장인이 아니라 매일 이 시간대에 지하철을 이용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출퇴근 시간대가 아무래도 혼잡하다 보니 지하철 이용객들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정책을 추진하려는 배경과 의도는 충분히 이해된다"고 했다.
인천에서 서울로 매일 출퇴근한다는 유아무개씨(38)도 정책의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형평의 문제를 함께 짚었다. 그는 "소득이 없는 노인분들 입장에선 마음의 상처가 될 것 같다. 분명 폐지를 줍거나 단순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분들은 불가피하게 이 시간대에 지하철을 이용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제도 자체를 문제 삼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대학 시절부터 지하철로 통학하고 지금도 출퇴근에 이용한다는 김아무개씨(31·여)는 "일부 노인분들이 임산부석에도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짜증이 난다"며 "굳이 이 시간대에 안 나와도 되는데 나오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서 이 시간대만큼은 피해줬으면 한다. 무임승차가 가능하다 보니 출·퇴근 시간대에 나와서 지하철에 앉아 계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아무개씨(28·여) 역시 "아침에 나오시는 분들은 생업을 이어 나갈 의지가 있다는 뜻이니 굳이 통행비 지원을 안 해줘도 될 것 같다. 노인이니 대우해달라는 주장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며 "일부 시민들은 또 고령층 부모의 교통비 카드를 빌려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장점보단 단점이 많은 제도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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