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원특이자였다”…4·3 교사 감시 명부 최초 확인

안서연 2026. 4. 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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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어떻게 공무원은 됐네?"…교직 생활 내내 침묵했던 이유

포근한 햇살이 내리쬐는 4월입니다. 화사한 봄날 제주 서귀포시에 위치한 정방폭포엔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듭니다. 폭포수가 뭍에서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를 구경하기 위해섭니다.

하지만 이 폭포 앞에 설 때마다 가슴이 저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4·3 당시 이곳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들입니다.

올해로 83살이 된 오순명 씨의 아버지도 폭포 위에서 사살된 뒤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아버지를 찾으러 간 어머니마저 총탄에 맞아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희생된 정방폭포를 바라보고 있는 오순명 씨.


차가운 물줄기 소리를 비명처럼 듣고 자란 다섯 살 아들은 평생 그리움이 사무쳤지만, 예순 살이 넘을 때까지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오 씨는 교육대학 졸업 당시를 회상하며 그 이유를 털어놨습니다. 그는 "교사 발령을 앞두고 신원조회를 해오라고 해서 경찰서에 갔더니 '넌 안 된다'고 했다"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극단적인 생각을 했지만 죽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4·3 유족이라는 이유로 취업에 제한을 받게 된 겁니다. 오 씨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부모에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자식의 미래까지도 집어삼킬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군대에 가서도 차별을 당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는 오순명 씨.


친척의 도움으로 겨우 교단에 서게 된 뒤에도 차별은 계속됐습니다. 군대에서도 "어떻게 공무원이 됐느냐"고 따져 물으며 특정 직무 배치를 제한했습니다.

약 40년의 교직 생활 동안, 스스로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유족'이란 사실을 숨겼습니다.

매해 4·3추념식을 TV로 지켜보며 울음을 삼켰던 오 씨는 퇴직 후 정방4·3희생자 유족회장을 맡아 2023년 정방폭포 인근에 '4·3 희생자 위령 공간'을 처음으로 조성했습니다.

■ "해마다 정보부가 학교로 찾아와"…승진을 포기한 남편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사는 문명은 씨는 5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 오용승 씨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남편 오용승 씨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문명은 씨.


생전 남편은 자신을 '제일교포'라고 소개했습니다. '제일 먼저 교장·교감이 되기를 포기한 사람'이라는 서글픈 농담이었습니다.

4·3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큰형과 큰형을 만나 만년필을 받아왔단 이유로 간첩으로 몰린 넷째 형, 그리고 6·25 전쟁 직후 '범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다(이른바 예비검속)'는 이유로 잡혀가 학살당한 셋째 형까지, 형제들의 그늘에서 남편은 늘 마음을 졸였습니다.

문 씨는 "정보부에서 해마다 한 번씩 학교로 찾아와 남편에겐 말도 없이 교장을 만나고 갔다"면서 "남들은 다 승진할 동안 내내 평교사로 지내다 퇴직 1년 전에야 교감으로 승진해서 진짜 안쓰러웠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문명은 씨의 남편 故 오용승 선생의 사진.


남편은 교직을 떠나고 나서야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서러움을 말로 꺼낼 수 있었습니다. 4·3 당시 섯알오름에서 집단 학살된 형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겁니다.

지난한 싸움 끝에 2015년 법원은 결국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간첩 누명을 썼던 형도 뒤늦게 무죄를 인정받았습니다. 남편은 그제야 그늘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 교사 감시·차별 입증할 '교육청 신원특이자 명부' 확인

4·3 유족인 교사들을 향한 국가의 감시와 차별을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이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제주도교육청 지하 문서고에서 있던 ‘신원특이자 명부’.


KBS가 언론사 최초로 확보한 '제주도교육청 신원특이자 명부'입니다. 1970~80년대 작성된 이 문서에는 죄 없는 교사들이 '특이자'라는 낙인 아래 묶여 있었습니다.

해마다 정보부가 학교로 찾아왔다는 오용승 선생도 관리 대상이었습니다. 그의 신원 내용란에는 '형이 4·3 당시 좌익 사상을 갖고 남로당으로 활동하다 일본으로 도피해 조총련계에서 활약 중'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故 오용승 선생을 ‘신원특이자’로 분류해 관리한 기록.


또 다른 신원특이자 대상자인 양기남 선생의 신원 내용란에는 '부친이 4·3 당시 형살됐다'는 내용과 함께 가정 사정 등으로 인한 사적인 연가까지 근무 동향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평범한 교사가 왜 감시의 대상이 돼야 했는지, 그 잔인한 이유가 담긴 겁니다.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은 "기존에 증언으로만 들었던 연좌제 피해가 정부의 공공기록물을 통해서 입증됐다"며 "신원특이자라고 불리는 일종의 관리 대상을 만들어서 감시 체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유족들을 관리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삶이 감옥이었다"…취업 기회조차 박탈당한 유족 '수두룩'

그런데 감시 체계 속에서도 교사를 할 수 있었던 유족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취업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유족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김포에 사는 82살 임충구 씨는 4·3으로 인해 고아가 된 뒤, 스스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지만, 발령이 나지 않았습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도 발령 나지 않았다는 임충구 씨. 매제까지도 연좌제 피해를 봤다고 증언하고 있다.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산폭도'였다는 이유로 공무원이 되지 못한 겁니다. 불똥은 여동생의 남편에까지 튀었습니다. 매제 역시 검찰청 서기직과 교도소 공안직에 모두 합격해 신체검사까지 받았지만, 발령이 나지 않은 겁니다.

임 씨는 "그 사람(매제)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며 "죄가 있다면 내 누이 동생한테 장가든 죄"라고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임충구 씨는 홍콩 출장 당시 숙소 문 앞에 놓인 메모지를 보고 “삶이 감옥 같았다”고 말했다. (AI 생성물)


공직을 단념하고 건설업에 종사했지만, 감시는 계속됐습니다. 어렵게 여권을 발급받아 떠난 홍콩 출장에서까지 '여기서 만난 사람 전부 이름을 적고 귀국하면 한라기업사(당시 제주 보안부대)로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은 겁니다.

'삶이 늘 감옥 같았다'는 임 씨는 2009년 행방불명됐던 아버지를 제주공항 유해 발굴 현장에서 백골로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4년 전 재심에서 아버지에게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2022년 아버지의 ‘무죄’ 판결을 받아낸 임충구 씨.


임 씨는 "미우나 고우나 무죄를 구형해 준 검찰한테 가서 '무죄 구형해 줘서 고맙습니다'하고 내가 먼저 꾸벅 인사를 했다"며 "그러니까 검사 두 분이 벌떡 일어나서 '죄송합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 못 했습니다'라고 사과했다"고 말했습니다.

무죄 판결은 곧 유족들의 명예 회복이기도 했습니다. 연좌제로 인해 꿈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살아온 유족들에 대한 뒤늦은 사과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신원특이자가 역사의 그늘에 서 있습니다.


정부는 1980년 연좌제를 폐지했지만, 한동안 선언에 불과했고, 그로 인한 피해는 그 누구도 회복해 주지 않았습니다. 4·3특별법이 제정된 2000년 유족 75명을 조사한 결과 86%가 연좌제 피해를 호소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선포 당시 가슴에 4·3 동백꽃 배지를 달고 있는 우원식 국회의장.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선포 당시 왼쪽 가슴에 4·3 동백꽃 배지를 달았던 우원식 국회의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폭력으로부터 국민들의 인권을 지켜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2세들이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국가가 책임지고 조사하고 그 피해에 대한 적절한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연관 기사] [영상] “나는 감시 대상이었다”…4·3 신원특이자 명부 최초 확인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2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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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연 기자 (asy010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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